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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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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마음 움직이는 ‘환경교육’

노랑어리꽃 옮겨 심어 호수 수질 개선하는 운동에서 시작해

학교와 마을 잇는 지역재생 프로젝트 펼치는 ‘아사자기금’
등록 2017-06-21 16:56 수정 2020-05-03 04:28
이이지마 히로시 ‘아사자기금’ 대표(맨 오른쪽)가 지난 6월8일 오카다시립초등학교 4학년 환경수업을 하는 중에 아이들에게 잠자리 유충을 건네주고 있다. 아사자기금은 환경교육 등을 통해 지역재생을 도모하는 일본 비영리단체(NPO)이다.

이이지마 히로시 ‘아사자기금’ 대표(맨 오른쪽)가 지난 6월8일 오카다시립초등학교 4학년 환경수업을 하는 중에 아이들에게 잠자리 유충을 건네주고 있다. 아사자기금은 환경교육 등을 통해 지역재생을 도모하는 일본 비영리단체(NPO)이다.

“꺄악~ 징그러워.” “두 마리 잡았다! 우와, 엄청 크다.”

지난 6월8일 아침, 일본 도쿄에서 열차로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이바라키현 우시쿠시에 위치한 오카다시립초등학교. 운동장 뒤편 야외수영장에 초등학교 4학년 학생 50여 명이 모여 와글와글 웅성댔다.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열중한 일은 수영이 아닌 벌레잡기. 낡은 수영장에 가득 찬 물 색깔은 주변에 우거진 잡초와 비슷한 풀빛을 띠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소금쟁이가 동심원을 그리며 뛰어놀고 있다. 4명씩 짝지은 아이들은 뜰채를 들고 연신 수영장 안에 쌓인 물과 흙을 퍼내어 그 안에 숨은 벌레를 볍씨 고르듯이 꺼냈다.

소중한 자연을 선물해볼래?

아이들이 잡은 벌레는 잠자리 유충이다. 벌레잡기는 그냥 놀이가 아니라 정규수업이다. “잠자리가 물가의 이파리에 알을 낳고, 알이 물속에 떨어져 부화하고 유충은 탈피를 통해 점점 성장합니다. 잠자리에게 살기 좋은 곳은 사람에게도 살기 좋은 곳입니다. 사람이든 생물이든, 모두 지역과 국경을 넘어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환경을 소중히 가꾸면, 저 멀리 도쿄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소중한 자연을 선물하는 거예요.”

이날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한 이이지마 히로시(61)의 직업은 교사가 아닌 비영리단체(NPO) ‘아사자기금’의 대표다. 하지만 1년에 10여 차례 진행되는 환경수업에서만큼은 선생님이 된다. 시 교육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이 학교 4학년 환경수업을 전담하고 있다.

장화를 신고 수영장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유충 잡는 것을 도와주는 젊은이의 이름은 하타케야마 신고(23)다. 그도 10여 년 전 초등학교 때 아이들과 비슷한 환경수업을 들었다. 그는 일본 혼슈 북쪽 아키타현 출신이다. 초등학생 때 이이지마 대표의 수업을 듣고 감명받아 대학을 휴학하고 아사자기금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가 이이지마 대표처럼 환경교육과 지역재생 활동을 펼치는 게 꿈이다.

1시간 동안 신나게 벌레를 잡은 아이들이 줄지어 교실로 되돌아갔다. 4학년 2반 야마토 다구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너무 재밌다”며 새끼손가락만 한 잠자리 유충을 높이 들어 보였다.

교실로 돌아온 하타케야마는 과학실험용 투명 접시에 잠자리 유충을 크기별로 분류해 담았다. 조별로 접시에 담긴 유충을 받아간 아이들은 돋보기로 관찰을 시작했다. 다리가 몇 개인지, 눈은 어디에 달렸는지 등을 살핀 뒤 제법 그럴싸한 솜씨로 하얀 종이에 유충 그림을 그렸다.

