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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호치민, 그리고 김일성

등록 2005-08-25 00:00 수정 2020-05-02 04:24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1960~70년대 구미 진보주의자들이 유독 김일성만 소홀히 다룬 이유는?
전쟁으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세 사람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생각해보면 우리는 좀 희한한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서점에서 호찌민(1890∼1969)이나 마오쩌둥(1893∼1976)의 전기를 쉽게 살 수 있고, 그들에 대한 호의적인 글들도 읽어볼 수 있다. 물론 그들에 대한 호의적 태도는 그들이 표피적으로 내세웠던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경우가 대다수다. 피상적 이념이 어떻든 간에 그들은 ‘조국 통일’에 성공한 근대 민족국가의 ‘창업 군주’였는데, 민족·국가를 신성시하는 우리의 통념상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거기다 호찌민은 개인 생활에서까지 ‘이공위상’(以公爲上·공적인 것이 우선이다)이라는 현대판 ‘군자’의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우리로서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은 성왕·영웅들을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인물들을 좋아하려면 굳이 좌파 사상과 연관지을 필요도 없다. 이에 반해 근대 동아시아의 창업 군주의 반열에 함께 오를 김일성(1912∼94)의 평전을 구하려면 재미학자 서대숙의 1980년대 말~90년대 초의 작업을 정리한 번역판 이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 우리의 통일 파트너가 될 북한을 말 그대로 ‘김일성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음에도 김일성이라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 하지는 않았다. 북한이 더 이상 ‘주적’은 아니다 하더라도 아직은 김일성이 건설한 한반도의 반쪽 민족국가가 우리와 명실상부한 평화 공존의 시대에 접어들지 못해서일까?

유교적 민족주의는 세사람의 공통분모

우리로서는 반세기 동안의 ‘적대적 공존 관계’ 유산이 김일성을 거리를 두어 중립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었지만, 바깥 세상에서의 김일성에 대한 태도는 더욱 놀랍다. 북한은 중국·베트남에 비해 1950∼60년대 도시화·산업화가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됐고 냉전의 최전선에 내몰린 국가인 만큼 전 사회에서 군이나 보안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통제 사회의 이미지를 강하게 내비쳐왔다. 게다가 부자간의 권력세습이라는 왕조적 전통이 가미돼 외국인들에게 더욱 이질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근대적인 민족주의가 결합된 집단에 대한 신성화, 개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 초기 민족주의의 ‘영웅 숭배’의 영향을 받은 ‘지도자 모시기’ 풍토, 국가 차원의 대농민 수탈을 통한 자본 축적과 개발이라는 국가적 전략 등 기본적인 요점에서 김일성은 마오쩌둥이나 호찌민과 어떠한 본질적인 차별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마오쩌둥이나 호찌민에게는 중립적이거나 호의적으로 접근해보려는 구미 지역의 ‘주류’ 학자들이 김일성을 적대시하고 북한 사회를 ‘비정상’으로 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마오쩌둥이나 호찌민의 후계자들이 자기 나라를 구미 자본에 열어줘 저임금 노동력 착취라는 황금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데에 반해 김일성의 후계자는 아직도 1950∼60년대의 마오쩌둥이나 호찌민의 노선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은 외국 자본을 ‘모실’ 태도가 돼 있는데도 미·일 극우의 봉쇄 작전 때문에 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북한의 본심을 구미에서 몰라주고 있다는 말이 된다. ‘주류’는 그렇다치고 1960년대 말∼70년대 초에 마오쩌둥과 호찌민에 열광했던 구미 지역의 반체제적 젊은이들까지 북한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베트남과 상당히 다른 김일성의 민족주의적 실천 담론의 특성들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해보자.

북한의 현실에 절망해 남으로 넘어온 탈북자들까지도 현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김일성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평가하는 등 그가 이북에서는 진심 어린 존경을 받고 있지만, 1960∼70년대 구미의 진보주의자들은 마오쩌둥과 호찌민에 쏟은 열정에 비하면 김일성을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당시 서구의 젊은 반란자들이 추구했던 인간 해방의 이상이 김일성의 민족주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유교적 색깔이 강한 민족주의는 마오쩌둥과 호찌민, 김일성 세 사람의 공통분모다. 그 당시 응우옌아이꾸옥, 즉 완애국(阮愛國)이라는 별명을 지녔던 호찌민은 1922년에 “식민주의라는 불행 앞에 서게 되면 모든 계급들이 다 사라지고 민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일체가 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죽음을 앞둔 김일성이 1991년에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이 있다”고 선포했을 때 그는 오래전에 선배 마오쩌둥·호찌민이 개척한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보편적 가치의 자리에 올린 것은 세 지도자 모두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그 문화적 배경이나 인생 역정이 달랐던 만큼 표현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호치민의 화려한 경력에 비해…

