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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차별은 없다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말레이시아의 ‘에타니아 학교’
등록 2017-06-15 13:23 수정 2020-05-03 04:28



청년이  바꾸는  교육의  미래


① 학교 안으로, 학교 밖으로
② 공교육을 깨우는 혁신
③ 소외계층 품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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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사바주 베아우포르트에 있는 마타카나 러닝센터에서는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무국적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바주 베아우포르트에 있는 마타카나 러닝센터에서는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무국적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5월29일 말레이시아 사바주 베아우포르트에 있는 마타카나 러닝센터. 이곳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다. 바깥 기온은 34℃.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더위인데도 3개의 교실에 각각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간다. 교실 온도는 40℃가 넘는 듯했다. 이날 학생들은 인도네시아어 시험을 보고 있었다. 이 시험은 중등부 졸업시험인 피엠아르(PMR). 나중에 인도네시아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 국가공인 시험이다. 학생들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문제라도 더 풀려 애쓴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17살 마리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쪽 끝에 있는 사바에는 불법 또는 합법적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이주노동자와 자녀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사바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불법체류 때문에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해 무국자로 사는 5만여 명의 아이들이 있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아이들로 살아가는 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다. 말레이시아는 중등과정까지 무상교육을 하는데 정식 노동허가증이 있는 자의 자녀만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무국적자이자 불법체류자 자녀인 이들을 받아줄 학교는 제도권 교육에선 없다.

마타카나 러닝센터는 사바에 있는 에타니아 학교 8곳 중 한 곳이다. 2009년 교육자 캐슬린 리바이가 설립한 에타니아 학교는 불법 또는 합법적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배움터다. 지역 시민단체와 기업,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에 자리한 마타카나 러닝센터엔 인도네시아 아이들 100여 명이 다니고 있다. 이곳에선 인도네시아 교과서를 중심으로 영어·인도네시아어 등 언어 교육과 수리 교육, 취업에 필요한 봉제기술 등을 가르친다. 시티 파리다 선생님은 “교실이 비좁아 학생이 다 들어갈 수 없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학생 105명 정도가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 중이다.

누나와 형들이 시험 치르는 모습을 복도에서 지켜보는 토마스(10)는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좋아요.” 뒤이어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선수가 꿈이다”라며 미소지었다.

제일 먼저 시험을 치른 마리아(17). 13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왔다. 5년째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의 마타카나 러닝센터에 다니고 있다. 그는 “이 학교에 안 왔으면 못 배워서 두려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다른 나라에 왔지만 배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역사 과목을 좋아해요.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쪽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돌아갈 곳도 인도네시아니까요.” 마리아에게는 간절한 꿈이 있다. “어른이 되면 의사가 되고 싶어요.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꿈에 대해 말하는 마리아를 옆에서 바라보는 시티 파리다 선생님의 눈빛은 애잔하다. 그는 “글자를 모르던 아이들이 배움에 눈뜨는 모습을 보는 게 큰 기쁨”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항상 무겁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걱정이 별로 없지만, 어른인 저희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돼요. 아이들이 대학도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언제나 불안합니다. 언제 경찰이 단속할지 모르고, 아이들이 추방당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아이들
마타카나 러닝센터 학생들과 함께한 에타니아 학교 설립자 캐슬린 리바이(가운데).

마타카나 러닝센터 학생들과 함께한 에타니아 학교 설립자 캐슬린 리바이(가운데).

인도네시아의 교육 분야 사회적기업 ‘프로비시 에듀케이션’(Provisi Education)에서 일한 캐슬린 리바이는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바 지역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문제를 알고 에타니아 학교를 세웠다. 현재 사바 지역에 학교 8곳이 있고 50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사바에서 태어난 이 아이들은 실제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고 아무도 그들을 원하지 않아요. 출생증명서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아동의 권리인 교육권도 누리지 못하고, 심지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요.”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에타니아 학교의 책, 의자 등은 지역 시민단체, 기업 등에서 보내온 것이다. 뉴질랜드, 일본,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정규 기부자들도 학교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준다.

시티 파리다 선생님이 말했다. “학교 칠판, 의자 등은 여러 단체나 지역주민이 기부한 물건이에요. 자신이 쓰던 학용품을 보내는 학생도 있고요. 그분들의 기부가 큰 도움이 돼요. 매달 공책 등 학용품이 필요하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점점 늘어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허름하고 좁은 학교를 신축하는 게 큰 과제다. 노숙인과 사회취약 계층의 주거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빌리언브릭스(billionBricks)의 도움으로 베아우포르트 지역에 새로운 학교를 짓고 있다. 선적 컨테이너 위에 나무로 교실을 짓고 주변 나무에 ‘트리 하우스’도 만들 예정이다. 건물의 개방성과 현장과의 통합이 새 학교 건물의 콘셉트다.

캐슬린이 새 학교에 대해 설명했다. “베아우포르트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6월 말쯤 새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요. 새 학교 앞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주변 땅에는 채소를 심어 학교 운영비에 쓸 계획입니다. 자급자족할 수 있을 거예요.”

비좁은 공간 외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다. 에타니아 학교에는 통학버스가 없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25∼30km를 걸어오거나 한 달에 100링깃(약 2만6천원) 정도 내고 함께 차를 타고 오기도 한다. 물론 돈이 없거나 거리가 너무 멀어 올 수 없는 아이들도 있다.

