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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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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불가능하다던 야구의 배신

사기극으로 변질된 플레이볼… 병역비리, 약물 복용 등 프로야구
대형 위기의 역사 되짚으며 승부조작 근절 대책을 고민하다
등록 2012-03-08 10:53 수정 2020-05-03 04:26

“야구는 승부조작이 매우 어려운 경기다.”
지난해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야구는 공 하나, 타석 하나가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경기다. 하나의 플레이나 한 명의 선수가 경기 흐름을 의도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따라서 많은 선수가 가담하지 않고서는 조작되기 어렵다는 게 야구계의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사실이 아닌 ‘신화’가 되고 있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방검찰청은 지난 2월28일 LG 투수 김성현을 넥센 시절인 2010년 초 불법 온라인 도박 운영자를 위해 돈을 받고 고의로 볼넷을 내줬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성현 외에 또 다른 LG 투수 박현준도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3월2일 대구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3조원 규모의 불법 도박이란 배후
볼넷 하나가 승부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인지 체육 관장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2월21일 발표한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대책’에서 ‘승부조작’보다는 ‘경기조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승부조작이든 경기조작이든, 결국 영어 ‘게임 픽싱’(Game Fixing)을 번역한 단어다. 그리고 최광식 문화부 장관은 이날 경기조작을 “국민 생활의 일부이자 활력소인 스포츠를 ‘공모에 의한 사기극’으로 변질시켜 국민으로부터 빼앗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규정하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처벌할 방침을 천명했다.

대구지검은 “구체적인 의혹에 대해서만 조사할 것”이라며 수사를 공격적으로 확대하지 않을 방침임을 내비쳤다. 3월2일까지는 LG 소속의 투수 2명이 수사 대상이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어떤 추가적인 진술이나 증거가 나올지는 모른다.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과거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다고 구단에 알린 넥센 투수 문성현이 2월29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스포츠과학부)는 “국내외 사례에서 승부조작 사건은 1명이 적발되면 연루자가 줄줄이 나오는 게 특징”이라고 우려한다.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이왕 수사가 시작됐으니 검찰에서 최대한 전모를 밝히는 게 낫다”는 견해를 밝혔다.

프로야구는 이번 승부조작 의혹 외에도 대형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2004년 현역 선수 51명이 연루된 병역비리 사건이 터졌다. 프로야구 존폐론까지 나온 대형 스캔들이었다. 전조는 있었다. 1992년 태평양 투수 정민태, 1998년 LG 1루수 서용빈이 병역비리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이들만이 병역비리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서용빈 사건이 일어나고 6년 뒤 병역비리는 프로야구에 만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승부조작은 병역비리보다 근절이 더 어려운 문제다. 병역비리는 ‘군대에 가지 않고 선수로 뛰며 돈을 벌고 싶다’는 선수 개인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선수가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마음을 접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문제다. 그러나 승부조작에는 선수 뒤에 ‘불법 도박’이라는 배후가 있다. 보수적인 추산으로도 불법 온라인 도박 시장의 규모는 3조원대다. 반면 지난해 프로야구 8개 구단과 KBO 마케팅회사 KBOP의 매출을 모두 더해도 3천억원이 되지 않는다. 3조원 대 3천억원. ‘건전한 프로야구’보다 불법 도박에서 나오는 이익이 더 크다. 유혹에 약한 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에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대만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진 때는 1995년이다. 당시 대만 야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그 뒤 승부조작 사건은 6차례나 더 발생했다. 불법 도박을 운영하는 폭력조직은 선수를 도박장으로 유인해 거액을 잃게 한 뒤 조작에 가담시키거나, 애인을 납치해 선수를 협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대만 야구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2008~2009년께부터 대만과 중국의 불법 도박 조직이 한국 시장에 진출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KBO 영구 제명 등 중징계 전망

병역비리 못지않게 프로야구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에 스테로이드·암페타민·성장호르몬 등 약물 복용이 만연했다고 의심한다. 진갑용·박명환 등이 국제대회의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현재 프로야구에서 약물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인다. KBO는 2007년부터 반도핑위원회를 구성해 매년 도핑테스트를 하고 있다. 이후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선수는 2009년 삼성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와 2010년 기아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지난해 두산 2군 선수 김재환 등 3명밖에 없다.
승부조작 가담 혐의가 밝혀진 선수들은 KBO로부터 영구 제명을 포함한 중징계를 받을 전망이다.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볼넷 하나를 내준 죄에 비해서는 지나치다고 볼 수도 있는 처벌이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는 그 자신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중징계는 불가피하다. 이는 체육계와 정부가 경기조작 근절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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