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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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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는 울지 않는다

등교 거부자, 은둔형 외톨이, 보육시설 아동 보듬는 일본 NPO

제도 ‘틈새’ 채우고 소외된 아이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등록 2017-06-21 16:44 수정 2020-05-03 04:28



청년이  바꾸는  교육의  미래


① 학교 안으로, 학교 밖으로
② 공교육을 깨우는 혁신
③ 소외계층 품는 교육
④ 서로를 키우는 연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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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비영리단체(NPO) 또는 소셜벤처를 운영하는 사회혁신가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야스다 유스케 ‘기주키교이쿠주쿠’ 대표, 모리야마 다카에 ‘3키스(3keys)’ 대표, 구도 게이 ‘소다테아게넷’ 대표, 하루키 아사타니 ‘LOUPE’ 대표.

일본에서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비영리단체(NPO) 또는 소셜벤처를 운영하는 사회혁신가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야스다 유스케 ‘기주키교이쿠주쿠’ 대표, 모리야마 다카에 ‘3키스(3keys)’ 대표, 구도 게이 ‘소다테아게넷’ 대표, 하루키 아사타니 ‘LOUPE’ 대표.

소년은 12살에 부모와 헤어졌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댁으로, 그 뒤 재혼한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가 또 이혼하자 다시 할머니 댁으로. 소년은 방황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적응하지 못해 2년 만에 자퇴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반짝거리는 귀걸이를 왼쪽 귀에 매단 채 거리를 헤맸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대학 입시 준비를 할 마음은 없었다. 혼자 모르는 한자를 찾아가며 신문의 국제뉴스를 읽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불량학생들은 어디로?

20살 청년이 된 소년은 뒤늦게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신문에서 중동 전쟁을 접하면서 “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야 하나” 분노했던 마음은 자연스레 국제관계학을 공부해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소명의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을 “불량하게” 보낸 학습 부진자를 도와줄 공교육 시스템은 없었다. 쉬운 방정식조차 못 푸는 청년에게 일반 사설학원 수업은 너무 어려웠다.

28살이 된 소년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학원을 차렸다. 등교를 거부하는 청소년이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돕는 비영리단체(NPO) ‘기주키교이쿠주쿠’는 그렇게 출발했다. ‘기주키교이쿠주쿠’(이하 기주키)는 ‘함께 길러 쌓아올리는 학원’이란 뜻이다. 소년은 기주키 대표를 맡고 있는 야스다 유스케(34)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야스다 대표는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데 20대 초반을 바쳤다.

그러다 2009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반년 만에 퇴사했다. 자유롭지 못한 회사생활 대신,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꿀 일을 하고 싶었다. 청년은 10대 때처럼 다시 방황했다. 방황 끝에 얻은 깨달음은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2011년 기주키를 설립했다. 하지만 설립 뒤 6개월간 찾아온 학생은 고작 2명이었다.

2015년 기준 일본에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는 18만 명, 고등학교 중퇴자는 6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문대나 대학을 자퇴하는 청년도 11만 명에 이른다.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도 70만 명, 취업·학업을 포기한 청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족’도 80만 명이나 된다.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다시 사회로 나오게 만들 것인지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야스다 대표는 기주키에 올 아이들이 집에 틀어박혀 주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학원이라는 믿음을 주는 검색어가 무엇일지 궁리했다. 현재 기주키에서 공부하는 청소년은 200명이 넘는다.

마음까지 보살피는 교육

지난 6월5일 찾은 기주키 사무실은 강사와 학생들이 일대일 수업하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과목별로 마음에 드는 강사에게 학습지도를 받을 수 있다. 수업시간은 한 과목당 하루 90분. 학생들에겐 주 1회 수업을 기준으로 월 2만4천엔(약 24만원)의 수업료를 받는다. 일본 일반 사설학원의 수업료(3만엔)보다 저렴하다. 한부모 가정이거나 가구 수입이 연간 300만엔(약 3천만원) 이하인 아이들은 장학금을 받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 장학금은 기주키를 후원하는 개인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야스다 대표가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등교 거부 아이들은 수업료 부담보다는 제대로 된 학습·심리 지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일반 학원과 달리, 학교를 거부한 아이들의 개별 수준에 맞춰 학습지도를 하고 그들의 약해진 마음까지 보살피는 데 집중한다.” 기주키에서 일하는 강사는 80명가량 되는데, 강사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느냐’다. 아이들 대부분이 결석이 잦고, 자살 시도를 하는 등 돌발 행동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기주키는 시부야 학습소 외에 8개 대학교에서도 일대일 학습 교실을 운영한다. 대학교 위탁을 받아 학습이 부진한 대학생들을 지도한다. 물리학과에 입학했는데 기본 수학 지식이 없는 학생들을 돕는 식이다.

