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표정의 두 사내가 함께 길을 나선다.
같은 차에 타고 같은 곳을 향한다. 차 뒤칸에는 짐이 가득하다. 떠남 혹은 벗어남, 두 사내의 탈출은 도시의 끈적한 냄새와 타락한 조명 그리고 법과 자본의 논리로부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한동안 떨어뜨려놓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굳이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길이란 머무르지 않는 공간, 늘 걸음과 달림의 궤적을 남기는 과거일 뿐.
출발 직전 한 사내의 어머니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아들에게 “차 조심하고 물 조심하라”고 했다. 그 어머니는 낼모레면 마흔인 당신의 아들이 내복을 입었는지도 묻는다. 그 아들은 바짓단을 걷어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입은 내복을 자랑스레 보여주며 “어머니, 걱정마세요” 한다. 아들에게서 비장함이 엿보인다.
추운 때가 진정한 캠핑을 즐길 때동장군의 맹렬한 기세가 주춤하던 지난 1월19일 오전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내달린 차는 소양강 옆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에 잠시 머물다가 여기서 차로 20분 거리의 화천군 용호리 파로호 주변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사를 실행할 최적의 장소를 찾는 중이다. 더 좋은 곳을 찾으러 나선 차가 ‘ㄴ’자로 굽은 비포장 언덕길에서 계속 앞바퀴만 헛헛하게 굴렸다. 녹지 않은 폭설은 도로와 바퀴의 마찰을 허용하지 않았다. 두 사내는 “역시 4륜구동 스포츠실용차(SUV)가 필요해”라며 두 입으로 같은 탄식을 내뱉았다. 흙이 나올 때까지 눈과 얼음을 퍼내는 삽질과 30여 분에 걸친 전진과 후진, 사투 끝에 차는 가까스로 그곳을 벗어났다. 중간에 심한 삽질에 삽날이 부러지는 사고도 났다. 하지만 차는 1시간 뒤 도로 그 자리로 돌아왔다. 텐트를 펴기에 그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한겨울에 웬 캠핑이냐” “따뜻한 집 놔두고 쇼한다”는 비난일랑 잠시 접어두자. 지난해 우리나라 레저계에 분 캠핑 바람은 아직 멎지 않았다. 되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씨 탓하며 야영을 포기한 이때가 진정한 캠핑을 즐길 때다.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I’m not to tame)는, 20여 년 전 나이키의 광고 문구처럼 두 사내는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는 캠핑장마저 거부했다. 이들은 캠핑장에서 만나는 캠핑족끼리의 다정함마저 제쳐놓았다. 문명사회로부터의 단절, 이른바 ‘오지 캠핑’이다.
야삽이 부러진 탓에 텐트는 그냥 눈 위에 쳐야 한다. 그러나 사진팀 정용일 기자의 장비가 든든하다. 지난해 느닷없이, 인정사정 안 봐주고 강림하신 ‘캠핑 지름신’ 덕택이다. 커다란 거실용 텐트가 눈 위에 위용을 드러내자 바로 뒤에 침실용 텐트가 이어붙었다. 침실용 텐트는 안에 이너(내부) 텐트를 한 번 더 친다. 두 겹의 텐트 사이에 만들어진 공기층은 바깥 공기가 침실로 직접 틈입하지 못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거실용 텐트에서 기름 난로가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가만 보니 ㅍ사 제품이다. ‘노동 OTL’ 시리즈 첫 회를 장식한 임인택 기자가 일한 바로 그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다. 난로에서 임 기자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야외용 테이블을 펴자 먹을거리가 하나둘 그 위로 오른다. 오후 4시, 늦은 점심을 라면으로 때운다.
잠깐. 본격적으로 배불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해 지기 전 장작 마련이다. 서양에서는 볕이 날 때 건초를 말리라 했고, 우리 선조들은 준비가 있으면 후환이 없다고 했다. 톱과 도끼를 들고 쓰러진 나무를 썰고 찍는다. 생나무는 베어서도 안 되지만, 베어봤자 잘 타지도 않는다. 이미 생명을 다한 탓에 수분이 많이 빠져나간 나무여야 모닥불 재료가 된다.
