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로자 팍스, 오래된 미래

1955년 ‘몽고메리 버스 거부운동’을 그린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등록 2008-11-28 17:35 수정 2020-05-03 04:25

연애에는 돈이 든다. 혁명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버스 안에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데는 정확히 1년 하고도 20일이 걸렸다. ‘인종분리’란 단단한 장벽에 구멍을 낸 작은 혁명이었다. (러셀 프리드먼 지음·김기현 옮김, 책으로여는세상 펴냄)는 그 감동적인 싸움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담아낸 책이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1950년대 중반 미 남부 일대에선 버스를 탈 때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다. 대충 이런 식이다. 백인 승객은 버스에 타면, 앞줄부터 차례로 앉기 시작한다. 버스를 앞에서부터 채워가는 방식이다. 반면 흑인 승객은 맨 뒷줄부터 차례로 앉아야 한다. 버스를 뒤에서부터 채워가는 방식이다. 앞줄부터 앉기 시작한 백인 승객과 뒷줄부터 앉기 시작한 흑인 승객이 중간 지점에서 만나게 될 무렵이면, 버스는 ‘만차’가 된다. 빈자리가 없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흑인 승객이 타게 되면 어떨까? 답은 쉽다. 서서 가면 되는 게다. 그럼 앉을 자리가 없는데 백인 승객이 새로 타면 어떨까? 역시 쉽다. 백인 좌석에서 가까운, 흑인 좌석의 맨 앞줄에 앉은 흑인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 자리를 백인 승객이 차지하면 그만인 게다.

1955년 12월1일 목요일 저녁,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로자 팍스(당시 42살)는 ‘법원 광장’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랐다. 요금을 낸 팍스는 백인 구역 맨 뒤, 흑인 구역 맨 앞의 빈자리에 앉았다. 그의 뒤를 이어 흑인 승객 3명이 버스에 올라, 팍스와 같은 줄에 나란히 앉았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자리가 모두 찼다. 그때 백인 승객 1명이 올라탔다. 백인 운전기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다른 승객은 마지못해 머뭇머뭇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팍스는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이 더 피곤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정말로 지쳤던 건, 굴복하는 거였다. 굴복하는 데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났던 게다.”

팍스는 체포됐다. 시 교도소로 끌려갔고,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지문도 찍히고, 사진도 찍혔다. 보름 뒤인 그해 12월15일 팍스는 ‘인종분리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벌금 10달러와 법정 비용 4달러를 내라는 법원의 결정을 선선히 따를 순 없었다. 항소는 당연했다. ‘역사’는 언제나 작은 저항에서 시작되곤 한다.

팍스의 작은 용기는 삽시간에 반향을 불렀다. 흑인 교회를 중심으로 ‘버스 안 타기 운동’이 시작됐다. 백인의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해야 하는 흑인 노동자들은 카풀을 시작했다. 시 당국과 경찰은 마구잡이식 체포와 벌금형으로 맞섰다. 그럼에도 버스 안 타기 운동은 갈수록 번져갔고, 경영 위기에 몰린 버스업계가 되레 시 당국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몽고메리시 당국은 미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1956년 12월21일 버스 안 인종분리 정책을 폐지하기에 이른다.

로자 팍스가 자리를 내주기 거부한 지 53년 만에 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의 ‘유색인종’ 정치인이 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로자 팍스가 없었다면, 오바마 대통령도 없었을 게다. 혁명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