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출판] 아스쿠니, ‘현창’의 공간

등록 2005-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서남전쟁, 청일전쟁, 대만전쟁, 의화단사건,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남사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근대 일본이 벌인 전쟁 리스트이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둘 이상의 죽은 사람의 넋을 한곳에 모아 제사하는 것)된 이들이 참가한 전쟁의 목록이다. 야스쿠니신사는 군국주의 역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가 몇 년에 한 번꼴로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사회심리적 담보였다.

일본의 양심과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가 최근 펴낸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현대송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를 보면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이해가 왜 근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열쇳말인지를 알 수 있다. 역사적이면서도 실증적 맥락에 치중한 그의 분석은 대중적인 설득력도 확보해 30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이 책을 읽게 했다. 9·11 총선 압승을 배경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행태가 한-일 외교의 최대 현안이 되어 있는 터라 이 책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필자는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적인 구실이 전사자를 ‘추도’하는 게 아니라 ‘현창’(顯彰)하는, 즉 ‘드높여 받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호국 영령’으로 합사하면서 전사라는 슬픔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남편이(또는 아버지가) 전사하면 반드시 야스쿠니에 모셔질 것으로 믿고 전쟁터로 나갔다”는 유족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나 천자님을 위해 아들이나 남편을 바치는 것을 성스러운 행위로 믿게 함으로써 야스쿠니 신앙은 당시 일본인의 삶과 죽음 전체에 최종적인 의미 부여를 했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시기까지 야스쿠니신사에서 벌어진 수천 또는 수만의 전사자를 합사하는 임시대제 행사에서도 입증된다. 임시대제가 열리면 북쪽은 사할린, 서쪽은 만주, 남쪽은 오키나와와 대만에서 수많은 유족이 국비로 도쿄에 초대돼 행사에 참석했다. 유족들은 신이라고 믿는 천황이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는 것을 목격하고 황궁과 동물원 등 도쿄의 명소를 구경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에야 자신을 ‘명예로운 유족’으로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필자는 이를 ‘감정의 연금술’이라고 규정했다.

필자는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A급전범 분사론’이나 ‘제2의 국립 추도시설 건립방안’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분사론은 전쟁 책임 축소와 역사인식 은폐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결국 한-일 정부 사이, 또는 중-일 정부 사이의 ‘정치적 결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립 추도시설 역시 전쟁을 실질적으로 막기 위한 사회적 조건, 즉 일본의 정치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제2의 야스쿠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