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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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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먹자, 산나물을 먹자!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땅기운·산기운 듬뿍 담은 밥상 위의 봄잔치… 센스 있는 맞춤양념으로 맛과 향 올려볼까

▣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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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낮은 곳에서부터 온다. 들에서 시작해 야산으로, 깊은 산으로 옮아간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 들녘마다 쑥과 쑥부쟁이가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야산으로 가면 원추리·참취·두릅이, 높은 산에 들어서면 얼레지·참나물·곰취가 봄을 반긴다.

“꼬불꼬불 고사리 이산저산 넘나물/ 가자가자 갓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말랑말랑 말냉이 잡아뜯어 꽃다지/ 배가아파 배나무 따끔따끔 가시나무/ 바귀바귀 씀바귀 매끈매끈 기름나무.”

초등학교 4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린 전래동요 <나물노래>이다. 덩~쿵~쿵덕쿵 자진모리 장단으로 부르는 이 노래는 입맛을 살리는 봄노래이기도 하다. 낮은 곳에서부터 온 봄은 밥상에 오르면 진가를 발휘한다.

산나물 박사의 ‘에너지원’ 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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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모(53)씨는 산나물에 매료돼 생업까지 바꾸며 산나물에 빠져 지내는 ‘산나물 박사’다. 20대 후반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산을 다니다 보니 지천으로 널린 나물이 보였고, 뜯어먹다 보니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입에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90년대 초반에는 하던 사업을 접고서 아예 산나물 전문식당을 차렸다. 부인 최혜숙(49)씨와는 산나물 동지다. 한씨 부부가 운영하는 서울 양재동 산나물 전문점 ‘산장’은 예약손님만 받는다. 7천원짜리 산나물비빕밥 한 그릇이라도 예약한 사람에 한해 차려준다. 예약이 없는 날은 산을 찾는다. 산을 찾다 보니 날로 황폐화되는 산과 씨가 마르는 산나물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산나물보존연구회를 만들어 보존에 나섰다. 1999년부터는 산나물 씨앗 심기 운동을 펼쳤다. 해마다 늦가을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토종 산나물 씨앗받기를 해, 다음해 이른 봄에 씨앗을 뿌렸다. 내친 김에 산나물과 ‘사촌’ 격인 약초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만든 동의보감생활약초학회(www.sannamulgol.co.kr)에서는 각종 산나물과 약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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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 겨우내 밀렸던 눈이 전국을 덮은 날, 그의 식당을 찾았다. 한씨는 얼마 전 채취해온 겨우살이 가지를 갈무리하느라 손을 바삐 놀리고 있었다. 겨우살이는 초목이 움츠리는 추운 겨울 다른 나무 둥지에 뿌리박고 살아남아 열매까지 맺는 생명력 강한 식물이다. 인동초, 속세풀, 만병초가 대표적이다. 달여서 차로 마시면 피로회복에 좋다. 겨우살이 옆으로는 ‘산나물의 여왕’이라 불리는 병풍치와 쌉싸름한 곰취가 치맛자락을 펼치고 있었다. 한씨는 “예부터 산에서 나는 것은 모든 게 먹거리가 됐다”면서 “고단하고 배고픈 생활이 짐작되지만, 산 기운, 땅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산나물은 훌륭한 에너지원으로, 이를 섭취했던 옛사람의 지혜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봄이 되면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겨우내 기운을 많이 쓴 탓인데, 산나물은 사람과는 달리 겨우내 기운을 응집해놓고 있어 이를 섭취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도 맞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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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은 4500여종이다. 식용식물은 2500여종이고 약용식물은 1200여종이 된다. 소가 먹을 수 있는 풀은 모두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옛말은 과장이 아니다. 산나물은 상추·시금치·아욱 등 사람 손으로 기르는 재배나물(밭나물)과 구별된다. 자연이 기른다 해도 ‘봄나물 삼총사’로 불리는 냉이·달래·씀바귀를 비롯해 쑥, 쑥부쟁이, 질경이, 엉겅퀴 같은 들나물과도 다르다. 산나물은 산채라고 달리 이름을 붙였다. 들나물은 쑥을 제외하고는 말려 먹는 게 없지만, 산나물은 참나물을 빼고는 다 말렸다가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다.

산나물은 저마다 고유한 맛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200여 가지 산나물 요리법을 지닌 한씨는 “특성을 살려 양념을 달리하면 맛과 향이 훨씬 풍성해진다”고 강조했다.

