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조롱하고 음모를 밝힌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바야흐로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가 30년 만에 되살아나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이 난데없는 ‘새마을 바람’은 탤런트 김정은이 “여러분~ 부자되세요”라고 속삭일 때부터 솔솔 불어오더니 ‘아침형 인간’이니 웰빙이니 몸짱이니, 방향을 바꿔가며 대한국민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있다. 더욱 민망한 것은 이 바람이 찢어진 청바지 같은 유행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됐다는 사실이다. 21세기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오직 잘살아보세!
는 물론, 아침형 인간 담론에 대한 공격이다. 만화가 이우일씨, 영화평론가 듀나, 출판평론가 표정훈씨 등 발랄한 필자 19명의 글을 모았다. 그런데 이들의 글은 아침형 인간들과의 정면대결이 아니다. “이 책의 취지는 성공적인 아침형 인간들과 머리카락을 뜯으며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게으른 ‘올빼미’들을 모두 광화문으로 불러 모아 궐기대회를 열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말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체질에 맞지도 않는데 아침형 인간의 대열에 끼어버린, 그래서 틈만 나면 하품을 해대는 분들을 위로하고… 성공하지 못한 게으름뱅이로 평가받는 수많은 ‘올빼미’들을 격려하자는 의도가 숨어 있다.”
필자들은 만화든 수필이든 기사든 자신의 ‘장기’를 이용해 아침형 인간들의 지루함을 조롱하며 아침형 인간의 거룩한 음모들을 들춰내고 있다. 이를테면 한바탕 비웃어보자는 식이다. 은 맘만 먹으면 한 시간 만에 읽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 이 가벼운 책의 미덕은, 광고 카피를 순식간에 성경 말씀으로 변환시키는 지금 우리의 ‘동의의 체계’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은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 착한 어린이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며, 아침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피곤한 새 아침을 맞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새벽별 보며 등교하지 않으면 학생이 아니었고, 그 요란한 학업 덕택에 회사에 들어가면 출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어느 대기업의 총수님은 7시 출근 4시 퇴근을 하명하기도 했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또 아침형 인간이란 말인가.
필자들은 반감성적인 아침형 인간들을 조롱하거나 ‘올빼미족’으로서 디오니소스적 감성이 춤추는 밤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도 하고, 소음인은 아침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한의학적 분석을 내놓기도 하고, 를 그리고 난 뒤 곤히 잠들어 있는 고흐를 운동하라고 깨울 것인가하는 별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박상현씨는 일본의 처세술을 확대 재생산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숨어 있는 열등감을 떠올린다며 아침형 인간 담론의 뿌리를 캐내기도 한다. 결국, 이들의 지론은 아침형이니 저녁형이니 하는 말도 안되는 잣대로 삶을 가르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가슴을 찌르는 글은 ‘회사원’들의 이야기다. 스스로를 ‘멀티플 호환성의 회사형 인간’이라 칭하는 ‘철밥통’씨에게 회사에서 옹호하는 아침형 인간이란 “밤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 다 하고도 아침에 지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하는 형의 인간”이다. ‘칼퇴근’은 오직 군대 단기병에게만 존재하는 현실에서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피로감 가득한 ‘새벽의 꿈’을 꾸며 출근하는 일은 옳은가. 그리하여 우리는 이들의 발칙한 함성을 듣게 된다. 아침형 인간, 제발 강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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