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의 서가. 정은숙 제공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출판사 창업을 하려는 당신, 먼저 해본 사람의 경험을 들려주려는 것이 이 글의 화두다. 그런데 뭔가 하려면 우선 자본금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은 숫자에 민감해져야 한다. 출판사란 것이 열어놓고, 직원도 한둘 들어오고, 원고도 생기면 언젠가 책은 나오기 마련이다. 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제 당신은 본격적으로 머리가 아파올지도 모른다. 숫자들이 당신 머리를 콕콕 쪼아댈 것이니까.
지금도 출판사 사무실을 방문하는 후배들은 곧잘 묻곤 한다.
“얼마면 이런 출판사를 차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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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가 정답이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므로, 먼저 당신이 지향하는 출판의 모토가 무엇인지 거꾸로 물어보게 된다.
출판사는 천차만별이라서 애초부터 기업형인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1인 출판사도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출판사가 아니라면, 또 자금 제약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소규모 창업을 꿈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명편집자 제이슨 엡스타인은 저서 에서 “디지털 기술이 출판을 구할 것”이라고 일찍이 예언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출판사가 장인 같은 가내수공업자의 업무로 회귀할 것이라고. 미래의 책은 대형출판사가 아닌 편집자 혹은 출판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출판의 새로운 황금시대 입구에 들어섰다고.
솔깃하지 않은가. 소규모 창업을 꿈꾸는 당신에게는 몹시 희망적인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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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를 말하자면, 운이 좀 따랐는데, 출판사를 차리면 원고를 주겠다는 저자들이 몇 분 있었다. 이를테면 김영하, 고종석, 김용택, 황인숙, 구효서… 그리고 정말 원고를 넘겨주었고. 또 여전히 그런 분들의 도움으로 오늘도 출판을 하고 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말하자면, 창업 자본금도 없이 시작한 나는 창업 첫 1년 동안 12권의 책을 출간했다. 사무실을 열어 첫 책이 나온 것은 두 달이 지난 뒤였고. 그러니까 한 달에 꼬박 한 권씩 책을 출간했다.
12권의 평균제작비가 약 1천만원씩 총 1억2천만원. 해외 출판물 저작권 사용료와 국내 저자 계약금 5천만원, 거기에 창업 멤버인 직원 두 사람의 인건비를 포함하면 1년 동안 필요한 경비는 2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팔기도 하지 않나. 첫 번째 책을 팔아서 두 번째 책을 만들고, 두 번째 책을 팔아서 세 번째 책을 만들고…. 이렇게 ‘판매액→제작 금액’의 재생산 구조를 만들려면 ‘피 말리는’ 노력이 필요했다.
출판사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탐나는 해외 저작물 타이틀의 선인세가 없어 전전긍긍하며 은행을 찾아가보았으나 딱하다는 표정의 직원 앞에서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돈 앞에 장사 없군, 낙담하고 있는데, 마침 그달에 출간했던 프랑스 피에르 신부의 의 서평이 여기저기에 나오면서 주문이 급증했다. 책이 나가자마자 돈으로 바뀌면서 단기적 위기를 극복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출판사는 창업자금 ‘얼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고’로 시작하는 것이다. 창업 1년 동안 기획력을 발휘해 낼 수 있는 원고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원고가 확보된 다음엔 무조건 숫자! 숫자!를 떠올리면서 현금 유동성을 감안해 예측 가능한 판매부수와 수금액을 바탕으로 저질러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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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없이 출판 없다.’ ‘돈 걱정보다 원고 걱정을 앞세운다.’ 출판 창업의 구호는 이와 같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출판창업, 함부로 하지 마라’는 불황기에 쉽게 출판창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글’입니다. 출판창업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출판사를 직접 차려본 ‘사장님’들이 알려드립니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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