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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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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의 봄은 여린 초록!

등록 2005-05-05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 숲의 생명력… 상원사 가는 흙길에서 공존을 배우다</font>

▣ 글 ·사진 윤승일/ 자유기고가 nagneyoon@hani.co.kr

길게 누운 흙길을 따라 걷다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새 생명들이 내뿜는 청량한 기운을 가슴 깊이 담아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대산입니다. 464번 지방도로 월정사에서 상원사 구간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흙길 그대로입니다. 맑은 계류를 따라 길게 누운 듯 난 그 길에서 비로소 봄다운 봄을 만났습니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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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축제로 다가와 흩날리는 꽃잎 따라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리는 네온사인을 닮은 도시의 봄과는 전혀 다른 봄을 오대산에서 봅니다. 오대산의 봄은 생명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일깨우고 공존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의 봄과는 달리 이곳 오대산의 봄은 투명한 초록입니다.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초록은 여리디 여립니다. 햇빛조차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여린 그 초록이 오히려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람을 이기는 지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여린 초록이 가슴 깊숙한 곳에 시리도록 깊은 자국을 냅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의 미처 펴지 못한 손을 여린 초록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꼭 쥔 손을 오래도록 펴지 않는 것은 주어진 삶을 이겨나갈 희망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생명이 경이로운 것은 그 어떤 고난도 결국 이겨내고야 마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여린 초록에 가슴이 시려지는 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초록이 간직한 희망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메마른 가지로 봄 햇빛을 맞는 키 큰 나무들 아래에는 어김없이 작은 꽃들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뒤늦게 잎을 내미는 키 큰 나무들은 배려를 할 줄 압니다. 먼저 잎을 내밀어 그늘을 지우면 작은 생명들은 자라날 수 없음을 알기에 키 큰 나무들은 대부분의 초록이 봄의 생명력을 모두 받아들인 다음에 잎을 내밉니다.

공존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오대산의 봄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됩니다.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 1km의 길은 수십m에 이르는 키 큰 전나무들이 호위하는 숲길입니다. 그 길 여기저기 전나무 가지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전나무는 초록 그대로 겨울을 이깁니다. 그렇다고 새 생명을 키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전나무는 바람의 힘을 빌려 묵은 가지를 털어내 새로운 가지가 자랄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합니다. 길가에 떨어져 바람에 뒹구는 전나무 가지들은 ‘버려야 채울 수 있음’을 아는 전나무의 깨달음의 상징입니다.

전나무 숲길에 초록과 분홍의 연등이 걸려 있습니다. 불가에서 오대산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서기 643년 자장율사가 산문을 열었다고 하니 이 길에 연등이 내걸린 역사도 그만큼 되었을 테지요.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찾아든 것은 이곳 오대산에 1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상식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모든 사물을 나와 같은 생명으로 마주한다면 오대산 모든 생명들은 미망에 늪에 빠진 내 마음을 위로하는 감로수로 다가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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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을 걸을 때면 가끔은 고개를 숙여 발 밑을 살펴야 합니다. 이름 갖지 못한 풀들이 피워내는 아주 작은 꽃은 세심하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저 작은 꽃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생명들은 스스로 나고 죽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지켜가는 한 축을 담당합니다.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치열하게 꽃을 피워야 할 때와 과감하게 잎을 떨궈야 할 때를 스스로 헤아리며 생명으로서 제 소임을 다합니다. 더불어 함께한다는 것은 저 작은 꽃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바람을 이기는 여린 초록에 가슴이 시린 것은 그리 살지 못함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처음 열릴 때의 흙길 그대로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저만큼 앞서가는 행자들의 삼보일배 행렬에 잠깐의 사색에서 벗어납니다.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의식을 행하는 행자들은 한달 동안 스님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이들입니다. 땀이 가득한 그들의 이마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몇몇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절은 스스로 낮추어 남을 공경하는 법을 배우는 의식이라 합니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들이 부럽습니다.

길은 월정사로 이어지고 월정사를 벗어난 길은 또 상원사로 이어집니다. 월정사를 지나 부도밭을 지나면 아스팔트는 끝이 납니다. 지난해 월정사를 비롯해 오대산중의 절들은 아스팔트를 연장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자장율사가 오대산의 길을 연 이후 1500여년 동안 흙길이었으니 우리 역시 그 흙길을 감당하지 못할 바 없을 것입니다. 버리면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포장도로가 주는 편안함과 속도를 버린 만큼 자연이 주는 위안이 채워질 것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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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한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상원사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길가의 나무들이 곤혹스러워 보입니다. 포장을 거부했으니 이제 이 흙길에서 저 자동차를 버릴 차례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대산은 더 많은 위안을 우리에게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곧 현실이 될 것입니다. 오대산이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목표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입니다.

이제까지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사람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보호’라는 말에는 인간이 중심이라는 오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오만을 버릴 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 오만을 버리는 길은 자연을 지배하며 사는 삶을 버리고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font color="6b8e23"> 오대산 천년의 숲 걷기대회</font>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실험하는 오대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5월7일(토요일) 오전 10시~오후 3시에 열리는 ‘제2회 오대산 천년의 숲 걷기대회’는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산길 20여리를 자동차 출입을 막고 열리기 때문에 오대산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5월7일 행사에서는 전나무 숲길 포장을 걷어내는 공사와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묵언의 길,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기원 삼보일배 등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안치환, 노래패 소리타래가 함께하는 산사의 작은음악회도 열릴 예정이다(문의 033-332-6664, www.woljeongsa.org).

<font color="6b8e23"> 가는 길: </font>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에서 오대산까지는 10여분 거리. 나들목부터 갈림길에서는 무조건 좌회전하면 된다. 안내판이 잘 돼 있어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 경유 강릉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진부에서 월정사까지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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