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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가출한 미스 엔의 집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열정을 찾아 떠났던 여자는 변하지 않았네, 전경린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전경린의 (열림원 펴냄)은 공지영의 최신작, 그리고 이미 베스트셀러에 오른 (푸른숲 펴냄)과 많이 겹친다. 전경린 소설의 화자는 이혼한 엄마와 사는(실제로는 기숙사에서 살지만) 대학교 2학년 딸, 공지영 소설의 화자는 아빠와 살다가 이혼한 엄마에게 와 잠깐 함께 사는 고3 딸이다. 이런 가족사가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제목에는 모두 ‘집’이 들어갔다.

‘작가의 말’에서 전경린은 ‘엄마의 집’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전한다. “IMF 이후 맞이한 2000년대를 (…) 내 입장에서는 집을 가진 엄마들이 출현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혼한 엄마들이든, 미망인인 엄마들이든, 혹은 처음부터 남편 없이 아이를 갖는 싱글맘이든, 입양아들을 가진 미혼의 엄마들이든, 엄마의 모습은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해질 것이다. 종래와 달리 엄마의 정체성을 획득하고도 동시에 처녀의식을 간직하고 사는 새로운 엄마들의 이름을 ‘미스 엔’이라고 불러보았다.”

화자인 김호은은 한 여자 선배가 ‘전형적인 한국 엄마’라는 말을 쓰자 맨 처음 그 전형성에서 “가출한 사람”을 떠올린다. 엄마는 ‘집을 나간다’. 전경린은 이 집을 나간 여성들이 ‘열정의 습관’을 가져 ‘쾌락의 활용’에 적극적임을 설파하고 그들을 변호해왔다. 의 노윤진 역시 집을 나가지만 그는 나간 뒤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아등바등 돈을 번다. 낮에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한다. 엄마는 산 아파트로 고3이 된 아이를 부르지만, 그곳은 ‘우리 집’도 ‘나의 집’도 아닌 ‘엄마의 집’이다. 엄마는 남자친구가 있고, 아이에게도 자신의 생활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쿨하게 이야기한다. “사실 나의 엄마가 전형적인 한국 여자는 아닐 것이다. 엄마는 독립적이다. 직업이 있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기사를 가위로 오려가며 신문을 열심히 읽고 이혼을 했고 애인도 있고 지각도 있다.”

소설의 사건은 아빠가 데리고 살던 딸 승지를 호은에게 맡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승지는 아빠가 두 번째 결혼한 아내가 데리고 있던 딸이다. 아빠가 내려놓고 간 승지를 엄마의 집으로 데려가자 엄마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내일 새벽에 내려가자(아빠 집으로 데리고 가자)”라고 말한다. 승지를 데려다주러 고속도로를 타면서 잠깐의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그 풍경은 “지난 시대의 컴퓨터 용량같이 처량”하다. 386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을 읽었냐고 대뜸 묻는 아빠는 전형적인 386이다. 그리고 은 어릴 때 아빠가 사준 고무로 만든 공룡의 이름처럼 느껴진다. 아빠 세대와 호은의 세대는 이렇게 다르다. “아빠가 대학생 땐 대부분 운동을 했겠지만, 우린 대개 노동을 한다구. … 위장 취업이 아니라 진짜야.” 호은은 하루에 6시간씩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푼다. 길에서 아빠와 지낸 날들에 등장하던 ‘친구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얼마나 잘살아보겠다고, 정말 더럽게 타락하”기도 했고, 생일날 한밤중 달려오는 버스에 뛰어들기도 했고, 낮인데도 코끝이 알코올릭처럼 붉어져 있기도 하다. 그들은 아빠와 다르지 않다. 공룡 같은 점에서. 결국 엄마는 승지와 함께 온 토끼 ‘제비꽃’까지 맡아 지낸다. 승지는 엄마를 ‘친척 아줌마’라고 호은을 ‘언니’라고 부른다. 대략 4개월 뒤 ‘귀농’(떠났는데, ‘돌아갔다’니!)했던 아빠는 승지를 데리러 돌아온다.

승지는 떠나면서 미스 엔을 “좀 타락”했다고 말한다. 타락이란, 승지 말에 따르면,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사는 거다. 미스 엔은 타락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냐고 묻는 호은에게 “내가 엄마인 거”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나는 네 엄마다.” 하지만 ‘너의 엄마’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엄마인 거다. 역시 집을 나갔던 엄마는 386처럼 시대에 따라 유해지지도 그래서 배신하지도 않는다. 미스 엔은 애인에게 전화가 오자 호은과 나가려던 약속을 취소한다. “아무래도 엄마인 것보다 애인인 것이 더 중요한 엄마의 정체성 같았다.” 이런 쑥스러운 속내를 드러내고도 전경린은 당당하다. 딸을 화자로 내세우는 것은 그 당당함의 소산이다. 세대차는 집을 나간 여자들에게 별로 크지 않은 것이다. 옛날의 일들은 모두 후일담이 되어버려, 딸을 화자로 내세운 것 같은 공지영과는 정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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