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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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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팎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다

청소년들이 문제해결능력·도전정신 키우도록, 교육 기회 박탈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배움의 주인공’ 되도록 돕는 사회혁신가들
등록 2017-05-30 19:06 수정 2020-05-03 04:28



청년이  바꾸는  교육의  미래


① 학교 안으로, 학교 밖으로


꿈을 키우기보다 성적으로 줄서기를 강요받는 아이들, 살인적인 경쟁 시스템 속에 붕괴된 교실, 거대한 사교육 시장, 그래서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재생산하는 주요 통로가 되어버린 교육.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뿌리 깊은 적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육 문제다. 교육은 한 사회의 바로미터이자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 올해 주목한 사회혁신의 주제는 ‘교육’이다.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타이·대만·말레이시아·일본 등을 직접 찾아가 교육에서 소외된 아동·청소년을 위한 혁신 활동을 벌이거나 ‘배움’의 문법을 뒤바꾸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청년·교사·학생을 만난다. 이들이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교육이 미래 사회를 달라지게 할 희망의 씨앗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 아이들을 사회혁신가로 키우는 교육은 가능할까?
앞으로 4회에 걸쳐 교육혁신 활동에 상상의 나래를 더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기사에서 만난 이들은 7월5일 서울에서 열리는 ‘2017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한겨레신문사 주최·서울시 후원)에 참석해 각국의 교육혁신,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 사례를 공유할 예정이다. _편집자
두려움을 나타내는 단어는 왼쪽, 극복 방안을 설명하는 단어는 오른쪽에 붙인 ‘두려움 갤러리’. 학생들 스스로 가능성을 발견하고 문제 해결에 도전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소셜벤처 ‘어썸스쿨’은 ‘학교 안의 또 다른 학교’를 꿈꾼다. 박승화 기자

두려움을 나타내는 단어는 왼쪽, 극복 방안을 설명하는 단어는 오른쪽에 붙인 ‘두려움 갤러리’. 학생들 스스로 가능성을 발견하고 문제 해결에 도전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소셜벤처 ‘어썸스쿨’은 ‘학교 안의 또 다른 학교’를 꿈꾼다. 박승화 기자

“이제부터 ‘두려움 나무 그리기’를 할 거예요. 제 두려움부터 얘기해볼게요. 학교 다닐 때는 ‘귀신’, 최근에는 ‘나를 힘들게 했던 친구’가 생각나요.”

학생들이 ‘조이(JOY)쌤’이라고 부르는 청년강사 최유정(23)씨가 자신의 ‘두려움 나무’를 그려 보여줬다. 둥치에 ‘나를 힘들게 했던 친구’라고 적은 그림 속 나무 뿌리에는 ‘두려움의 시작은 언제?’ ‘연관검색어?’ ‘두려움을 느낄 때 나의 감정은?’이라는 질문들이 적혀 있다. 풍성한 나뭇잎에는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채워야 하는데 ‘조이쌤’은 ‘미드(미국 드라마) 보기’ ‘A양과 친하게 지내기’ 등을 적었다.

학교 안의 또 다른 학교
지난 5월2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고등학교에서 소셜벤처 ‘어썸스쿨’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려움과 직면하기’라는 주제로 방과후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표현한 ‘두려움 나무’를 그리는 중이다. 박승화 기자

지난 5월2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고등학교에서 소셜벤처 ‘어썸스쿨’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려움과 직면하기’라는 주제로 방과후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표현한 ‘두려움 나무’를 그리는 중이다. 박승화 기자

지난 5월2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고등학교 1층 진로활동실. 소셜벤처 ‘어썸스쿨’(Awesome-school)이 진행하는 방과후수업 ‘히어로스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1~2학년 학생 20여 명이 모였다. 청소년들이 세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스스로 해결해 가는 경험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성장시키는 ‘영웅’(히어로)이 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 ‘히어로스쿨’의 이날 수업 주제는 ‘두려움과 직면하기’였다. 귀를 쫑긋거리며 ‘조이쌤’의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교실과 복도 바닥에 앉아 ‘두려움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영어시험, 중간고사, 벌레, 아버지, 언니(싸움), 미래 등의 단어로 나무둥치를 하나둘 채워갔다.

