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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의 성화에 날아간 명장의 목

삼성 라이온즈 선동렬 감독의 전격 해임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단의

대기업 소유구조를 고민하다
등록 2011-01-14 14:24 수정 2020-05-03 04:26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해 12월30일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만한 감독 인사를 발표했다. 선동렬 감독을 전격 해임한 것이다. 선동렬이 누구인가. 선수로는 ‘국보’로 불린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투수였고, 감독으로서는 삼성 구단 역사상 유일한 한국시리즈 2회 우승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명장으로 꼽히는 김성근 SK 감독이 후배 지도자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 선동렬 ‘전 감독’이다.

지난 1월5일 경북 경산시 삼성 라이온즈 경산볼파크에서 선동렬 전 감독(왼쪽)과 제13대 감독으로 취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이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

지난 1월5일 경북 경산시 삼성 라이온즈 경산볼파크에서 선동렬 전 감독(왼쪽)과 제13대 감독으로 취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이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

관중 감소, 해태 출신, 구단주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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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전 감독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대구 야구’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대구의 경북고는 고교야구 최강팀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뒤에도 연고 구단 삼성은 해태와 함께 최고 명문으로 꼽혔다. 프로야구 29년 동안 정규시즌에서 가장 많은 승리(1931승)를 거둔 팀이 삼성이다. 선동렬 이전 삼성의 색깔은 화끈한 공격 야구였다. 그러나 투수 출신인 선 전 감독은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부터 ‘확실한 불펜이 팀을 승리로 이끈다’는 지론을 체계화했다. ‘타격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뚜렷했다. 팬들은 “대구 야구가 사라졌다”며 화를 냈다. 1993~99년 대구구장 평균 관중은 8천~9천 명대였다. 선 전 감독은 취임 2년째인 2006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평균 관중은 3933명이었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선 전 감독이 과거 삼성의 최대 라이벌인 해태 출신이라는 점도 연고지 팬에게 거부감을 줬다. 성적과 관중 유치의 반비례 곡선은 삼성 프런트의 오랜 고민이었다. 흥행 면에서 선동렬 체제는 마이너스 요인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선 전 감독의 책임만은 아니다. 대구구장은 1940년대에 지어졌다. 한 여론조사에서 대구 팬들은 ‘구장 시설 낙후’를 야구장을 찾지 않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타 구단 출신에 대한 배타적 정서 또한 구단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했다. 김시진·이만수·장효조 등 프랜차이즈 스타와 순탄치 않은 결별을 하고, 이들을 다시 끌어안지도 않은 채 해태 출신의 선 전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구단의 행보를 팬들은 마음 내켜하지 않았다.

선 전 감독 해임의 가장 충격적인 면은 그가 5년 계약 첫해를 마치고 해임됐다는 점이다. 2009년 삼성은 5위로 떨어졌지만 지난해는 정규시즌 2위였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이 성적이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삼성 구단이 공식적으로 밝힌 감독 경질 과정은 이렇다. 지난해 12월30일 오전 김인 사장은 선 전 감독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감독은 용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 설명에 수긍하는 이는 드물다.

김 사장은 올 시즌 뒤 사장으로 취임했다. 정동진 전 삼성 감독은 “야구를 잘 모르는 신임 사장이 5년 계약 감독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과정은 이랬다. 김 사장은 시즌 뒤 몇 차례 선 전 감독과 면담을 했다. 그리고 경질 직전 삼성그룹 본사를 찾아 고위 관계자와 면담을 했다. 구단 사정에 밝은 한 인물은 “그룹 최고위급 인사가 한국시리즈 4차전 패배를 지켜본 뒤 매우 화를 냈다. 그 뒤 구단 사장은 감독 경질 문제를 현안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삼성의 기업문화를 떠올린다면 이 전언은 감독 교체 사유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결국, 선동열의 해고는 거대 기업이 프로야구단을 소유하는 한국식 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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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한 프로야구 7개 구단은 모두 재계 서열 20위 내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야구 발전’에 공헌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야구를 국기로 삼고 있는 대만은 1980년대까지 한국의 최대 라이벌이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한국은 대만에 0-3으로 완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최근 베이징 올림픽,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에서 보듯 더 이상 대만은 한국의 적수가 아니다. 대만 프로야구 구단의 1년 예산은 60억원대. 한국 구단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대만 구단은 한국처럼 거대 기업이 운영하지 않는다. 삼성, LG, 과거의 현대 등 대기업은 장부상 적자와 관계없이 거액을 야구단에 투자했다. 이상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대기업이 처음부터 프로야구에 참여한 건 야구계의 행운”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자체가 청와대의 후원 아래 이뤄졌다는 배경이 있다. 서종철 초대 KBO 총재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군 선배다. 서 총재는 거의 매달 구단주들과 골프 모임을 가졌다. 이건희 부회장이 구단주로 있던 삼성은 총재와의 회동을 위해 헬기를 동원하기도 했다. 그 뒤 KBO 총재의 파워는 지속적으로 약화됐고, 구단주의 지위는 급격히 올라간 게 프로야구의 역사다. 현재 대다수 구단은 그룹 총수가 아닌 인물에게 구단주 대행을 맡기고 있다.

합리적 경영보다 한 해 성적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대기업 위주의 소유구조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구단 최고 책임자인 대표이사 사장의 임기는 통상 2~3년이다. 그룹에 공을 세운, 퇴임 직전의 이사에게 대물림되는 명예직에 가깝다. 이런 구조에서 구단은 장기 비전을 세우기 어렵다. 합리적인 경영보다 한 해의 성적이 더 중요하다. 최근 기아와 삼성이 구장 건립에 투자하겠다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기아는 2014년 개장할 광주의 새 야구장 건설에 1년에 100억원씩 총 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도 대구구장 신축에 비슷한 규모를 투자할 예정이다. 장기적 비전을 보고 큰 액수를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용은 이제까지 구단이 좋은 성적을 위해 슈퍼스타 자유계약선수(FA) 몇 명과 계약했던 몸값에 불과하다. 이승엽이 FA 자격을 원했을 때 거론된 계약 규모가 100억원이었다. 한 구단 사장은 “프로야구단은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구단이 모기업의 경영이 악화됐을 때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과거 해태나 쌍방울, 최근의 현대 유니콘스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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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계는 최근 제9·제10구단 창단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창단을 희망하는 기업들의 매출 규모는 기존 구단 운영사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 재정 능력이 취약한 구단은 프로야구를 ‘만성’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의 프로야구단 소유구조가 과연 최적이며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가 왔다. 그룹 수뇌부의 말 한마디에 명장의 목이 달아나는 현실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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