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창업에서 임프린트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자본금이 들지 않는 점이나, 자유로운 기획출판 및 확실한 인센티브 등이 그렇다. 물론 내 회사는 아니다. 대부분 2년제 계약직이지만, 성과만 내면 계속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고 출판사에 따라서는 임프린트를 계열사로 승격시켜 내 사업체로 만들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그런 점에서 창업의 한 통로인 셈이다. 책만 만들어보았지 경영 일선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는 편집자들에게 임프린트가 매력적인 이유는 ‘내가 경영자 자질이 되는지’를 탐색해보는 안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임프린트 대표가 되면 기획, 편집, 디자인은 물론 마케팅, 수금, 서점관리, 재고관리, 제작 관련 사항 등 많은 것을 그 분야에서 오래 몸담은 전문가들과 함께 몸으로 뛰며 배울 수 있다.
물론 사업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 출판사와 달리 임프린트는 대형 출판사의 면접을 통과해 그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때 임프린트가 붐처럼 확산됐지만, 요즘은 시장이 어려워서인지 주춤하는 분위기다. 임프린트의 존속 여부는 그것을 운영하는 대형 출판사가 그것으로 플러스알파 요인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 이 부분이 출판계에서는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임프린트를 할까? 여러 출판사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았고 원고를 받을 수 있는 베스트셀러 저자 한둘쯤 확보하고 있다면 스스로 출판사를 차리는 게 나을지 모른다. 창고·물류 대행사에 수수료를 내고 출간한 책 1~2권의 수금액으로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몇천만원의 자금은 필요할 것이다. 반면 임프린트 지망자들은 돈은 없지만 기획력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임프린트를 모집하는 출판사들의 면접을 통과할 것인가? 큰 출판사에서는 자기들의 주력 분야가 아닌 분야에 강점을 지닌 지원자를 원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출판 분야가 모회사와 겹치지 않는지, 내가 하려는 분야를 고용주가 원하는지 안테나를 세워 잘 가늠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맥을 갖춰야 한다. 탄탄한 외국어 실력으로 번역서에 치중하겠다는 식은 임프린트와 맞지 않다. 특별한 성과도 없는 상태에서 저작권료, 번역료 등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에 모회사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임프린트를 지원하기 전, 자신이 2개 이상의 분야(예를 들면 역사·철학)에서 영향력 있고 마당발인 저자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가 갖춘 능력이 고용주에게 ‘곧바로 링에 올라가도 될 경쟁력’으로 비칠지, 아니면 ‘미래의 가능성’으로 비칠지를 스스로 평가해봐야 한다. ‘가능성’을 ‘경쟁력’으로 들이밀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여기서 ‘경쟁력’과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예시화한다면 이렇다. ‘경쟁력’은 필자와의 계약서다. 이런이런 사람이 원고를 주기로 했다는 확약 말이다. ‘가능성’은 그런 필자들과 함께했던 작업 경력이다. 단, ‘가능성’이 되려면 이 목록이 좀 길어야 하겠지만. 그 밖에 앞으로 해나갈 출판에 대한 뛰어난 로드맵도 가능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트렌드를 읽는 눈,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을 선정하는 눈, 일면식 없이 기획만으로 전문가 필자를 섭외할 만한 능력 등이 두루 발휘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보는 것도 어깨를 펴고 큰 출판사의 문을 자신 있게 두드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이 검증된 인력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임프린트는 백조처럼 안 보이는 곳에서 물갈퀴질을 많이 해야 한다. 즉, 작업 강도가 세고 스트레스 요소가 많다. 내부 다른 임프린트와의 매출 비교 및 평가 등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연매출 기준치에 도달하기 위해 같은 규모의 일반 출판사보다 책을 더 만들어내야 한다. 임프린트는 능력 이상을 발휘할 각오가 된 자들의 치열한 삶터가 아닐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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