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터페이스 혁명을 주도하는 ‘터치’ 전자제품들, 기계의 물성에 ‘온기’를 더하는 감성을 ‘터치’하라
▣ 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왕년의 인기 팝그룹 조이는 노래 불렀다. ‘터치 바이 터치.’ 가사는 이렇다. “터치 바이 터치, 그댄 언제나 내 사랑이죠/ 스킨 투 스킨, 내 벗겨지지 않은 비밀 속으로 와요/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찰 때면/ 너무 떨리게 하죠.” ‘에브리웨어 성감대’인 사람에게는 미안하게도, 이제 ‘터치’ 시대다. 이들은 우리를 떨리게 하고, 우리가 만져주면 부르르 떤다.
전지현과 김태희가 맞붙다
텔레비전을 틀면 ‘터치폰’ 광고가 넘쳐난다. 물량 공세의 중심에는 햅틱과 뷰티폰이 있다. 삼성전자 애니콜 햅틱은 ‘터치’의 ‘실재성’에 광고 포인트를 잡았다. ‘여자친구가 전지현보다 좋은 이유는?’ 햅틱폰이 말하는 이 질문의 답은 이렇다. ‘만질 수 있어서.’ 전지현의 상대로는 김태희가 맞붙었다. LG전자의 뷰티폰 광고는 김태희의 ‘여가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김태희는 휴대전화에 남자친구의 사진을 띄워놓고 ‘너가 제일 나빠’라며 펜으로 낙서를 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이 주는 새로운 재미를 강조한 것이다. 고진우 얼리어답터 콘텐츠팀장은 “터치스크린 기술은 편리함 외에도 기존 휴대전화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사진 편집, 게임 등 새로운 재미와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낳았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도 좋다. 지난 3월25일 출시된 햅틱폰은 보름 만에 3만 대가 팔려나갔다. 하루 평균 2천 대가 개통된 셈이다. 삼성전자 홍보팀의 최수연 대리는 “통상 인기 있는 휴대전화가 하루 평균 1천 개 개통된다”고 말했다. ‘대박’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이유다. 출시가가 80만원에 가까운 초고가폰임을 감안하면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은 이례적이다. 일부 매장에서는 품귀현상도 빚어진다. 하이마트 서울 오목교지점의 임형진 사원은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제품이 없어서 못 판다”고 말했다.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만난 한 직원도 “사러온 손님들이 웃돈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게임기 등 디지털 제품에서도 ‘터치’는 대세다. ‘터치 혁명’은 닌텐도DS에 오면 더욱 명확해진다. 2004년 12월에 나온 닌텐도DS는 두 개의 화면을 위아래로 배열하고, 블루투스·마이크 등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게임기 속에 넣었다. 무엇보다 아래 화면에 들어간 터치스크린은 기존 게임의 개념을 바꾸었다. 게임평론가 박상우씨는 “천편일률적인 게임 조작 방식을 바꿈으로써 게이머에게 새로운 경험을 획득하게 했다”고 평가한다. 당시까지의 게임은 그래픽을 사실적으로 만들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것이 ‘게임의 룰’이었다. 그럴수록 일반인들에게 게임은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는, 바쁜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갔다. 일본 게임업계에서도 전체 시장 규모가 매년 축소되고 있었다. 닌텐도 홍보팀에서는 닌텐도DS의 목표가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게임의 현실감을 높인 터치스크린이다.
넥슨재팬의 정석모씨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응원단’ 게임을 하면서 더블스크린의 터치패드가 갖는 UI(User Interface)와 게임 플레이의 직관성에 놀랐다”고 말한다. ‘만져라 슈퍼 와리오’는 긁고 문지르고 바람을 불고 하는 데 따라 게임이 이루어진다. 닌텐도DS는 지난해 1월 국내에서 발매된 이래 100만 대를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일본에서도 2천만 대 이상 팔리는 인기를 누렸다.
