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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천원으로 먹고살아볼까



가난한 식단에서 깨달은 식품에 대한 놀라운 진실, <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
등록 2010-11-10 15:34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학창 시절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7개월 정도를 산 적이 있다. 시내의 고층 아파트에 방을 빌려 팽팽 놀다 두 달 만에 가난해진 나는 시드니 중앙역 근처의 낡은 주택으로 집을 옮겨야 했다. 설상가상 그 집은 내가 계약한 뒤 이사 들어가기 전날 밤에 누전으로 불이 나 암담하게 그을려 있기까지 했다. 새 방에 짐을 정리하고 거실로 내려가니, 낡은데다 화재까지 입은 집에 살게 된 유학생들은 그날부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내게 집세 외에 일주일에 5달러의 식비를 요구했다. 가장 공평하게 가난한 식단을 위한 금액이었다. 그때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는 한국 돈으로 850원 정도였으니 일주일 식비로 4250원가량을 지출한 것이다(쌀을 사야 하는 주에는 조금 더 냈다). 요리를 맡은 이는 중국인 거리에 나가 장을 봐왔다. 폐장 무렵 가장 싸게 파는 시간을 공략했음은 물론이다. 각종 채소가 상에 올랐다. 태어나서 볶은 감자를 그렇게 자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부족한 식비를 향한 패스트푸드의 유혹

그때의 일기를 옮겨오면 미국의 크리스토퍼 그린슬레이트와 케리 레너드의 (타임북스 펴냄)와 비슷할까. 미국 공립고등학교 교사 부부인 이들은 치솟는 물가, 폭등하는 식료품 가격에 못 이겨 ‘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에 도전한다. 그들이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하루 동안 소비되는 음식의 총비용으로 1달러를 넘기지 않기, 공짜 음식이나 기부 음식은 지역 주민 모두에게 주는 게 아닌 이상 받지 않을 것, 집 마당에서 키운 채소도 모두 계산에 넣을 것, 다양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 손님을 초대하면 부부를 위한 식비에서 나눠 사용할 것. 이 계획 중 몇몇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일부 수정·변경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한 달 동안 처절할 정도로 계획을 꾸준히 수행한다.

식비 절감을 위해 시작한 크리스토퍼와 케리의 계획은 본래의 목표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결실을 가져다준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식품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깨우치게 됐다는 것. 이 부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과당 식품을 섭취해왔는지에 놀라고 공장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가공품에는 순수한 자연에서 온 것보다 더 많은 화학물이 첨가됐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이런 진실의 틈새에는 ‘식비가 느는데 왜 건강은 늘 더 나빠지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그들은 가난하게 먹으면서 그간의 식생활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풍부하게 들여다본다. 더불어 그들의 주방은 조리식품과 가공식품, 밖에서 사온 음식에서 해방되고 밋밋하고 심심한 요리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1달러로 먹고살기’ 프로젝트는 식비 절감 효과는 거뒀지만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번 프로젝트로 영양보충지원 프로그램(SNAP)으로 한 달을 나기로 계획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금인 SNAP 지급액을 가족 수에 맞춰 산출하고 저소득층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돈을 식비에 추가해 그들은 하루에 8.26달러를 식비로 지출하기로 한다. 더불어 SNAP 보조금을 이용해 최대한 균형 잡힌 식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인 미 농무부 권장 ‘알뜰식단계획’에 가깝게 식단을 구성해보는 것도 계획에 추가했다.

<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

<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

크리스토퍼와 케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놀라운 진실” 대신 애매하고 모순된 부분을 발견해낸다. 저소득층을 위해 개발한 메뉴는 충분한 고민 없이 탁상공론으로 만든 어처구니없는 식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난한 이들이 적은 돈으로 알뜰한 상을 차리는 대신 패스트푸드 가게로 자꾸만 발길을 돌리는 이유를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제공하는 정책들 사이에서 찾아낸다. 알뜰식단계획을 따라해본 부부는 적어도 패스트푸드처럼 더부룩한 포만감조차 주지 못하는 식단의 공허함을 비판한다. 또한 가난한 이들이라고 해서 건강식, 채식을 할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배려심이 부족한 정책은 국민 개개인을 살뜰하게 챙기지 못함을 의미한다.

잘 먹는 것이란 무엇인가

부부는 블로그에 그들의 프로젝트를 번갈아 연재하며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이 낳은 결실들을 공유한다. 빈부 차에 따라 나뉜 지역에 형성된 상권이 달라 ‘잘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선택권 또한 달라지는 지점에서 ‘식품 인종차별’을 고민하고, 식품 생산 메커니즘 속에서 소비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먹는 방식에 도전한다. 이전처럼 단 음식을 풍족하게 먹고 좋아하는 외식을 실컷 하는 방식은 아니다. 먹을거리의 텃밭 재배를 시도하고 지역의 공동체 유기농 농장에 가입해 갓 수확한 농산물을 구입한다. 다국적기업에서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식품들은 가급적 ‘노 땡큐’다.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건강한 식생활에 도전해본 결과 그들이 가장 적정하다고 산출한 하루 식비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2.36달러다. 가계에 무리를 주지 않으며 건강하고 맛있는 식단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알뜰하게 먹기에서 출발한 이들의 여정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그들에게 가장 맞춤한 먹기 방식으로 발전했다. 크리스토퍼와 케리의 좌충우돌은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한 식단을 만들기 위해 지나쳐야 할 고난들을 대신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경험을 적용해 우리는 건강한 식단에 좀더 빨리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지름길을 제시해준 것,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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