30여 분간 열심히 나무를 그린 학생들은 교실 앞 칠판에 ‘두려움 갤러리’를 만들었다. 칠판 왼쪽에는 ‘두려움’의 단어, 오른쪽에는 ‘극복’의 단어를 빨강, 초록 종이에 적어 붙였다. 그 뒤 학생들은 둘씩 짝지어 서로의 두려움을 이야기한 뒤 상대방에게 ‘두려움 해소 처방전’을 써주는 활동을 이어갔다.

총 20회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1학기에는 나의 관심사와 욕망을 찾고, 2학기에는 팀별로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발견해 직접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배움의 주체는 교사나 청년강사가 아니라 학생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성찰해 문제를 발견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 해결을 이뤄나가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동범죄 예방’이라는 사회문제에 주목한 서울시 중랑구 원목중학교 학생들은 직접 인형극을 만들어 주변 유치원에서 공연했고, ‘곶자왈(생태숲)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싶었던 제주 신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캔들을 제작·판매해 곶자왈 에코증권을 매입했다.

대학교에서 청소년학을 전공하는 ‘조이쌤’은 2년째 청년강사로 어썸스쿨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어썸스쿨에는 현재 이런 청년강사가 50여 명 있다. 2013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으로 선발된 이후 어썸스쿨을 거쳐간 청년강사는 120명이 넘는다. 청년강사는 20대가 가장 많지만 아이 둘을 키우는 40대 아빠, 직장인 등 ‘늦깎이’도 많다.

5월22일 분당고 다른 교실에서 ‘히어로스쿨’ 수업을 진행한 김영광씨도 그렇다. 어썸스쿨에서 ‘삼촌’으로 불리며 대외협력 업무를 맡은 그는 LG전자를 다니다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인생의 경로를 바꿨다.

“교육 콘텐츠나 프로그램은 대체될 수 있지만 사람은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청년강사를 선발할 때 스펙보다 ‘자기 존재 자체로 떨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우선시하는 이유죠. 사회에는 다양한 경험, 다양한 방향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좋은 청년강사예요.” 어썸스쿨 이지섭(29) 대표의 소신이다. 공대 출신인 이 대표는 반려동물 돌보기를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정보기술(IT)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운영하다가 2013년 어썸스쿨에 합류했다.

그가 새로운 길에 뛰어들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학교 안의 또 다른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비평준화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이라는 길 말고는 모든 가능성이 차단됐어요. 그 안에서 너무 힘든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교육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떤 가치를 만들면 경제적으로 보상받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학교에서 내 삶과 관련 없는 단순 암기만 시키는 게 가장 큰 불만이었어요.”

이지섭 대표의 모교인 경기도 안산시 경안고등학교에서 2012년 황필권 전 어썸스쿨 대표가 첫 교육 실험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대표는 지금도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직접 ‘히어로스쿨’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청소년들이 “답을 찾기보다 의문을 갖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고 “내가 행동하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가능성을 깨닫기 바란다.

교육혁신에 부는 새로운 바람

굳게 닫혀 있던 제도권 교육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교육, 누구나 희망을 품게 하는 교육에 대한 학교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진 덕분이다. 특히 김범수·이해진·이재웅 등 성공한 벤처 1세대가 기부해 만든 자선회사인 ‘C-프로그램’과 사회적기업가에 투자하는 비영리재단 ‘아쇼카한국’ 등이 2016년 교육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활동에 적극 투자하면서 변화를 주도하는 ‘태풍의 눈’이 형성됐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험 부담 없이 학생의 적성에 맞는 진로 체험을 하도록 돕는 ‘자유학기제’가 전국 중학교에 도입되면서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상상력들이 더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나 각 지자체들도 사회적경제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마을·지역과 결합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다. ‘학교 밖’에서 대안교육을 오랫동안 고민하며 청소년 진로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온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같은 기존 기관뿐만 아니라, 어썸스쿨처럼 방과후수업·토요교실(토요일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도 늘어났다.