세 사람은 다 ‘무산계급 해방’을 외쳤지만 마오쩌둥·호찌민은 태생적으로 무산계급에 속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곡물 중개업자이었던 마오쩌둥은 어릴 때 약 5년 동안 서당에서 공맹을 배우고 그 뒤 지방의 사범학교를 나와 베이징대학에서 도서관의 보조 직원을 지냈다. 호찌민은 나중에 집안이 몰락했지만 일급 관료이자 유교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유교 경전과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도 가졌고, 1911년에 유럽으로 떠난 뒤 체계적인 독학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터득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호찌민이 그 저술에서 체계성을 띤 철학적인 사고를 드러내고 유교 경전들을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었던 배경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가난한 하급 시골 지식인의 아들 김일성은 전통 사상을 연마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근대 교육의 경력도 지린 육문(毓文)중학의 중퇴로 끝나고 말았다. 소련 체류라는 경험을 호찌민과 김일성이 공유하지만, 호찌민이 레닌대학의 졸업과 민족과 식민지 문제 연구소에서 강의 등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반면 김일성은 약 4년간 소련 군 복무의 나날을 보냈다. 한마디로 마오쩌둥·호찌민은 철학적인 사유 체계를 나름대로 확립한 사상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던 반면, 김일성은 ‘실무자형 지도자’로 일관될 수밖에 없는 배경에 놓여 있었다. 한홍구 교수가 지적했듯이, 그의 주체사상의 기반도 보편성 지향의 철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의사(擬似)가족과 같은 유격대의 통솔 경험에 있는 것이다. 김일성이 ‘가장’으로 사는 북한이라는 ‘가족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주체라는 것은 사상보다 일상적 생활 체험에 가깝지만, 이와 같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주체 이야기는 구미처럼 개인화된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이해될 가능성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김일성 평전도 쓰여지기를

민족국가 건설을 핵심으로 삼는 것 이외에 마오쩌둥·호찌민·김일성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지상 명령의 실천을 전쟁으로 이루는 것이었다. 식민지나 일제의 침략, 극우정권의 탄압과 같은 역사적 조건을 생각해본다면 1941년에 호찌민이 창립한 베트남 독립동맹이 정치조직이자 군사조직이었다는 점, 1927년 이후에 중국 공산당과 홍군이 사실상 하나의 조직이 됐다는 점, 유격대 지도자 김일성이 1937년의 보천보 전투 이후에 ‘혁명가’라기보다는 ‘장군’으로서 전설이 됐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마오쩌둥·호찌민은 인민전쟁에 대한 글을 썼음에도 군 지휘관이 아닌 ‘정치적 지도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는데 반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독립적인 정치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웠던 김일성은 ‘군사 지도자’로 명성을 날렸다는 것이다. 마오쩌둥·호찌민에게 붙지 않은 ‘장군’의 명칭이 초기 김일성의 일반적인 호칭이라는 것이 이를 잘 반영한다. 마오쩌둥이 18살의 나이에 후난성의 혁명군에 복무한 일이 있었지만, 김일성은 어린 14살의 나이에 화성의숙에서 최초의 군 훈련을 받았다. 6·25전쟁을 거친 북한 사회는 그 뒤로 ‘전시’ 상황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세계의 가장 군사화된 북한이 탄생됐는데 그 탄생에 나름의 역사적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보편적인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계급과 개인을 망각한 채 민족과 인민·국민에 매달리고, 정치와 군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지도자와 추종자들의 수직적 관계를 기반으로 했던 20세기 한국 민족주의 근대의 상(像)을 표현한 그에 대한 평전이 국내에서도 쓰여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김일성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20세기 한반도 비극의 뿌리와 실체 또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1. 찰스 펜 지음, 김기태 옮김, <호치민 평전>, 자인, 2001

2. 에드가 스노 지음, 신복룡 옮김, <모택동 자전>, 평민사, 2001

3. 조너선 스펜스 지음, 남경태 옮김,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푸른숲, 2003

4. 서대숙, <현대 북한의 지도자>, 을유문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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