고사리는 참기름, 취나물엔 들기름

고사리를 참기름에 볶는 이유는 고사리 자체가 비린 향이 많기 때문에 들기름으로 볶으면 비린 맛이 지나치게 강해지기 때문이다. ‘산의 소고기’라 불리는 고사리처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 두릅은 살짝 데친 뒤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제격이다. 떫은 맛이 많은 다래순은 바로 데쳐 먹기보다는 말린 뒤 다시 삶아 들기름에 볶아 먹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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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우는 된장으로 무쳐야 맛이 나고, 취나물은 보통 들기름에 볶아 먹지만 갓 딴 취나물을 데쳐서 된장을 조금 넣어 무치면 독특한 맛을 낸다. 향이 강한 곰취는 날로 쌈을 싸서 먹는데,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 특유의 쌉싸름한 맛 때문에 국에 조금 넣어도 좋다. 곰취는 삶아도 빛깔이 안 바뀌고 향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게 특징이다. 잔칫집 튀김부각으로도 잘 쓰였다. 산초는 장아찌에 박아 먹는 게 맛을 돋운다. 줄기째 먹는 참나물은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어 참나물이라 이름붙었다. 생으로 고추장에 찍어 먹거다 쌈으로 싸 먹기도 하고, 숭숭 썰어 밥에 비벼 먹거나 살짝 데쳐 된장이나 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한다. 참나물을 데쳐 무칠 때 국물을 자작하게 두고 무쳐도 별미다.

산나물에는 비타민, 미네랄, 칼슘, 칼륨과 면역기능이 높은 사토닌 등의 영양분 외에 각종 생리활성 물질이 많이 담겨 있다. 배화여대 식품영양과 최남순 교수는 “산나물은 밭나물보다 영양분류 항목에 포함되는 비타민·무기질 함유량이 높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영양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플라보노이드나 폴리페놀 등 생리활성 물질들이다”라고 말했다. 생리활성 물질에는 혈압을 낮추고 항암 효과가 있다는 각종 기능성 성분들이 포함된다. 폴리페놀은 녹차·우롱차·감잎차에 함유돼 있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이다. 최 교수는 “생리활성 물질들은 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배변작용은 물론 면역기능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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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산나물을 데쳐 말려 만든 묵나물(건나물)은 생나물과 견줬을 때 영양소 차이가 많이 날까? 식품영양학자들은 산나무을 말리면 날것보다 영양소와 생리활성 물질의 효과가 떨어질 수는 있지만 큰 차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새로운 생약 성분들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다. 최 교수는 산나물을 말린 뒤 물에 담가 맛·향·빛깔·모양이 복원되는 것을 살펴보니, 햇빛에 말리는 천일건조가 가장 복원력이 떨어졌고, 열풍건조가 그보다 낫고, 냉동건조가 가장 복원력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냉동건조가 열처리 과정 없이 수분을 없앤 덕분이다. 그러나 냉동건조는 기구가 필요한 탓에 가정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건조법이 아니다. 대신 산나물을 데친 뒤 꼭 짜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먹으면 비슷한 효과를 거둔다.

산림이 황폐해도 산나물의 씨가 마르지만, 거꾸로 산림이 울창해도 산나물이 못 자란다. 모든 산나물은 하루 평균 15%의 일조량을 필요로 한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면 번식이 어렵다. 햇빛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고사리로 평균 50% 이상의 일조량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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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 수북이 쌓인 곳에서도 씨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자연의 약육강식 속에 사라진 산나물들도 많다. 강원도 일대에 많이 났던 누리대는 신선초의 일종으로 예부터 소화제로 쓰였으나,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싸리순과 함께 구황식물로 꼽혔던 곤드레 역시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다. 곤드레는 차진 성분이 많아 죽으로 해먹거나 밥으로도 먹었다.

나물 이름은 우리 말의 보고이기도 하다. 술 취한 모습을 일컫는 곤드레만드레를 보자. 곤드레는 익히면 퍼지는 나물의 형태에서, 만드레는 농요 ‘만드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만드리 풍년제는 부농이 농꾼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하루 동안 고기와 술을 양껏 제공하던 마을잔치였다. 구전 <나물타령>에는 나물 특징과 일상의 풍경이 잘 나타난다.“한푼두푼 돈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동동말아 고비나물 줄까말까 달래나물 칭칭감아 감돌레 집어뜯어 꽃다지 쑥쑥뽑아 나생이 사흘굶어 말랭이 안주나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입맞추어 쪽나물 잔치집에 취나물….”