7월께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빈곤 가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바우처 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야스다 대표의 또 다른 계획은 발달장애인의 학습을 돕는 비영리단체 설립이다. 그는 “나도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다. 눈으로 보면 이해가 쉬운데, 귀로 수업을 들을 때 집중력이 떨어진다. 발달장애의 종류마다 특화된 교육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녀는 단란한 일본 중산층 가정의 외동딸이었다. 부모님이 돈 벌러 나간 뒤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겨지면 쓸쓸했다. 중학교 ‘봉사’ 수업 시간에 고령자 시설에 첫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쓸쓸한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게이오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소녀는 자원봉사에 푹 빠져 지냈다. 학교 수업보다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활동이 더 즐거웠다.

보육시설 아이들 학습을 책임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여행상품을 개발해 관광가이드로 나선 후쿠시마의 학생들. 일본 혁신학교네트워크 제공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여행상품을 개발해 관광가이드로 나선 후쿠시마의 학생들. 일본 혁신학교네트워크 제공

이제 ‘대학생 언니’가 된 소녀가 보육시설에서 처음 만난 중학생 소녀는 퉁명스러웠다. 수학을 가르쳤는데, 학습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배워야 할 덧셈·뺄셈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대학생 언니’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보육시설에선 아이들의 생활만 돌볼 뿐, 학습지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탓이다. 언니는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학생자원봉사 동아리를 만들었다. 동아리 이름은 ‘3키스’(3keys)로 지었다. 기회, 깨달음, 희망 등 3가지 단어를 뜻하는 일본어가 모두 ‘키’(き)로 시작한다는 데 착안해, 영어의 ‘키’(key·열쇠)에 빗댄 이름이다.

보육시설 아이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동아리를 만들긴 했지만, 처음엔 모든 게 힘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의 교통비와 아이들을 가르칠 교재비를 마련하기에도 빠듯했다. 24살 ‘대학생 언니’는 2011년 동아리를 비영리단체(NPO)로 전환해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이제 30살이 된 그녀의 이름은 모리야마 다카에. 3키스의 대표다.

모리야마 대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는 사회를 꿈꾼다. 일본에선 4만5천여 명의 아이가 보육시설 600여 곳에 맡겨져 있다. 부모가 있더라도 가정 형편 때문에 방치됐거나, 아동학대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학교 진도에도 뒤처지기 일쑤다. 3키스 자원봉사자들은 보육시설에 가서 일대일 가정교사처럼 아이들의 부족한 학습을 지도해준다. 현재 연계된 보육시설은 20곳이다. 80명가량 되는 자원봉사자는 아이 1명을 맡아 1년간 학습지도를 책임진다. 이미 부모한테서 상처받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가 1년간 떠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원봉사자의 교통비·교재비 등 운영비는 기업이나 개인 후원금으로 마련한다.

최근 3키스의 도움을 받아 대학생이 된 학생이 연락을 해왔다. “내가 받은 만큼 아이들한테 돌려주고 싶다”며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모리야마 대표가 제공한 ‘기회’는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고, 또 다른 이에게 ‘희망’으로 전달되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모리야마 대표는 지난해 10대를 위한 종합상담 웹사이트 ‘Mex’(me-x.jp)를 열고, 연결고리를 온라인으로 확장했다. 익명으로 온라인 상담을 해주는 한편, 개인별 상황과 주변 환경 등에 맞춰 직접 상담하러 갈 수 있는 기관 60곳을 연결해주는 작업이다. “임신했는데 부모님께 알리고 싶지 않아서 집을 나왔어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힘들어요.” 홈페이지를 찾은 네티즌은 5만여 명, 이 가운데 청소년 1500여 명이 상담기관과 연결돼 전화 상담 또는 면담을 했다.

“안녕하세요!” 6월5일 아침 10시, 도쿄 다치카와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소다테아게넷’(Sodateage Net) 사무실.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청년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우렁차게 인사한다. 이곳에선 매일 아침 10시에 반복되는 풍경이다. 인사를 끝낸 뒤 누구는 정보기술(IT) 교육 교실로, 누구는 인턴 활동 하러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소다테아게넷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들을 지원하고 응원하기 위해 2004년 설립된 단체다. 도쿄, 오사카 등 9개 사업소에서 170여 명이 근무할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크다.

