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업에 따른 행정적 처리는 무척 간단하다. 사무실 주소지의 해당 구청에 가서 출판사 등록을 하면 된다. 물론 그전에 출판사의 작명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그것은 당신의 출판철학이 반영된, 또 앞으로 주로 낼 책의 성격을 감안해, 무엇보다 타인이 부르기 좋은 이름을 지어야 한다. 그러니까 선볼 자리에 낼 사진은 당사자가 아니라 중매쟁이가 좋다는 사진을 제출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만 좋으면 됐지, 뭘.” 이런 생각은 성공한 이후에나 하는 것이 좋다.
내 경우 ‘독서로 이루는 마음의 산’이란 뜻으로 ‘마음산’이란 이름을 지어 아는 사람들과 상의했는데, “명상서만 낼 거냐” “지나치게 착한 척, 각이 안 나온다” 등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그 뒤에 ‘책’을 덧붙여 ‘마음산책’이라고 지었다. 이제 와서는 ‘마음+산책’으로 해석하는 독자들이 많아졌지만.
출판사가 결국 ‘이름 장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사실 나 자신도 바로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뻔히 손해 볼 책도 내도, 또 반대로 돈이 될 책도 안 내곤 한다) 이름 짓기가 만만치 않은 것임을 어렵잖게 짐작해볼 수 있다. 다음은 순전히 이름 측면에서 몇몇 출판사의 명명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여다보자.
먼저 ‘강’ 출판사의 명명 과정 이야기. 현재 대표인, 당시는 편집부장인 분이 출판사 이름 짓기에 골머리를 앓다가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석양의 섬진강을 보고 온 뒤 섬진강으로 하자는 의견을 냈단다. 다들 이름 짓기에 지친 나머지 그냥 강으로 하자고 해서 오늘의 강출판사가 탄생했다는 것.
인문서적을 간행하는 ‘그린비’는 ‘그리운 비’의 준말이란 것을 알면 한순간에 그 출판 철학이 이해가 될 듯. 시대의 대지를 출판이라는 비로 적시고 싶었다고 하니 그 의미가 잘 함축된 이름인 듯하다. ‘글항아리’는 연암 박지원이 조각글을 쓰면 항아리에 던져두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의 의미가 덧붙여진 명명이라 하니, 인문서를 내는 출판사 이름으로 적격이다. ‘다섯수레’는 두보의 시 구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에서 따온 것이고, ‘들녘’은 야인들의 놀이터라는 의미다.
그런데 언뜻 들어서는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 이름들도 있는데, 가령 ‘뜨인돌’은 심부름센터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로서 ‘우상을 파괴하는 돌’의 의미라고 한다. 소설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를 처음 보았을 때 ‘Book’s Fear’(책의 공포)가 떠올라 조금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페인어로 정신을 뜻하는 ‘누’와 시공간을 의미하는 스피어의 합성어인 누스피어에서 ‘누’ 대신 ‘북’을 조합한 명명이었던 것.
‘산지니’는 우리말로 산속에서 자라 오래 묵은 매로서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새라고 하니 출판사의 지향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셈. 고시조의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 할 때 바로 그 산지니인 것. ‘알마’는 아랍어로 ‘양육하다, 키우다, 영혼’이란 의미를 지녔으며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애칭이기도 했다는 것. ‘열 번째 행성’은 지금은 이름도 없지만 언젠가는 밟혀질 미지의 행성을 꿈꾸는 여행서 전문 출판사의 이름. ‘이덴슬리벨’은 영어로 ‘Eat and Sleep Well’(잘 먹고 자기)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은 것.
이색적인 이름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알고 보면 그 명명의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출판사 이름이 중요한 것은 출판사의 처음도 끝도 모두 브랜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이란 게 결국 이름값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면, 이제 이름을 정할 당신은, 이름만이 아니라 이름의 대가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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