“중국산 구별하세요”… 지역 축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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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의 효능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일반 매장에서는 쉽게 찾기 어렵다. 자연산 산나물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산나물 전문 쇼핑몰 산에산나물(www.sannamul.co.kr)을 이용할 만하다. 묵나물만 취급한다. 운영자 안순화(40)씨는 “말린 취나물의 경우 중국산은 줄기가 변색된 것이 많이 섞여 있고 굵고 딱딱하거나, 전체적으로 부서진 게 많고 독특한 향기가 약하다”고 중국산 구별 방법을 설명했다. 집에서 묵나물을 보관하려면 말린 산나물을 종이봉투에 넣어 바람이 잘 통하고 서늘한 곳에 뒀다가 가끔 햇볕에 말려주는 게 좋다. 반쯤 말려 냉동고에 얼려둬도 금세 먹기에 좋지만, 오래 두면 냉장고 냄새가 밴다. 말린 나물을 종이에 싼 다음 비닐에 넣고 다시 종이로 싸두면 냄새 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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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게 산나물을 뜯으러 가려면 무턱대고 떠나기에 앞서 각 지역의 산나물 축제를 이용하는 게 낫다. 산나물은 4월부터 5월까지 두달 동안 여린 잎을 채취하는 게 좋다. 6월이 넘어가면 ‘쇤다’는 표현처럼, 억세고 질겨진다. 산행에 앞서 산나물에 대한 기초지식을 얻으려면 인터넷 사이트 산나물연구회(www.sannamul.net)에 들를 만하다. 2000년부터 사이트를 운영해온 안완식(49·한국가스안전공사 근무)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산나물 마니아’다. 안씨는 “산나물은 캐는 게 아니고 뜯는 거다. 절대 뿌리째 캐선 안 되고, 잎도 뒷사람을 위해 몇개는 남겨둬야 한다. 자연과 공동체를 위한 배려다”라고 강조했다. 봄의 선물 산나물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센스’는 꼭 지켜줘야 할 것 같다.

*나물그림:그린이 장순일.<고사리야 어디있냐?>(기획 도토리, 도서출판 보리 펴냄)




독초면 어떡하죠?

고사리가 정력 감퇴를 일으킨다? 낭설이다. 생고사리는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성분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설사나 배탈을 일으키지만, 데쳐서 말렸다가 물에 담가 불리는 과정을 거치면 독소가 말끔히 없어진다. 말린 고사리를 불린 뒤 다시 삶아, 볶거나 무쳐 먹으면 아무 문제 없다. 산불 난 자리에 가장 먼저 번식하는 게 고사리이듯,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력 없는 이들에게는 제격이다.
두릅과 개두릅(엄나무순), 다래순, 그리고 나무에서 난 나물도 모두 데쳐 먹어야 한다. 다들 독성을 지니고 있는 탓이다.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얼레지나 원추리에도 미량의 독성이 있다. 원추리는 푹 데쳐 새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좋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지 말고 가급적 다른 나물들과 같이 먹는 게 좋다. 얼레지도 꼭 데쳐서 말렸다가 먹어야 한다. 오늘 말려 내일 먹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야 독성이 제거된다. 들기름에 볶아 먹으면 좋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나물들과 상생하는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독성 식물이라 해도 가공·처리 방법에 따라 훌륭한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밥 한 덩이, 된장 작은 덩이, 기름 몇 방울만 지니고 봄산에 오르면 지천에 널린 산나물로 끼니를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다지만, 그건 알고 먹었을 때 얘기다. 봄만 되면 빠지지 않는 뉴스가 산나물 잘못 먹어 탈난 사람들 얘기다. 지난해 5월에는 경기 가평에서 아주머니 넷이 독초가 섞인 산나물을 뜯어 그 자리에서 데쳐 먹다가 변고를 당한 일도 있다. 올봄처럼 겨우내 가문 뒤의 봄에는 생물의 몸에 독성이 많이 내재돼 있다고 한다. 해마다 먹던 나물이라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00% 확신하기 전에는 어떤 풀이라도 함부러 입에 넣어선 안 되고, 헤깔린다면 산골 어른들에게 꼭 확인받을 필요가 있다.
독성이 많은 산나물이나 독초를 먹었을 때는 다 토해내고 감초나 쥐눈이콩을 같이 끓여 진한 물로 한두컵 먹이는 게 보편적인 민간 응급처치 방법이었다. 이른 시간 안에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다.
조금만 먹어도 치사량이 되는 대표적인 독초로는 초오를 꼽을 수 있다. 뿌리·줄기를 짓찧어 화살촉에 발라 동물사냥에 이용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앉은부채, 박새, 천남성, 동의나물, 미치광이풀, 현호색, 애기똥풀도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옛사람들이 이름을 기괴하게 붙인 것은 다 까닭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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