에타니아 학교에선 배움의 필요성을 부모들에게 이야기하는 시간도 갖는다. 캐슬린이 한 사례를 말했다. “학부모 한 분이 5살 아이가 에이(A), 비(B), 시(C)까지 알았으니 그만하면 충분히 똑똑해졌다고 아이를 학교에 더 이상 보내지 않겠다는 거예요. 알파벳 몇 글자 안다는 게 학교 교육의 전부가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학부모에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해줬어요. 설득을 하니 학부모도 교육의 필요성을 이해하시더라고요.”

필리핀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파파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또 한 곳의 에타니아 학교가 있다. 벨시 선생님이 칠판에 시계를 그리고 “이게 몇 시죠?” 물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머리를 긁적인다. 8살 이카가 앞으로 나가 질문의 답을 또박또박 적는다.

이곳저곳 나무 틈이 벌어진 낡은 2층 가정집이 아이들의 학교다. 학교 문을 연 지 두 달 됐는데, 필리핀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벨시 선생님이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12살 된 한 학생은 이 학교에 오기 전에 한 번도 연필을 잡아본 적이 없어요. 처음에 연필 잡는 법을 몰라 움켜잡았지요.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것도 처음이고요.” 학교에 처음 온 아이들에겐 기본적인 학습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새로운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은 언제나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한다.

캐슬린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집에 책 한 권 없고, 부모는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이들에게 미래가 없어요. 학교에 나와 배우다보면 언젠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겁니다.”

학교 건물 주인인 에이스는 학교 관리 봉사도 도맡아 해주고 있다. “에타니아 학교 건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건너 들었어요. 나도 아이 2명을 키웠고, 이곳에 학교가 없어 고생하던 기억이 나서 안 쓰는 집을 학교로 쓰도록 했어요.”

통역을 해준 박옥남씨는 말레이시아 눔막마을에서 필리핀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후원을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단속으로 부모가 갑자기 추방당해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 연락이 끊겨요. 후원자는 자신이 후원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쭉 보고 싶어 하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어요.”

“언젠가 돌아가 인도네시아를 일으킬 것이다”

“나는 인도네시아 어린이다. 지금은 인도네시아를 떠나 있지만 언젠가 돌아가 인도네시아를 일으킬 것이다.”(Anak Indonesia. Sekarang saya akan meninggalkan Indonesia, tapi satu hari kembali untuk memimpin Indonesia.)

취재를 끝내고 돌아가려는 취재진을 위해 베아우포르트의 마타카나 러닝센터 학생 30여 명이 (Anak Indonesia)라는 창작곡을 불렀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 정성 들여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뭉클함을 느꼈다. 타향에서 부르는 간절한 염원, 그리고 다짐의 노래.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가 노래에 담겼다. 그 미래로 가는 길에 에타니아 학교가 따뜻하고 너른 울타리가 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아시아태평양  디렉터  안젤린  친  인터뷰


새로운  협력  ‘컬렉티브  임팩트’


질 낮은 교육서비스, 높은 중·고등학교 중퇴율…. 말레이시아의 공교육 문제는 지난 20여 년간 큰 사회적 이슈였다. 말레이시아 공공기관, 시민단체, 기업들은 고질적인 공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컬렉티브임팩트’(Collective Impact) 사업을 진행한다. 컬렉티브임팩트는 다양한 조직들이 유기적 파트너십을 형성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뜻한다. 이 사업을 진행하는 크레디트스위스 아시아태평양 디렉터 안젤린 친에게 교육 변화를 유도하는 ‘새로운 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컬렉티브임팩트 사업을 진행한 계기는.
2014년 10월 여러 기업의 재단이 말레이시아에 모여 각 회사의 교육 분야 지원 내용을 논의했다. 각 재단이 개별적으로 좋은 교육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동안 협업이 이뤄지지 않고, 기업 간 조정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전통적 접근법으로는 교육 같은 체계적 과제를 해결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여러 기관의 파트너십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교육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바로 ‘컬렉티브임팩트’ 방식이다.
어떻게 운영되나.
크레디트스위스 등 12개사의 기금 25만달러(약 2억8천만원)를 토대로 운영된다. 컬렉티브임팩트의 5가지 요소는 공동 의제, 공유된 평가 기준, 통합 활동, 열린 의사소통, 중추기관 마련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더 나은 교육을 요람에서 직장까지 제공한다’는 의제를 중심으로 공공기관, 기업, 시민단체의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협력관계의 중심에 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중추기관이 있다. 그곳에서 섹터별 협력기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각 조직의 역량이 교육 문제(중고교 중퇴율, 청년 실업률 감소) 해결 방향으로 집중되도록 이끈다.
구체적인 사례는.
활동 목표는 문맹률을 낮추고 취업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독서 지원 프로그램, 10대 문맹 퇴치 프로그램, 독서 공간 개발, 진로 상담과 방문, 교사 정보기술(IT) 연수, 직업 교육과 후원,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위한 영어 학습 등이다.
대상 학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지역 학교 14곳이다. 갱스터가 많고 중퇴율이 높은 곳이다.
교육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뭔가.
교육은 장기적 이슈이고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좋은 교육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준다.
새로운 협력 모델로 보이는데.
아시아에서 처음 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데 컬렉티브임팩트 관련 활동 단체가 300여 개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1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연방정부 질병통제예방국, 로버트존슨재단, 교육자 등이 협력해 초등학생 비만율을 낮추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컬렉티브임팩트 방식이 도입됐나.
홍콩에서 저소득 아동과 비영어권 소수민족을 위한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성과는.
좋은 자선 단체가 없으면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다. 자선단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IT 교육 등 기술 지원을 한다. 협력 관계 안에서 교육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시민단체, 공공기관과 함께 일하는 게 좋았다


파파르·베아우포르트(말레이시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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