이런 식의 캠핑을 하려면 사실 마련해야 할 장비가 하나둘이 아니다. 텐트와 테이블, 난로, 침낭, 바비큐용 그릴까지 한 세트를, 그것도 브랜드 있는 제품으로 모두 갖추려면 적어도 200만원 이상 든다. 정 기자는 지금까지 250만원가량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도 많이 쓴 축에 속하지 않는다. 어떤 캠핑족은 아예 장비를 싣기 위한 전용 트레일러를 사서 차 뒤에다 매달고 다니기도 한다. 물론 산속에서 텐트 없이 침낭에만 의존해 하룻밤을 지새우는 비박은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조금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장비를 마련해 겨울 캠핑을 하자니 다소 호사스럽다는 느낌도 난다.
오후 6시가 되자 한나절 지상의 춥고 헐벗은 것들을 데우느라 애쓴 해가 벌건 얼굴을 한 채 휴식을 취하려고 산 너머로 몸을 뉜다.
이제 음식 준비를 할 때다. 사실 잘 먹지 않으려면 캠핑을 떠나지도 않았다. 두 사내가 출발 전 다진 각오는 이번 오지 캠핑이 자칫 ‘혹한기 훈련’으로 전락할 수는 있을지언정 ‘극기 훈련’으로 번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은 두 훈련의 차이를 ‘배불리 잘 먹음’으로써 구분한다.
우선 장작불 지피기다. 먹음직한 돼지 등갈비를 예쁘게 구우려면 불을 잘 피워야 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 두 사내는 재래시장 골목의 한 정육점에서 갈비 한 짝을 샀다. 조금 부족한 듯해하는 사내들에게, 돼지를 통째 판때기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던 주인은 “아직 그 한 짝밖에 못 잘랐다”고 했다. 고기가 신선하다는 얘기다.
나뭇가지에 건조하게 매달린 낙엽을 비닐봉지에 잔뜩 쓸어와 밑불을 놓고 그 위에 잔가지를 올린다. 그리고 장작을 세로 모로 놓는다. 빛으로 열정을 태운 장작이 숯이 될 즈음, 석쇠 위에 토실토실한 등갈비를 얹고 소금을 살짝 뿌린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노릇노릇 익어가는 등갈비를 보노라니 군침이 저도 모르게 ‘꼴깍’한다.
입과 코와 눈과 귀, 모두 행복
냄비에는 꽁치캔 한 통과 함께 김치를 숭숭 썰어넣고 물을 한 공기 붓는다. 바글바글 한소끔 끓으면 불을 줄이고 달달 졸인다. 그래야 김치가 연해지고 줄기마다 담백한 꽁치 맛이 잘 밴다.
소주를 한 잔 목구멍으로 넘기고 깻잎과 김치를 밑반찬 삼아 밥숟갈을 뜨려는 즈음 텐트 위로 무언가 ‘후드득’한다. 비다. 아뿔싸! 혹한 속 잠자리로 독자에게 ‘버라이어티 정신’을 호소하려던 계획에 금이 가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힌다. ‘얼어죽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엄습하면서다.
