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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 앤드 셰임

등록 2008-10-22 17:00 수정 2020-05-03 04:25

네임 앤드 셰임(Name & Shame). ‘이름 밝혀 창피 주기’ 정도로 해석되는 이 용어는 서구의 사회·인권운동 단체들이 사용하는 전술의 하나를 일컫는다. 비리를 저지르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장본인이 누구인지 드러내 밝힘으로써 그런 행위를 저지하자는 것이다. 그에게 자식의 이름이 더렵혀지는 걸 원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그에게 아버지나 어머니가 구설에 오르는 것을 창피해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에게 나쁜 짓 하는 친구를 싫어하는 선량한 벗이 있다면, 무엇보다 그에게 일말의 수치심이 있다면, 지탄받을 만한 일이 자신의 이름과 얽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고 설사 그런 일을 저질렀더라도 반성하고 더 이상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 본성에 비추면 지극히 원론적이고 특별할 것도 없는 전술이다.
그러나 서구의 사회·인권운동 단체들은 이 전술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우간다의 이디 아민 같은 지독한 독재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부패로 치부하고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고도 이에 대한 비판에 아파하지 않는다. 누군가 힘으로 자신을 제압하지 않는 한, 말의 화살은 두렵지 않은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꿋꿋이 인종분리정책을 고수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부터 국민이 허리케인의 대재앙에 신음하는데도 국제사회의 지원을 오히려 막아나선 버마 군사독재자들에 이르기까지 ‘네임 앤드 셰임’에 면역력을 가진 자들의 계보는 면면하다. 서구 단체들은 북한도 그런 정권의 하나로 꼽는다. 독특한 이데올로기와 철저한 내부 단속 기제로 무장하고 있는 탓일까. 우리나라의 과거 군사독재 정권들은 이런 점에선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할까. 말만이라도 ‘민주’니 ‘정의’니 주워섬기고, 이런 가치에 대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태도를 낑낑대며 살피기도 하고, 국민의 대규모 저항에 반응이라도 했으니 말이다.
촛불정국 이후 다수 국민의 비판에 오히려 재갈을 물리고, 국제앰네스티 같은 국제단체의 인권침해 지적에는 아예 대거리로 나오고, 경제위기 속에서도 시장의 요구에 귀를 닫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부자들로 구성된 정부, 부자들만 위한 정책을 입이 아프게 비판해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급기야 소작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쌀직불금을 공무원들이 가로챈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이들에 대한 ‘네임 앤드 셰임’은 하세월이다. 하기야 이름을 밝힌들 무슨 소용일까. 한 나라의 차관이라는 사람이 그런 일에 연루돼 이름이 만천하에 공개됐는데도 ‘셰임’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사교육업자들의 돈으로 선거를 치른 교육감은 사교육 시장을 키워줄 국제중 설립을 국민의 반대 속에 안면몰수하고 밀어붙인다.
국제적으로든 국내적으로든 ‘네임 앤드 셰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그 나라 권력자들에게 올바른 가치기준이나 양심이 없고, 국민이나 국제사회를 존중하는 양식이 없다는 방증이다. 그건 다른 말로 독재국가라는 뜻이다. 이제 ‘네임 앤드 셰임’이 통하지 않는 나라의 명단에 이름 하나를 추가해야 하겠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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