직접 잡은 잠자리 유충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오카다시립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직접 잡은 잠자리 유충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오카다시립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센세(선생님), 센세~.”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이이지마 대표와 하타케야마를 찾았다. 잠자리 유충이 먹이를 잡아먹을 때는 반으로 접혀 있던 주둥이를 길게 편다는 좀 전의 설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화가 뺨치는 실력으로 칠판에 잠자리 유충을 그린 이이지마 대표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렇게 생긴 요 녀석은 자라서 연두색 잠자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빨간 고추잠자리가 되고.” 이이지마 대표의 설명에 따라 ‘보조 선생님’인 하타케야마가 코팅된 잠자리 그림과 사진을 꺼내 보였다. 이이지마 대표의 가방 안에는 잠자리뿐만 아니라 물고기, 새 등 환경교육에 필요한 온갖 그림과 사진이 가득 들어 있다. 그림은 모두 이이지마 대표가 직접 그린 세밀화다.

이나노베 요시히로 오카다시립초등학교 교장은 “교사들도 풀과 생물의 이름, 그것의 세세한 특징까지 알 수 없다. 환경수업 덕분에 교사들도 배우는 게 많고 아이들도 활기차 보여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이지마 대표는 환경수업을 우시쿠시에 위치한 8개 초등학교와 5개 중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다. 우시쿠시뿐만 아니라 전국 340여 학교에서 그를 환경교사로 초청한다.

30년 넘게 이어지는 환경수업

이이지마 대표가 ‘선생님’이 된 출발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시쿠시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가스미가우라 호수 서쪽에 있다. 이 호수의 크기는 220km²로 세종특별자치시 면적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넓다. 호수 주변에는 100만 명 넘는 인구가 밀집해 있다.

1970년대 시작된 대규모 수자원 개발 사업으로 호수에서 바다로 흐르는 물길이 막혀 수질이 나빠지면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지역주민들의 삶도 파괴됐다. 호수는 머잖아 ‘죽음의 호수’로 불리게 된다. 우시쿠시의 한 농업환경연구소에서 일하던 이이지마 대표는 1981년 ‘우시쿠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 주말마다 아이들, 학부모들과 함께 호수 주변의 생태환경 관찰, 수질 조사에 나섰다.

그 뒤 30년 넘게 이이지마 대표의 곁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호수에 노랑어리꽃(아사자)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수가 콘크리트 안에 갇힌 뒤 사라졌던 노랑어리꽃이 핀 것도 신기했지만, 콘크리트 제방에 부딪혀 일어나던 호수 물결의 흰 거품이 아사자 군락 근처에선 관찰되지 않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이후 그는 1995년 ‘아사자기금’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호수에 노랑어리꽃을 옮겨 심는 대대적인 지역운동에 나섰다.

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 인근 학교에 ‘비오토프’(인공 생물서식 공간)를 만들어 학생들이 노랑어리꽃을 키운 뒤 호수로 옮겨 심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초·중등학교 200여 곳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지금도 매년 7월이면 노랑어리꽃을 호수에 옮겨 심는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아사자기금은 주변 간벌재(벤 나무)를 이용해 호수에 말뚝을 박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황폐해진 산림 자원을 활용하는 동시에, 물고기 등 어업 자원을 보호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는 100년 뒤에는 따오기가 날아올 만큼 호수 주변 환경이 되살아나기를 꿈꾼다.

물론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큰 성과가 있는 건 아니다. “아마 국가가 1조엔을 퍼붓더라도 당장 호수 수질이 좋아지진 않을 겁니다. 근본적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호수가 바뀝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지요.” 이이지마 대표가 환경교육에 평생을 바치며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매년 7월 호수에 옮겨 심은 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수 너울에 휩쓸려 사라진다. 그래도 시민들은 꽃을 심고 또 심는다. 언젠가 호수가 맑아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이들의 생각은 아이들이 바뀌면 언젠가 사회도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30년 넘게 환경교육을 이어온 이이지마 대표의 마음과 닮았다.