밤이 깊었는가. 지상에 비를 뿌리느라 분주한 구름 덕에 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보이는 건 온통 꽁꽁 언 호수 위에 하얗게 쌓인 눈과 호수 건너편 마을의 듬성듬성한 불빛뿐. 리듬을 타는 듯한 빗소리에 취할 만하면, 호수를 가로질러 달려온 건넛마을의 개 짓는 소리가 엇박으로 다가온다. 민가에서는 한참 떨어진 탓에 다른 사람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두 사내의 대화는 조용해도 충분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음식을 준비한다. 쌀쌀한 날 그 이름만 들어도 훈훈한 어묵탕이다. 무를 썩둑썩둑 잘라 넣고 끓이다 어묵을 넣고 간을 한다. 달짝지근하다. 국물에 맛을 더할 다시마를 준비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또 물을 끓인다. 이건 다른 목적이다. 덥힌 맹물에 찬물을 조금 섞어 빈 페트병에 넣는다. 그러고는 그 뜨거운 녀석을 침실 텐트에 편 침낭 안에 던져놓는다. 겨울밤 노숙에 이만한 보온재가 없다. 이른바 탕파다. 침낭에 누워 그놈을 가랑이 사이에 넣었다, 발바닥에 댔다, 옆구리에 끌어안았다 한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편하게 몸을 덥힐 수 있다. 쉽게 식지 않기 때문에 새벽녘까지는 따스함을 유지한다. 거기에 캠핑용품점에서 파는 핫팩까지 함께하면 밤새 몸뚱아리가 굳을 일이 없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밤 11시가 넘었다. 겨울비는 여전히 텐트 지붕에 뭐라 속삭인다. 할 말이 많은가 보다. 그러고 보니 용산 참사 때 숨진 한대성씨 고향이 여기 어디라고 부인 신숙자씨한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신씨 고향은 조금 떨어진 평화의 댐 근처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비가 내리면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고민하던 김광석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잘 살고 있을까….
이튿날 눈을 떠보니 동은 이미 텄다. 눈 위에 텐트를 쳤지만, 돗자리와 함께 올록볼록한 텐트용 깔판을 깔고 그 위 침낭 안에는 탕파와 핫팩이 버티는 가운데 거실에는 난로마저 땐 덕에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남은 어묵국물에 라면을 끓여 해장 겸 아침 식사를 마쳤다. 호수를 뒤덮은 눈 위로는 안개가 자욱하다. 깨끗한 눈을 코펠에 끓여 만든 카푸치노 향은 그윽하다. 잔에서 오르는 뜨거운 김과 입김, 그리고 안개가 부드럽게 살을 섞는다. 입과 코와 눈과 귀, 모두 행복하다. 이 맛에 캠핑을 한다.
아침에 새로 지핀 모닥불이 꺼져갈 즈음, 고구마를 던져놓고는 빙어 낚시에 나섰다. 어제 들른 마을의 슈퍼마켓 주인은 “근처 빙어 낚시 행사장에서도 잘 안 잡힌대. 그놈들이 어디 한쪽에 다 몰려 있나봐”라고 했다. 미련 없이 코앞 호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빙어 낚시 채비는 간단하다. 대와 줄, 바늘까지 한 채비당 3천원으로 저렴하다. 여기에 1천원짜리 구더기 한 통을 사서 낚싯줄을 따라 가지를 뻗은 낚싯바늘 6개에 한 마리씩 끼워준 뒤 얼음 구멍에 넣어주면 된다. 단 얼음에 구멍 뚫기가 쉽잖은데, 2만∼3만원 정도 줘야 전용 얼음끌을 살 수 있다.
입질이 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빙어를 끌어모으기 위해 낚시용 떡밥을 조금 뿌려주면 조금 뒤 신호가 온다. 그러고도 두 사내는 고작 한 마리씩 잡는 것으로 2시간여에 걸친 낚시를 마쳤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가 새로 구멍을 뚫고 싶지만, 따스한 날씨 탓에 ‘쩌∼엉’ 하며 얼음판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도 걸음을 옮길 수 없다. 가운데로 갈수록 얼음은 얇다. 얼음낚시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30cm 가까운 두께의 얼음을 깨느라 삐질삐질 흘린 땀이 이제 막 식으려는데 새 구멍을 뚫자니 귀찮기 그지없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캠핑의 본래 목적은 휴식이다. 하지만 낚시꾼 인생 10년이 넘은 내게 그동안 캠핑은 목적 자체라기보다는 밤낚시를 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낚시 같은 자연친화형 취미는 캠핑과 동시에 추진해도 궁합이 잘 맞는 편이다.
텐트를 펼 때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들인 끝에 뒷정리가 끝났다. 편히 쉬고 잘 놀다 온 자리는 말끔히 치웠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는 캠핑족들이 잊지 말아야 할 철칙이다. 다시 앞을 보니, 비릿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마뜩잖다. 그래도 발걸음을 뗀다. 언젠가 다시 올 수 있으리라는 한 줄기 바람이 등을 떠민다.
화천=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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