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이 바로 곁에 있는 걸 본 것 같았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듯 혼란스러운데 당신은 여기에 없네요. 이제 난 나이가 든 것을 느끼고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는 풍차 돌아가는 소리처럼 멀리서 메아리치고 있어요. 난 아무래도 군인(용병·Soldier of fortune)일 수밖에 없나 봐요.”(딥 퍼플의 )
느릿한 선율에 실린 애잔함은 산전수전 겪은 ‘진짜 남자’의 얼굴을 낭만적으로 비춘다. 미국 저널리스트 로버트 영 펠튼의 (윤길순 옮김, 교양인 펴냄)은 ‘진짜 남자’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전쟁터의 낭만은 한 조각이고 풍차 돌아가는 소리는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요란하다.
9·11 이후 용병산업 발달
미국에서 용병이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4년 3월 이라크 팔루자에서 보안업체 ‘블랙워터’의 직원 네 명이 살해되면서다. 주검은 훼손돼 전시됐다. 민간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이들이 교전 지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일주일이 안 돼 또 벌어진 나자프 사건을 계기로 ‘용병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뜨거워진다. 시아파 과격 무장단체인 메흐디 민병대가 블랙워터가 지키던 연합군임시행정처를 공격했고, 블랙워터 직원들은 미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격렬하게 전투를 치렀다. 이들의 교전 수칙은 단순하다. ‘그들이 쏘면 쏘라.’ ‘접전을 피할 목적으로만 총을 쏘라.’ 펜타곤이 보안업체 직원들은 경호만 할 뿐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 그들은 격전을 벌였다. 목숨을 위협당하는 곳에서 경호와 전투는 구분할 수 없다.
전쟁에 투입된 ‘민간인’인 용병은 ‘저비용·고효율’의 일회용 군인이다. 민간 보안회사에 고용된 이들은 정규군의 부족한 인력을 보충해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제3국의 쿠데타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다. 최근의 예로는 2004년 적도기니에서 벌어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던 쿠데타 시도가 있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아들인 마크 대처가 핵심 투자자인 ‘버냉 만 회사’가 적도기니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노리고 꾸민 일이었다.
9·11 이후 용병 산업이 발달했다. 잘 훈련된 군 출신 요원들이 블랙워터 시큐리티, 트리플 캐노피 등의 보안 전문업체를 통해 공급됐다.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탈레반을 제압한 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체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와 탈레반 잔존 세력을 붙잡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다.
‘암살 면허’도 때맞춰 발부됐다. 1976년 미국 외교정책의 도구함에서 암살이라는 도구를 제거한 대통령령 11905호(“미국에 고용된 사람이나 미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암살이나 암살 음모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힘을 잃었다. 1998년 동아프리카 지역의 미국 대사관이 폭탄 공격을 받자 클린턴 대통령은 배후 인물(역시 빈 라덴)을 붙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할 때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일련의 명령에 서명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에는 대통령이 정식으로 누구를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을 막는 법률적 장애도 사라졌다. 베트남전과 한국전에 참여한 노용병 빌리 워는 “부시가 우리에게 살인 면허를 주었어”라고 말한다. 2003년 브리머(주이라크 미 대사)의 포고령 17호는 이라크에 보안업체 직원을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들이 임무 수행 중 중대 범죄를 저질러도 이라크 사법 당국은 그들을 처벌할 권한이 없다(‘한-미 주둔군지위협정’과 비슷하다).
전쟁이 의회의 손에서 행정부의 손으로용병은 ‘언제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는’ 전사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피터 싱어는 민간 보안회사가 정부의 잘못을 아웃소싱한다고 비판한다. 민간 보안회사들은 투명성도 없고 책임도 거의 없는데, 이들을 고용한 군이나 정부도 비난받지 않는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군사력 남용을 허용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 된다. 정치학 교수인 에이번트는 “청부업체를 쓰면 권한이 의회에서 행정부로 넘어간다”는 점도 지적한다. 민간 보안기업들은 언론, 납세자, 의회 모르게 정부의 돈을 받아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인 펠튼은 분쟁 지역을 쫓아다니는 탐사 전문 기자다. 1996년 탈레반 지도부를 인터뷰하고, 2000년에는 전쟁 중이던 체첸에 들어가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지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용병을 만난 뒤, 3년간 4개 대륙을 누비며 취재한 결과물이 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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