오감 자극, 미감에서 촉각으로
전자제품에 단순히 ‘터치’ 기능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마케팅에 성공한 예도 있다. 카시오는 지난해 2월 터치패널에 직접 글자를 써서 단어를 찾을 수 있는 ‘필체 인식 기능’을 전자사전 ‘exword’ 시리즈에 도입했다. 이는 읽기가 어려운 일본어 한자를 바로바로 탐색할 수 있게 했고 일본어 사전 시장의 장악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누리안, 캐논, 에이원프로 등에서도 새로운 제품에 터치스크린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일반 전자제품에는 디자인을 위해 ‘터치’ 기능을 제품 안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캠코더나 MP3는 터치스크린으로 재생·되감기·일시정지·정지가 가능하다. 제품 겉면에 버튼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만들어질 여지가 넓어졌다. 아이폰 터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재 출시되는 여러 종류의 캠코더와 MP3 겉면에는 녹화버튼이나 전원버튼 하나만 보인다.
‘터치’는 최근 인간 오감을 자극하는 쪽으로 가는 기업 마케팅 전략과도 딱 맞는다. 지난해까지 인기를 끈 상품들은 대부분 미각을 자극하는 이름이 지어졌다. LG전자의 홈시어터인 ‘샴페인’은 우아한 삼페인잔의 곡선을 닮은 스피커 디자인을 채용했고, 삼성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텔레비전 ‘보르도’는 와인잔에 와인이 담겨 있는 모습을 형상화해 LCD 텔레비전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애플 아이맥도 ‘딸기’ ‘포도’ ‘블루베리’ ‘오렌지’ ‘라임’ 등 먹고 싶은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 음악서비스인 ‘멜론’도 감각을 좌우하는 마케팅의 좋은 예다. 의 전은경 수석기자는 “지난해까지 미각을 자극했던 마케팅 전략이 올해 들어 촉감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애플과 닌텐도의 약진 뒤에는
휴대전화의 터치 디자인 활용은 ‘인터페이스의 적극적 변화’를 예고한다. 비유하자면, 터치스크린 방식인 ‘드래그 앤드 드롭’의 도입은 컴퓨터의 도스 체제에서 윈도 체제로의 변화에 맞먹는다. 전 애플 컴퓨터 엔지니어이자 현재 쿨리리스의 기술 이사인 오스틴 셔메이커는 “왜 지난 20년간 컴퓨터의 인터페이스가 변화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컴퓨터를 툴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그리고 지능의 확장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컴퓨터’는 ‘전자기기’로 바꿔도 무난하다.
애플과 닌텐도가 최근 보여준 약진은 이런 인터페이스의 변화가 어떻게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이전 애플은 컴퓨터 시장에서 IBM에, 닌텐도는 게임기 시장에서 소니에 밀려 2인자 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애플은 아이팟에 버튼들을 단순화하고 셔틀 방식의 ‘재미있는 인터페이스’를 채용하면서 MP3 시장을 주도했다. 그 다음으로 내놓은 아이폰은 ‘터치’ 방식을 채용했다. 애플은 2002년 여름 이후 5년 동안 수익률이 무려 2천%나 껑충 뛰었다. 애플의 주가는 정보기술(IT) 기업 중 단연 선두다. 닌텐도는 닌텐도DS, 닌텐도DS라이트에 이어 ‘Wii’라는, 온몸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를 내놓았다. 닌텐도 역시 일본 유수의 기업체를 물리치고 시가총액 랭킹 3위에 올랐다.
‘터치’ 열풍은 현대사회의 요구와도 부합한다.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터치 열풍의 원인을 현대인의 ‘외로움’에서 찾았다. 오 교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디지털 기기의 발전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가상’ 공간에 파묻히게 됐다”며 “그 안에서 현대인은 ‘실제’적 만남을 꿈꾼다. 그런 꿈이 실질적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끌리게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터치’를 갈구하는 현대인은 육체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몸에서 터치는 이제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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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 기술 역사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터치스크린’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화면을 눌러서 제품을 조작하는 이 기술은 1971년 미국에서 개발됐다. 그러나 이것이 상품화되기까지는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최초의 터치스크린 상품은 1983년 휼렛패커드(HP)사가 내놓은 ‘HP-150’이다. 그러나 초기 터치스크린 상품은 개인용이라기보다는 ‘공공기기’였다. 박물관 전시 안내기나 은행 현금입출금기, 공공기관 증명서 발행기 등에 이용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인용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PDA와 내비게이션 개발 바람이다. 이후 PMP, 휴대전화, MP3, 캠코더 등의 디지털기기에 터치 디자인은 응용됐다.
