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창업 출판사는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 참 막막한 주제다.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헛발질을 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것은 확실한데, 그 방법은 나도 알고 싶을 정도다. 왜냐, 그간 헛발질을 많이 했기에….
분야가 인문학 출판이라고 전제하고 위의 두 가지를 감안해서 얘기해보자면, 기획의 일순위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필요로 하는 책’이 아닐까. 정치·경제·정보기술(IT) 등의 변화와 사건·사고 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단행본으로 연결하는 인문학 출판의 속도성이 요즘 너무 떨어지기에 그걸 보완해주는 역할이라면 시장에서 대환영을 받을 것이다. 요즘 시점이라면 ‘김예슬 선언’이 나온 만큼 ‘88만원 세대’ 이후의 20대론을 제기해 담론을 촉발하는 책이 딱 필요할 것이다(아마 어디선가 하고 있겠지). 이런 식의 기획은 출판이 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기획도 성공하는 경우다. 그다음은 ‘나와야 하는데 아직 안 나온 책’이다. 이른바 ‘빠져 있는 나사 찾기’. 조선왕조실록을 예로 들어보자. 외에는 책이 없다. 물론 국가에 의해 번역돼 웹서비스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출판하는 입장에서 ‘체면’이 안 서는 일이다. 좀더 두툼하되 사료 비판도 겸해 단행본으로 잘 정비된 ‘다섯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처음 출판을 시작하면 원고 확보가 중요하다. 그와 관련된 주의 사항은 ‘공수표’ 조심이다. 수표의 발행자가 저자일 수도, 출판사 본인일 수도 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기획을 해놓고 저자를 물색해서 우격다짐으로 진행하면 원고 받기도 힘들고 기획을 살리기도 쉽지 않다. 나중에는 스스로도 그 기획을 왜 했을까 자책하면서 계약금만 날리게 된다. 특히 시리즈는 웬만하면 해선 안 된다. 나도 5권짜리 청소년물을 기획하고 저자 계약까지 마친 지 3년째인데, ‘논술 시장’의 몰락으로 원고도 못 받았고 받을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허망할 뿐이다. 이럴 경우 원고를 받아서 책으로 내면 더 큰 손해를 본다. 저자가 수표 발행자일 경우엔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원고가 70% 이상 완성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50% 정도 돼 있더라도 불안하다. 프로페셔널 전업 저자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 업무·연구 중에 시간을 따로 내어 책을 쓰기는 쉽지 않다. 창업 초기에는 신문·잡지 연재물, 학위논문 등 이미 완성된 원고에 접근해서 잘 가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책의 가장 훌륭한 기획자는 ‘저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편집자가 아무리 재능 있고 박람강기해도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든 저자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베스트셀러 따라 하기’는 정말 피해야 한다. 10만 부 나간 책을 모방해서 짝퉁을 내놓고 1만 부는 나가겠지 바라는 편승의 욕망은 늘상 존재하지만 억누르는 것이 신상에 좋다. 나도 한두 번 해봤는데 다 실패했다. 길이란 앞으로도 뚫려 있지만 뒤로도 뚫려 있다. 걸어온 길이 아름다운 출판, 다양성이 숨 쉬는 출판동네가 됐으면 좋겠다. ‘뻥튀기’도 바람직하지 않다. 내용과 제목과 디자인이 일치될 때 책은 스스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돌베개 책들이 과장이 없으면서도 임팩트가 강한 인문서의 모범을 보이는 것 같다. ‘분야 옮겨다니기’도 위험하다. 인문 카테고리 안에서 통하는 기획 논리가 경제·경영이나 실용 분야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이쪽에선 좋은 책을 내고 저쪽에선 돈을 버는 양수겸장은 그야말로 야무진 꿈일 뿐이다.
‘저자 키우기’는 정말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저자를 처음부터 확보하기는 힘들다.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기존 저서가 없는 뛰어난 필자를 섭외해 두세 권을 꾸준히 펴내고 5번째 권쯤 낼 때 ‘대박’을 기대하는 그림이 출판인으로서 바람직한 그림이다. 뛰어나고 생산력이 왕성한 저자일 경우 이름이 점점 알려지면 다른 출판사에서 반드시 손길을 뻗어오기에, 그 저자의 메인 콘텐츠 라인을 확보할 정도의 파트너십에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한다.
인문학 출판에 ‘생존법’은 따로 없다. 정도를 걸어야 그나마 살아날 가능성이 높고, 그래야 출판계 전체의 분위기도 좋아진다. 배부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느끼는 바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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