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시절, 도처에 소원을 들어주겠단 유혹이 넘친다. 9명의 요정, 소녀시대가 머린룩을 걸치고 나와서 “소원을 말해봐~”, 그것도 “내게만 말해봐~”라고 달콤한 노래를 부른다. 소녀들의 뮤직비디오가 끝나도 소원을 이뤄주겠단 주문은 끊이지 않는다. 이번엔 광고로 이어져 영원한 꽃미남 장동건, 근육질의 월드스타 비가 시상식 트로피를 들고서 주문을 외운다. “살라카 둘라 메치카 불라 비비디바비디부~.” 그러곤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이루어진다고, “비비디바비디부~”(비바부) 주문을 외운다. 지난 7월 200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전에는 박태환 선수가 기타를 메고 나와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쳤다. 요즘엔 연애도 “비바부” 주문을 외우면 이뤄진다는 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다. 이렇게 이동통신회사 SK텔레콤(SKT)의 ‘생각대로T’가 2009년 테마로 선택한 카피는 “비비디바비디부~”다.
그렇게 꿈이 이뤄진 다음엔 무엇을 외칠까? 역시나 텔레비전이 알려준다. “올레!(Olleh)” 나무꾼이 도끼를 던졌는데 산신령이 금·은·동 세 개의 도끼를 들고 나온다면 “와우!”, 그러나 똑같이 도끼를 던졌는데 선녀 세 명이 각각 금·은·동 도끼를 들고 나온다면 “올레!”. 그리고 또 다른 올레 시리즈.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는다면 “와우!”, 그러나 보물을 찾다가 우연히 산삼을 캔다면 “올레!”. KT가 최근에 시작한 기업 이미지 광고의 일관된 카피는 “올레!”다.
비비디바비디부·올레·언빌리버블…
이렇게 광고는 ‘한국말’을 잃었다. 이제 ‘주어, 목적어, 동사’는 카피의 기본이 아니다. 한국어 대신에 외국어, 문장 대신에 감탄사가 귀에 꽂히는 시대다. 의미보다는 느낌이 우선인 것이다. 해석이 제한된 문장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지금은 불황기. 의미를 ‘강요해’ 짜증을 불러일으킬 위험도 있다. “부자 되세요~” 같은 직접적인 말보다는 부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시대다.
‘비바부’ 캠페인을 만드는 광고회사 TBWA의 신은주 국장은 “브랜드의 느낌을 공감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각을 넘어서 복합적 감각을 자극할 카피로 “비비디바비디부~”를 택했단 것이다.
SKT의 라이벌 KT도 질세라 감탄사로 맞선다. 공기업에서 출발한 KT는 전통과 신뢰의 느낌은 있지만 혁신과 젊음의 이미지가 부족했다. 디지털에 기반한 통신기업으로서는 약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 이미지 광고부터 확 바꾸었다. 대개 기업 이미지는 개별 제품 광고에 견줘 생산자의 목소리로 소비자에 충성을 ‘맹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KT의 기업광고는 우회적인 메시지와 낯선 화면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이미 ‘쇼를 하라!’, ‘쿡’(Qook)으로 기존의 지루한 이미지를 깨는 효과를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래도 대개 점잖은 포즈를 취하는 기업 광고에서 “올레!”를 외친 것은 의외였다. KT 통합이미지 담당 신훈주 코디는 “KT가 KTF와 합병하는 것을 계기로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는 역발상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외국어 감탄사는 도처에서 들린다. 맥도널드 광고는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을 외친다. 올여름 빅맥런치세트가 얼마일 것 같냐고 사람들에게 묻는 광고다. 일반인처럼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3700원” “4300원”을 외친다. 이어서 나오는 성우의 내레이션 “언빌리버블! 3천원!”. 이 밖에도 “서프라이즈!”(Surprise·하나대투증권) 하거나 “잇스 마이 플레저”(It’s My Pleasure·현대카드)라고 영어 감탄사를 연발하는 광고들이 적잖다.