자유학기제 도입으로 폭풍성장한 기업 중 하나가 ‘한국갭이어’다. 이 회사는 ‘캄보디아에서 영어 교사 되기’ ‘타이 치앙라이에서 뚝딱뚝딱 마을 만들기’ 등 봉사·인턴 활동을 주최하는 기업과 참가를 원하는 학생들 사이에 프로젝트를 연결해주는 사회적기업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딸, 영국 해리 왕자 등이 선택해서 유명해진 ‘갭이어’(gap year)는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보내는 시간을 뜻한다.

청소년 교육 분야의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등 15곳이 뭉쳐서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대규모 학원형 영리업체들이 장악한 방과후수업, 진로교육 프로그램 등에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더 쉽게 열 수 있도록 힘을 모은 셈이다. 2015년 창립한 ‘씨드콥’(SEED CO-OP)에는 어썸스쿨을 포함해 고등학생들에게 공부 습관을 안내해주는 ‘공신’, 연극을 통해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극단 더더더’, 코딩을 가르쳐주는 ‘코딩클럽’ 등이 속해 있다. 씨드콥은 조합원인 청년교육기업들의 활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주는 한편,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학교로 찾아가 진로·직업 이야기를 들려주는 ‘진로 체험버스’도 운영 중이다.

이승환 씨드콥 대표는 “자유학기제 도입을 계기로 미래 역량을 키우는 교육 콘텐츠 수요가 크게 늘었다. 씨드콥을 만들면서 개별 기업으로 있을 때는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우고, 협동조합 형태로 힘을 모아 학교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가 ‘학교 안’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갖고 들어가는 실험도 중요하지만, 결국 교사가 바뀌어야 학교가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밖 ‘거꾸로캠퍼스’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기업 ‘점프’에서 ‘장학샘’으로 활동했던 임현지, 김재원, 황다은, 유유리(왼쪽부터 시계방향)씨. 정용일 기자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기업 ‘점프’에서 ‘장학샘’으로 활동했던 임현지, 김재원, 황다은, 유유리(왼쪽부터 시계방향)씨. 정용일 기자

교사를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나아가 학교 안과 밖을 연결하는 교육혁신 모델로 주목받는 곳은 ‘거꾸로캠퍼스’다. 지난 3월 경기도 양평 경기영어마을에는 교사 6명과 학생 12명으로 구성된 단출한 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교사와 학생의 구분이 따로 없다. 학생은 공부할 내용을 동영상 등으로 미리 학습하고, 수업 시간에는 교사와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 교사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존재일 뿐이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관계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가르치지만 학년이나 교재의 제한이 없다. 4년제 대학에 합격한 한 학생은 4년 장학금까지 포기하면서 ‘거꾸로캠퍼스’ 입학을 선택했다. 교사 6명 가운데 3명은 학교에 사표를 내고 이 프로젝트에 인생을 걸었다. 학생들은 수업료 없이 기숙생활비만 내고 교사들의 월급은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거꾸로캠퍼스의 모델은 2006년 미국의 한 시골학교에서 교사들이 시작한 ‘거꾸로교실’이다. 2014년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정찬필 KBS PD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거꾸로교실’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민간 교육혁신 네트워크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미래교실네트워크를 통해 지금까지 1만 명 넘는 교사들이 ‘거꾸로교실’을 경험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거꾸로수업’을 진행 중이다.

‘거꾸로캠퍼스’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에 각각 3시간30분씩 진행된다. 문학을 가르치는 이성원 교사의 설명이다. “백석의 시 4편, 황순원의 단편소설 ‘별’을 읽고 학생들이 스스로 키워드를 찾도록 해요. 만약 모더니즘을 발견하면 전세계에 모더니즘이 어떻게 퍼져 있는지, 모더니즘과 건축의 관계는 어떤지 교과서 밖으로 지식을 확장해서 공부한 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거죠. 교사들은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길 안내를 돕는 ‘퍼실레이터’(촉진자)예요.”

