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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대중은 파시즘을 원했다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키는 조지 모스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시니, 당신의 이름은 적들을 떨게 하나이다. 당신의 왕국에 임하옵시고, 당신의 뜻만이 이 땅 위에서 법칙이 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며, 또한 우리의 삶을 투신하여 복종하길 원하옵는 당신 지도자의 지위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구세주여, 이를 언약하나이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을 연상시킨다. 나치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던 때 독일 국민들이 외웠다는 ‘히틀러를 위한 기도문’이다. 쉽게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국민 75%의 동의 아래, 우리는 여전히 ‘국기’ 앞에서 ‘충성 맹세’를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그러니 묻기로 하자. 국민의 다수가 원하는 것을 정부가 존중하는 건 분명 민주주의가 아닌가? 국민 다수의 뜻과 다른 주장을 고집하는 건 비민주적이지 않은가? 국민의 다수가 ‘독재’를 지지한다면, 그것은 독재인가 민주주의인가? 다수에 반해 소수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 조지 모스의 1975년 노작 (임지현·김지혜 옮김, 소나무 펴냄)는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마련해준다.

흔히들 “파시즘은 야만적 소수가 권력을 장악한 역사의 일탈일 뿐”이라고 말한다. “민중이 설혹 나치즘이나 파시즘을 지지했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착오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실제로 독일 민중이 나치즘이란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되자, 쇄신된 자유주의(서독)나 사회주의의 이상(동독)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스는 이런 주장을 한마디로 ‘판단 착오’라고 통박한다.

모스는 파시즘이 소수의 독재자가 민중의 역사를 강탈한 사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파시즘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18세기에 부상한 인민주권 사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의 절정을 의미한다”며 “결코 하멜른의 ‘피리 부는 남자’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추종자들을 현혹하는 지배 체제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신의 시대’와 ‘왕의 시대’를 헤쳐나온 대중이 만들어낸 일종의 ‘합의 독재’ 또는 ‘아래로부터의 독재’로 파시즘을 규정한 게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더 이상 왕정이나 군주정이 민중의 자기 표상을 대신할 수 없었다. 모두가 하나의 인민으로 뭉쳐 함께 행동할 때 비로소 시민이라는 인간 본질이 실현된다는 믿음 덕분이다. …민중이 스스로를 숭배하는 하나의 세속종교가 되었으며, 새로운 정치는 이런 숭배를 유도하고 공식화하려 했다.”

파시즘이란 세속종교, ‘새로운 정치’는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민족 기념비’를 상징으로 삼았다. 기념비 앞의 드넓은 광장은 고스란히 신화에 목마른 대중이 의례와 축제를 벌이는 세속종교의 신전이 됐다. 세속종교의 제례의식은 지도자와 민중을 하나로 묶는 동시에, 대중에 대한 사회적 통제 수단이 돼줬다.

남성합창단, 사격동호회, 체조동호회 등 여러 대중단체가 자기들만의 축제 형식과 전례 형식을 창조해내며 ‘신흥종교’의 열기를 더했다. 축제 때마다 등장한 성화와 깃발, 울려퍼지는 노래와 온갖 거석 기념물은 파시즘의 상징이 돼 대중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렸다. 모스가 기록한 나치즘의 성장기다. 그는 “새로운 정치는 독일을 민족 기념비와 공공 축제로 채웠다”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고향이었고,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소망의 구현이었다”고 썼다.

유대인 언론사주 집안에서 태어난 모스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어려서 고향을 등져야 했다. 대중의 자발성을 지적한다고 해도, 히틀러 집단의 광기를 가릴 수는 없다. 다만 모스는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키려 했을 뿐이다. 모스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과거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적이다. …이 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끝났다고 여기는 것을 다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은 아직 현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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