‘살아가는 힘’을 길러줘야
‘소다테아게넷’의 청년취업 지원활동 일환으로 농촌에서 파종, 수확 등 다양한 작업 중인 일본 청년들. 소다테아게넷 제공

‘소다테아게넷’의 청년취업 지원활동 일환으로 농촌에서 파종, 수확 등 다양한 작업 중인 일본 청년들. 소다테아게넷 제공

10년이 넘은 단체인 만큼 사업도 광범위하다. 처음에는 히키코모리, 니트족 등 청년 지원 사업에서 시작했지만 2006년부터는 고등학교에 강사를 파견하는 진로교육도 하고 있다. 현재 교육지원 사업을 벌이는 고등학교는 100여 곳에 이른다. 지역의 빈곤 가정 아동 120명에게 주 3회 학습지도를 하고 여름방학 캠프, 스포츠 관람 등 이벤트 참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기존에는 히키코모리 청년 등 눈에 보이는 곤란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지원했어요. 이제는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우리와의) 연결 가능성’을 넓히고 있죠.” 구도 게이(40) 소다테아게넷 대표의 설명이다. 진로교육을 통해 인연을 맺은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고등학교 졸업 뒤 소다테아게넷에 찾아와 취업기초훈련 프로그램을 수강한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청년은 400명가량 된다.

취업지원프로그램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공교육이 가르쳐주지 않은 부분을 채우는 교육이다.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려는 것이다. 오전 10시에 다 같이 모여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일종의 교육이다. “전철이 늦거나 무슨 일이 생겨 지각하는 이유를 미리 연락해줘야 하는데, 학교에선 이런 훈련을 전혀 받지 않는다. 지각한 게 잘못이 아니라, 미리 연락하지 않는 게 잘못임을 교육한다. 차근차근 사회생활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구도 게이 대표)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소외받고 좌절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일본에선 몇 년 전 ‘몬스터 페어런트’(괴물 학부모)라는 말이 생겨났다. 상식 밖의 일을 요구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가를 내는 일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소셜벤처 ‘LOUPE’의 하루키 아사타니(32) 대표는 교사들의 마음에 주목했다. 교사 1천여 명을 인터뷰한 하루키 대표는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교사들끼리 ‘연결’해주는 온라인 공간을 2012년 만들었다. ‘센세노트’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록한 교사 회원은 3만여 명에 이른다.

“이 과학실험이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교사가 질문을 올리면 “약품이 오래된 것 같은데 약품을 교체해보세요”라는 다른 교사의 답변이 이어진다. 교사들끼리 효율적 업무 처리 방법 등 실용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고민도 나누는 공간이다. 운영비는 교육 관련 기업들의 광고 등으로 마련한다. 하루키 대표는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는 제도 개선이나 학교 운영 방식의 변화 등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을 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제도란 ‘최대공약수’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은 뜻밖의 시공간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뒤, 일본 도호쿠 지역에선 교사와 학생들이 모여 원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머리를 맞댔다. 침체된 후쿠시마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관광객에게 지역을 설명하는 관광상품 개발 아이디어도 나왔다. 한 문부과학성 관료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일본 각 지역을 넘어 전세계를 잇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혁신학교네트워크’ 활동으로 이어졌다. 일본 히로시마와 미국 하와이는 ‘평화’를 주제로, 일본 후쿠시마와 독일은 ‘원전과 환경’을 주제로 지자체, 대학, 중·고등학교 등이 교류하는 방식이다.

고무라 슘페이(42) ‘일본 혁신학교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원자폭탄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히로시마 학생들이 진주만 공습 피해를 받은 하와이를 방문해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다른 시각을 갖는 등 국제 교류 교육을 통해 인식을 넓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제도나 시스템으로 돌보지 못한 은둔형 외톨이, 장애·빈곤 아동을 보듬는 일은 일본에선 비영리단체들의 몫이다. 구도 게이 소다테아게넷 대표와 모리야마 다카에 3키스 대표는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겼다. “우리 회사(단체)가 없어져도 괜찮다.” 전제가 있다. 학교가 모든 아이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해결하려던 사회문제를 국가가 맡아준다면 회사(단체)의 문을 닫아도 좋다는 뜻이다.

*취재에 도움 주신 분: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김보람 일본 메이지대학 겸임강사(교육학 전공) 도쿄(일본)=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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