5월 말부터 학생들이 진짜 세상의 문제 해결에 나서는 ‘사최수프’(사상 최대 수업 프로젝트)도 시작할 예정이다.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찾고, 현장으로 나가 부딪혀보고, 전문가들을 만나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해 학생들끼리 협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즐거운 수업을 하는 것도 좋은데, 거꾸로교실 수업을 진행할수록 스스로 묻게 돼요. ‘교육이 살아 있는 지식이 될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미래형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핵심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은 불가능할까?’” 이성원 교사는 자꾸만 학교 밖, 교실 너머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뒤바뀌는 ‘마법’을 스스로 경험하는 셈이다.

교육을 통한 ‘마법’ 같은 경험과 나눔
한 교육박람회에서 ‘점프’ 관계자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활동을 설명하는 모습. 점프 제공

한 교육박람회에서 ‘점프’ 관계자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활동을 설명하는 모습. 점프 제공

모두가 공평한 교육 기회를 나눠 갖는 사회를 꿈꾸며 설립된 비영리단체 ‘점프’(JUMP)도 참가자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점프는 청소년·대학생·사회인 등 세 주체가 함께 성장하는 ‘나눔의 선순환’ 교육 모델에 기반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저소득층이나 이주민 가정의 아동·청소년들에게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에서 대학생 언니·오빠가 공부를 가르쳐주는 기회가 제공된다. 대학생들에겐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멘토와 만나 진로를 상담하는 기회, 사회인들에게는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다음 세대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기업·지자체·대학 등과 협업해 교육 봉사 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국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던 이의헌 이사장은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교육 격차 해소라고 생각해 사회적기업 점프를 설립했다.

점프 ‘장학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청년 4명을 지난 5월2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났다. 점프로 인연을 맺은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책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 대학교 4학년 유유리(23)씨는 어릴 때 경험을 다시 나눈다는 생각으로 점프 활동에 참여했다.

“초등학교 때 방과후학교에서 교육 봉사를 하는 대학생 언니·오빠한테 공부를 배웠거든요. 학원은 거의 안 다니고 그때 배운 걸로 대학에 갔어요.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대부분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 가정 아이들이에요. 봉사 활동 오는 선생님이 자주 바뀌니까 아이들이 빨리 마음을 안 열고, 막 대하기도 하죠. 저는 어릴 때 경험이 있어서 여유 있게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기다려줄 수 있었어요.”

영어 알파벳도 몰랐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유리씨와 1년간 공부한 뒤 활동 수기집에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말을 적은 것을 보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나눈 만큼 얻은 것도 있다. 점프를 통해 만난 사회인 멘토는 유리씨에게 “인생을 즐기는 법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조언해줬다.

2013년 서울 마포구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1년간 장학샘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직원으로 점프에 눌러앉은 김재원(27)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일주일에 10시간 넘게 아이들과 만나 공부하다보면 고갈된다는 느낌을 받는데, 사회인 멘토를 만나 고민의 실마리를 얻고 다시 충전됐던 것 같아요.” 점프 장학샘들이 받는 장학금은 프로그램에 따라 1년에 250만~400만원이다. 과외에 견주면 시간 대비 적은 금액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100명 이상 청년들이 장학샘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사회인 멘토’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 전공자 임현지(24)씨도 사회복지기관, 일반 기업 등에서 일하는 사회인 멘토를 만나면서 진로 고민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가르친 황다은(23)씨는 요즘도 가끔 과자를 사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아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은 서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모인 센터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활달해진다. 가르치려고 아이들을 만났지만, 다은씨는 거꾸로 아이들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이 커지는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이제 막 솟아난 씨앗”

더 많은 청년들이 교육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공유한다면, 학교와 사교육 시장을 둘러싼 견고한 벽이 조금씩 허물어진다면, 출구 없이 답답하게만 보이는 한국 사회 교육의 미래가 조금 밝아질 수 있을까?

“이제 막 솟아난 씨앗 같은 거죠. 교육을 통한 사회혁신 움직임이 많아 보이지만 사교육 시장에 비하면 손톱만큼도 안 돼요.”(이지섭 어썸스쿨 대표) 이제 막 싹을 틔운 변화의 씨앗이 쑥쑥 자라 ‘튼튼한 나무’가 되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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