이렇게 굳이 영어로 놀라는 이유는 무얼까. KT 신훈주 코디는 “한국어 중에서 적절한 감탄사를 찾기가 힘들었다”며 “농담 삼아 ‘아싸’ ‘얼씨구’ 해도 느낌이 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어론 세련미와 독특함이 부족했단 것이다. 이렇게 광고에 나오는 외국어 감탄사는 외국어가 세련된 표현이 된 언어 상황을 반영한다. 신 코디는 “현재 쓰이는 감탄사 중에 최고를 ‘와우!’라고 생각하고, ‘와우!’ 할 때보다 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느낌을 ‘올레!’로 비교했다”고 말했다. 실제 KT 광고는 남극에 자장면이 배달되면 “와우!” 했다가 우주선에 자장면이 배달되면 “올레!”를 외치는 식이다. 카피 그대로 “최고의 감탄사”가 “올레!”란 것이다.
생활에서 다양하게 인용·변주되기도낯섦 가운데 익숙함, 이런 광고의 숙명을 감탄사 광고도 비켜가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 브랜드’를 지향하는 이동통신회사 광고는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비비디바비디부~” “올레!” 같은 외국어 카피도 한없이 낯선 것에서 따오지 않았다. “살라카 둘라 메치카 불라 비비디바비디부~”는 디즈니의 고전적 애니메이션 에서 할머니 마법사가 호박을 마차로 바꿀 때 쓰던 주문이다. “올레!”는 스페인 투우 경기에서 나온 감탄사. 월드컵 즈음에 자주 나오는 “올레~ 올레~” 하는 응원가로 익숙하다. 두 노래는 두 광고에 각각 배경음악으로 깔려서 기억의 원형을 자극한다. TBWA 신은주 국장은 “이런 말들은 외국어라기보다는 청각적 기억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낯섦은 광고 하나하나의 익숙한 상황으로 다시 ‘중화’한다. 그래서 ‘올레!’ 광고에선 나무꾼 이야기, 달나라 탐험 같은 모두가 아는 상황이 나오고, ‘비바부’ 광고엔 영화제 시상식 같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던 장면이 나온다.
감탄사 광고는 인터넷 시대에 효과를 더한다. 더 이상 광고가 광고로 끝나는 시대는 끝났다. 15초짜리 방송 광고가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일상의 공간이 된 웹에서 끝없이 인용돼야 한다. ‘비바부’ ‘올레!’는 물론이고 ‘쇼를 하라!’ 같은 카피는 일상에서 인용하기 좋은 말들이다. 특히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등에서 패러디돼야 유행어가 되고 광고효과가 극대화된다. 이현우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이런 광고를 “생산자가 메시지를 시작하고 수용자가 의미를 완성하는, 열린 메시지의 참여형 광고”라고 정의했다. 모호한 미완성의 메시지가 오히려 다양한 인용과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자도 뒷짐 지고 방관하지 않는다. 이현우 교수는 “광고의 메시지가 퍼지도록 생산자는 바이러스를 심는 바이럴(viral) 마케팅을 한다”며 “생산자가 보이지 않는 손처럼 바이러스를 심으면 수용자가 자연스레 퍼나르며 퍼져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입소문 마케팅은 이렇게 진화했다. 실제 긍정이든 부정이든 “비비디바비디부~”를 화제에 올린 블로그가 숱하다. 심지어 진보신당 가 지난 재·보궐 선거 때 만든 홍보 사용자제작콘텐츠(UCC)엔 진중권 교수가 당시 울산북구 조승수 후보를 지지하는 가사로 패러디된 “비비디바비디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중년의 아저씨가 아이처럼 어깨를 좌우로 들썩이며 “국회의원은 비비디바비디 수~/ 한나라당 딴나라당 다 덤벼라 비비디바비디 수~/ 앗싸 조승수 나와라 비비디바비디 수~”라고 노래한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카피를 인용하며 광고의 ‘스토리텔링’은 완성된다.
노래도 카피도 마법에 의존하게 된 시대그러나 유행은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KT·SKT 같은 막강한 기업이 막대한 광고 ‘물량’을 쏟아부어야 감탄사처럼 모호한 외국어도 유행을 타는 법이다. 오창우 계명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일찍이 ‘따봉’도 유행어가 됐지만, 카피의 유행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외국어에서 카피를 빌려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광고의 크리에이티브가 약하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꿈이 멀어질수록 주문을 걸고 싶은 마음은 커지는 법이다. 소녀시대가 라고 노래하자 이번엔 브라운아이드걸스가 (Abracadabra)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한국은 노래도, 카피도 마법에 의존하는 사회가 되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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