현재 국내 디지털 제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터치스크린 기술은 대부분 ‘저항막 방식’이다. 햅틱폰, 뷰티폰 등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이는 투명도전막이라 불리는 2장의 판이 겹쳐진 스크린을 손이나 스타일러스펜으로 누르면 기기가 그 세기를 감지하면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힘을 전달할 수 있는 어떤 물체로도 조작이 가능하지만 주로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을 읽는다.
이와 달리 ‘정전용량 방식’이란 것도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이는 스크린에 손을 댔을 때 사람의 몸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를 인식해 작동하는 원리다. 그렇기 때문에 장갑을 낀 상태나 전기가 통하지 않는 스타일러스펜 등으로는 작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폰처럼 두 손가락으로 드래그를 할 수 있는 ‘멀티터치’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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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터치폰’ 시장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맨처음 ‘터치폰’을 선보인 것은 ‘PDA폰’에서다. PDA폰은 터치 스크린을 갖춘 PDA에 휴대전화 기능을 추가한, 가끔씩 전화기가 되는 PDA다. 새로운 터치폰들은 이런 PDA폰의 단순한 터치 기능에서 한 발 더 진화했다.
햅틱폰은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적 느낌을 결합한 ‘디지로그’적 감성을 자극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손가락으로 볼륨 다이얼을 키울 때마다 ‘틱, 틱,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진다. 마치 실제 라디오 볼륨을 올리는 듯한 느낌을 주려는 것이다. 사진을 검색할 때도 화면과 소리를 넣어 실제 사진첩을 넘기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햅틱은 영어로 ‘촉각의’라는 뜻이다.
햅틱폰으로 삼성전자가 ‘터치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터치폰의 강자는 전통적으로 LG전자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터치폰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3월 LG는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손잡고 ‘프라다폰’을 출시했다. 당시 LG전자와 프라다의 합작으로도 화제를 낳았던 이 프라다폰에 들어간 것이 ‘터치스크린’이다. 프라다폰은 화면에 글을 적으면 이를 자동 인식하는 필체인식 기능도 지원한다. LG전자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뷰티폰은 스타일러스펜을 이용해 낙서를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지난 3월 말 LG전자는 제품 이름에 본격적으로 ‘터치’를 넣은 터치웹폰을 출시했다. 터치웹폰은 LG텔레콤의 3세대(3G) 이동통신서비스 ‘오즈’ 전용폰으로 출시됐다. 오즈 전용폰은 ‘풀브라우징’이 적용된다.
조현경 디시인사이드 콘텐츠팀 본부장은 터치폰에 최근 기업들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로 ‘아이폰’을 든다. 지난해 6월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은 우리나라에서는 호환이 불가능해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400만 대 이상 팔려나가며 초히트를 기록했다. 아이폰은 터치스크린 방식을 채용하면서 인터페이스에서도 새 기술을 선보였다. 두 손가락을 이용해 드래그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아이폰은 프라다폰의 출시보다 조금 늦다. 조현경 본부장은 “한때의 바람일 수 있었던 터치폰의 시장에 아이폰이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휴대전화의 ‘터치’ 대공세는 더욱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가드너는 “지난해 세계적으로 1500만 대 수준이던 터치폰 시장이 올해는 두 배 이상인 3500만 대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전체 휴대전화 인구의 3% 정도가 터치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삼성전자 홍보팀의 최수연 대리는 “현재 3%에 불과한 터치폰 사용자가 2009년에는 27%로 9배 정도 늘어날 것”이라며 “터치폰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 사업본부의 안승권 본부장은 지난 2월 “국내 출시되는 50만원 이상의 고가폰에는 모두 터치스크린을 적용하겠다”며 “올해 열 종류 이상의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지난 3년간 사용하던 슬로건인 ‘싸이언 아이디어’를 버리고 지난 2월29일부터 놀라움을 터치하라는 뜻의 ‘터치 더 원더’를 새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풀브라우징’으로 가는 현재의 트렌드에서도 ‘터치폰’은 유용하다. 풀브라우징을 위해서는 화면이 넓어야 하고 버튼을 넣기에는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화면에 버튼을 띄우고 필요 없을 때는 사라지게 하는 방식은 공간을 절약한다. 키보드도 띄웠다가 사라지는 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 LG전자의 3번째 터치폰 기획상품인 ‘터치웹폰’이 ‘오즈’ 전용폰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SK텔레콤의 관계자는 “풀브라우징에는 터치폰이 제일 적합할 것 같다. 인터페이스의 ‘싱크’가 맞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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