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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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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비올레타 스타일

등록 2005-08-04 00:00 수정 2020-05-02 04: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유럽이 러시아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로 자욱했던 1917년, 가난하지만 평온했던 칠레 남부 시골, 마을의 음악교사인 아버지와 아홉 아이를 기르며 틈틈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비올레타 파라는 열두살에 작곡을 시작해 동네 아이들 앞에서 들려주고 산티아고 국립음악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작곡한 노래들을 동네 술집과 서커스, 마을축제 등에서 연주하고 다녔다.

세살 터울의 오빠 니카노르 파라는 피노체트 군부 독재를 마감시키기까지 거리의 언어와 비속한 표현, 법률 용어, 장례식 조문, 정치 연설에 사용되는 진부한 표현을 자기 시에 구겨넣으며 부적절한 조합을 통해 유머와 풍자를 끌어냈던 반(反)시 운동의 기수로, 군사정권에 의해 살해된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등과 뜻을 함께하며 중남미 현대시를 주도한 대표 시인인데, 영혼의 교감을 나누었던 오빠의 독려와 지원에 힘입어 그녀는 1952년부터 전국을 돌며 구전민요와 노랫가락을 수집한다. 이 여행에서 남미의 다양한 소리와 문화에 눈을 뜨고, 정형화된 외래 음악을 극복하는 민속음악의 뿌리 찾기와 보존에 열정을 바쳐 전통음악을 대중가요로 새로 빚은 이른바 ‘누에바 칸시온’(새 노래) 운동을 일으켰다. 사회비판과 저항정신으로 빛나는 이 노래들은 1973년 쿠데타 이후 악!랄한 군사독재 치하에서 고통받던 칠레 민중에게 희망과 위로의 원천이었다.

순결하고 고지식한 비올레타는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탄압에 결연한 의지로 저항하며 노동자와 농민의 가난한 삶을 끌어안고 그들과 연대했지만, 계급적인 적대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가톨릭 정서에 뿌리를 둔 휴머니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서정적인 감성으로 인간의 삶에 가해지는 제도적 굴레와 억압에 묵묵히 저항하는 쪽이었다. 이러한 서정성은 엄마의 재능을 이어받은 그녀의 두 딸을 비롯해 중남미의 ‘새 노래 운동’을 주도한 음악인들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했다.

사회당의 당원으로 열심히 활동한 덕에, 냉전 시대 동유럽과 서유럽 모두에서 대대적인 찬사와 환영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하던 그녀는, 유럽 각지에서 만난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통해 자기 안에 있던 다른 재능들을 일깨워 감성이 뭉클뭉클한 시를 지었다. 어느 날은 문득 전문 요리사 솜씨를 능가하는 뛰어난 솜씨로 만찬을 준비하고 ‘낭송의 밤’을 여는가 하면, 그림과 도자기와 수예에도 놀라운 기량을 드러내 모든 분야마다 ‘비올레타 스타일’을 창조해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팔방미인과 미인박명이란 말은 딱 그녀를 두고 한 말이다. 그토록 탁월하고 총명하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비올레타 파라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고 김이 빠진다. 1967년 반전 혹은 평화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존 바에즈와 메르체데스 소사의 목소리로도 유명한 ‘삶에 대한 감사’(gracias a la vida)라는 감동의 시를 쓰고 노래까지 붙인 그녀, 쉰이 채 안 된 나이로 실연의 아픔과 경제적 곤궁을 비관한 나머지 그 ‘감사한 삶’을 자살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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