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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외

등록 2010-06-23 19:21 수정 2020-05-03 04:26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 지음, 한겨레출판(02-6383-1602) 펴냄, 1만4천원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언론인 김선주씨가 20년 동안 써온 글들을 추려 책으로 펴냈다. 김선주씨는 철저한 준비를 거쳐 밀도 높은 칼럼을 쓰는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정확하면서도 문학적 향기가 느껴진다. 세상의 부조리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시평에서도, 그는 우리 삶의 문제를 끌어와 공감을 얻어낸다. 이것은 예리한 지성과 풍부한 감성이 조화된 칼럼의 어떤 경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무한한 질문과 실천이 희망의 전제 조건이라고 김선주씨는 말한다. ‘잘 살기 위하여’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린다. 그의 글은 결국 자기 성찰의 기나긴 과정이다.

‘뇌물일까 선물일까’라는 글에서 김선주씨는 한국의 촌지문화를 자신의 사례를 통해 꼬집는다. 그는 1년에 세 번씩 아파트의 경비원과 청소부에게 돈봉투를 건네왔다. 이웃을 위해 고생하는 분들이 맛난 음식이라도 사 드시길 바라는 배려의 차원이다. 아파트 자치회장을 하는 친지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뇌물이라고 펄쩍 뛴다. 친지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주차 전쟁이 심한 아파트에서 늘 좋은 자리를 배려받은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결국 대접받으려는 의도가 돈봉투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는 사고방식이 자신 안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반성한다.

책의 마지막 장인 ‘나를 키운 8할은 사람’은 김선주씨가 인생의 스승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늘 닮고 싶었던 로맨티스트 이모, 한국전쟁 직후 ‘빨갱이 사냥’으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난 소설가 이문구, 예전 직장인 선배였던 이규태씨,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전해준 아버지 등의 이야기가 아련하게 펼쳐진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이기인 지음, 창비(031-955-3350) 펴냄, 7천원

이기인 시에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작업장에서 소외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외로움에 갇힌 독거노인으로, 가난과 차별에 침묵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시 속에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의 고단함만 토로하고 슬퍼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생을 끌어가는 이들의 질기고 튼튼한, “‘그러나 살아야지’ 출렁출렁한 햇빛이 어깨를 툭 치며 이웃처럼 웃는” 삶도 함께 보여준다.

〈메인호를 기억하라〉

〈메인호를 기억하라〉

〈메인호를 기억하라〉
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책으로보는세상(02-322-0513) 펴냄, 1만7천원

1898년 폭발한 메인호는 천안함과 닮아 있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는 독립운동을 자주 일으켰고, 스페인은 이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쿠바 국민과 ‘다른 의미’로 쿠바의 독립을 원하던 미국은 쿠바에 메인호를 급파하고 배는 한 달 만에 폭발한다. 사고 원인이 모호한 가운데 보수 언론은 메인호가 “적의 비밀 병기에 두 조각” 났다며 전쟁을 부추기고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 이외에도 책에는 역사의 ‘초안’을 쓰는 언론들이 때때로 만들어내는 ‘의도된 거짓말’들이 담겨 있다.

〈강은 거룩한 기억이 흐른다〉

〈강은 거룩한 기억이 흐른다〉

〈강은 거룩한 기억이 흐른다〉
신명섭 엮고 옮김, 고인돌(031-955-8196) 펴냄, 1만4500원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전승되는 시와 잠언, 그들의 역사와 문화, 생활을 엮은 책이다. 지상의 모든 것은 목적이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개발 논리를 앞세워 끝없이 자연을 밀어내고 부수는 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치퍼와 족은 ‘나무의 노래’에서 나무의 목소리를 대신해 이렇게 노래한다. “나/ 두려운 것은/ 바람뿐”. 정녕 나무가 두려워할 것은 바람밖에 없으면 좋겠다. 불도저와 매연과 이상기후로 찾아오는 황폐한 가뭄 대신에.

〈식탁 위의 불량식품〉

〈식탁 위의 불량식품〉

〈식탁 위의 불량식품〉
에르빈 바겐호퍼·막스 안나스 지음, 정재경 옮김, 현실문화(02-393-1125) 펴냄, 1만2천원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유럽의 질 좋은 먹을거리를 낮은 가격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다르게 유럽산 과일과 채소, 우유, 고기 등은 글로벌 식품 기업에 의해 비윤리적·반자연적 방식으로 생산·가공돼 우리에게 도달한다. 이 기업들은 교잡종 등 몸에 해로운 음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독점하고 있다. 그들은 지구 인구의 2배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지만 현재 지구에는 연간 10억 명에 달하는 이들이 항상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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