농사짓고, 빈집 활용하고

일본 우시쿠 지역의 버려진 땅을 논으로 탈바꿈한 뒤 여기서 기른 쌀로 술, 전병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도 아이들을 위한 환경교육의 일환이다.

일본 우시쿠 지역의 버려진 땅을 논으로 탈바꿈한 뒤 여기서 기른 쌀로 술, 전병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도 아이들을 위한 환경교육의 일환이다.

아사자기금의 활동은 호수를 넘어 지역사회 곳곳에 뻗어 있다. 숲과 호수, 논과 가게, 어민과 농민을 잇는 방식이다. 가스미가우라 호수에는 외래종 물고기가 늘어나 큰 사회문제가 됐다. 아사자기금은 외래종 물고기를 잡아 환경보존 비료로 만든 뒤 유기농업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외래종 물고기가 없어지니 호수는 깨끗해지고, 좋은 비료로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렇게 재배된 유기농 채소는 지역 특산품으로 브랜드화를 추진했다.

호수를 깨끗하게 만들려면 수원지인 산림과 농지가 깨끗해야 한다. 고령화사회인 일본 농촌 지역에는 버려진 땅이나 빈집이 많다. 아사자기금은 NEC, 미쓰이물산 등 대기업들과 손잡고 버려진 땅을 되살리는 작업을 했다. 잡초가 무성한 땅을 개간해 논으로 만들고, 대기업 직원들과 주변 학교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 지금까지 연인원 2만 명 이상이 이렇게 농사에 손을 보탰다. 여기서 재배한 쌀로 일본 전통주나 전병을 만들어 판매한다. 전병에는 지역에서 잡힌 생선이나 새우를 넣어 어업과도 ‘연결’을 꾀한다. 우시쿠시를 돌아다니다보면 고소한 팝콘 냄새가 나는 버스나 자동차를 간혹 만나는데, 이 역시 꽃씨로 식용유를 만든 뒤 다시 폐식용유를 활용해 바이오연료(BDF)를 만드는 아사자기금의 ‘순환형 지역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이지마 대표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환경교육도 “지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저 “쓰레기를 줍자” “물을 아껴쓰자”는 주입식 교육으로 끝나지 않는다.

6월8일 오후 2시, 이이지마 대표는 취재진과 함께 시모네중학교 1학년 7반 교실을 찾았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함께 생각해보자.”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은 조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토론한 뒤 해결책을 종이에 적었다.

“일본에는 고령자가 많으니까, 고령자가 있는 시설에 보육시설 대기 아동을 보내면 아이도 좋고 고령자들도 즐거워할 것 같아요.”

“지자체별로 예산 격차가 심각한데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어떻게 보육시설 수를 늘릴까만 생각하는 건 행정의 발상입니다. 고령자와 보육시설 대기자를 연결해 해결책을 찾는 게 바로 소셜이노베이션(사회혁신)입니다.”

아이들의 잇따른 발언에 이이지마 대표의 조언이 이어진다. “모든 분야에서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죠. ‘발견’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cover’란 선입견이나 편견이란 뚜껑(cover)을 제거(dis)한다는 뜻입니다.”

발표를 통해 모아진 아이디어는 실제 수업이 마무리되는 학기 말에 ‘프로젝트’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2011년 이이지마 대표와 함께 환경수업을 진행한 한 학교의 학생들은 우시쿠시에 버려진 땅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 지역 순환형 경작지로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시장에게 직접 제안했다. 요즘 이이지마 대표는 한 대안학교의 학생, 학부모들과 함께 ‘빈집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20년 전 집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 비어 있는 이층집을 빌려서 카페를 만들고 펜션을 운영하기로 했다. 카페에선 무농약 채소 등 다양한 지역 특산품도 판매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이이지마 대표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열린 자세와 열린 지성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길러야 합니다. 최대한 어릴 때부터 그런 감성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어른들이 지식을 주입해서 이게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결국 아이들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우시쿠(일본)=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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