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명품은 모조리 몸에 두른 듯 으스대다가 지금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서게 된 집단이 있다. 이른바 ‘(금융)경제 전문가’들이다. 그동안 최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금융체제야말로 인류를 최적화된 풍요의 미래로 이끌어줄 것이니 정부는 뒤로 빠져야 한다고 틈만 나면 목소리를 올렸던 이들이다. 코스피가 1700을 넘던 몇 년 전 틈만 나면 보수 일간지 등을 통해 비분강개의 어조로 ‘경제 위기’를 논하던 모습은 막상 코스피 지수가 세 자릿수가 된 지금은 간데없다. 불현듯, ‘가만히 있으면 50점이다’가 행동 요령이 된 것이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경제 위기를 만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알몸이 드러난 낭패감을 가누지 못했는지, 이들은 새총을 꼬나들고 숲으로 뛰어가 나뭇잎 속 깊이 숨어 앉은 부엉이에게 화풀이를 해댄다.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 사냥이 한창이다. 국정원은 그의 신상을 확보해두었다고 한다. 새롭게 ‘국영’ 방송으로 거듭난 한국방송은 어둠 속 음침한 요주의 대상쯤으로 그와 그의 주장을 채색했다. 여기에 어느 금융기관 조사부장이라는 이까지 나서 ‘루카스 기대 가설’을 들먹이며, 미네르바의 비관적 경제 예측은 별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그들의 행동을 몰아가 실제로 경제 위기를 만들어버린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현재 금융 사태의 주요한 위험 요인이 미네르바라는 부엉이 한 마리의 울음소리라는 식이다.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루카스의 본래 주장은 정부가 여러 경제 정책을 펼쳐봐야 사람들이 모두 그 정책이 자신의 소득에 끼칠 영향을 감안해 행동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게 기본 골자다. 인터넷의 무명씨가 게시판에 올린 글이 정부의 정책 게시와 같은 효과를 가졌을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은 참으로 기상천외다. 또 이런저런 소문에 휘둘린 ‘떼거리 행태’(Herd Behavior)로 금융시장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주식 소유가 심히 분산된 ‘깊은’ 주식시장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며, 상황이 뻔한 한국 주식시장의 주인공은 무수한 개미들이 아니라 한정된 수의 금융기관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네르바는 스스로를 ‘천민’으로 부르며 ‘천민’의 관점에서 글을 썼던 사람이며, 그 글에 뜨겁게 반응한 ‘천민’ 독자 수도 기껏 몇천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굴지의 금융기관들은 물론이고 이번 사태 때 ‘팔자’로 일관했던 외국인들 또한 자신들의 조사분석 부서를 내팽개치고 미네르바의 그 어지러운 구어체 한국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수고를 무릅쓰며 행동의 지침으로 삼아 움직였다는 것인가.
창피함을 안다면 그만두라공무원들이나 업계 인사들의 행태는 그렇다 치자. 지금 더욱 허탈한 것은 이 아비규환의 와중에서도 치킨집 문 앞 할아버지 인형처럼 나비넥타이 하나 매고서 꼼짝 않고 있는 경제학자들의 수수방관이다. 코스피 3000이니 5000이니 하다 졸지에 주가 747의 위업을 코앞에 두게 된 현 경제 체제는 지금 애꿎은 시민 한 사람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있거니와, 이 포복절도의 희극은 사실 한국 경제학과 경제제도 전체의 굴욕이다. 을지문덕 장군 말씀을 약간 바꿔, ‘창피함을 안다면 이제 그만해두라’. 오히려 지금은 그동안 절대 진리의 구현자나 되는 듯 자기들 뜻대로 나라 경제를 만들어왔던 ‘경제 전문가’들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다. 이 시험장에서 백지 내고 나갈 생각들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백지 답안의 점수는 50점이 아니라 0점이며, 0점 받은 사람을 선생이라고 따를 사람은 없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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