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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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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길러주는 참교육

청소년을 위한 시민 교육에 앞장서는 싱가포르 ‘더소트컬렉티브’
등록 2017-06-15 13:33 수정 2020-05-03 04:28
5월31일 스쿨오브소트 강의를 듣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학생들.

5월31일 스쿨오브소트 강의를 듣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학생들.

“스쿨오브소트(School of Thought)? 생각은 과목이 아니잖은가? 수학이나 영어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2002년 통이(43)는 ‘스쿨오브소트’ 사업자등록 허가를 받을 때 정부 관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보통 등록 허가를 받는 데 사흘이면 충분한데 7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스쿨 오브소트’라는 학원은 어렵게 정부 허가를 받았다.

교사였던 통이는 청소년들이 시험 성적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에 눈떠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시민이 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학교 밖으로 나와 대학 동창들과 스쿨오브소트를 만들었다. 스쿨오브소트는 일반 학원과 달리 공교육 안에서 학업 부진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동시에 지역과 글로벌 이슈에 대한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5개의 연결고리, 5개의 가치

교육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는 사회적기업인 싱가포르의 ‘더소트컬렉티브’(The Thought Collective)는 스쿨오브소트뿐 아니라 4개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싱크탱크(Think Tank)는 사회적 이슈를 담은 청소년 교육 잡지를 발간하고, 푸드오브소트(Food for Thought)는 음식을 먹으며 시민들과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싱크이스케이프(Think Escape)에선 싱가포르의 역사 현장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커먼그라운드(Common Ground)는 다른 사회적기업과 연대 방법을 모색하는 조직이다.

5월31일 저녁 7시30분 싱가포르의 미들로드에 있는 스쿨오브소트 강의실. 의무교과목 GP(General Paper) 수업을 듣기 위해 고3 학생과 시민 180여 명이 모였다. 주제는 현대사회의 변화와 자아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강단에 오른 통이는 수강생들에게 “인생을 살다보면 두 가지 선택의 길에 놓인다. 시대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변할 것인가, 나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 순간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며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물꼬를 터준 셈이다. 뒤이어 그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이날 참석한 수강생 알리시아(18)는 “이곳 강의를 들으면 다양한 시사 문제에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 의견이 어떤지도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스쿨오브소트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나를 찾는 교육’이다. 한 주제를 놓고 작문을 하더라도 자신의 분명한 가치관이 드러나는 글쓰기를 하도록 교육한다. 지식만 달달 외워 답안지를 쓰게 하지 않는다.

미셸레(19), 싱카이(23), 징(21)은 스쿨오브소트의 교육과정을 듣고 이곳에서 인턴으로 활동한다. 그들은 모두 “처음에는 여느 학원처럼 GP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가르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에선 각자 자신의 개성과 목소리를 찾게 하는 강의를 한다”고 말했다. 미셸레는 “그동안 목적 없이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다”며 “이곳에서 강의를 들으며 지식이 아닌 인간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게 됐다. 어떤 사회적 사안을 두고 싱가포르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도 고민하게 됐다. 그것이 학교 교육과 다른 점이다”라고 말했다.

징은 수업을 통해 인생설계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인생 목표를 물으면 미국 하버드대학에 가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게 진정 나의 목표인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 계속 물어봤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그러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꿈도 찾았다.”

나를 찾는 교육
싱크탱크에서 발간하는 청소년 잡지.

싱크탱크에서 발간하는 청소년 잡지.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로 구성된 복합사회이다. 그래서인지 국민에게 통합 의식을 심어주는 실용주의 교육정책이 중시된다. 교과과정은 중국어와 영어 두 언어와 실용적인 수리 과목을 가르치는 데 집중돼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과정에서 경쟁을 거쳐 소수 정예만이 대학을 마치는 능력주의 교육을 실시한다. 학생들의 진로는 성적순으로 정해진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위한 공부에 매달린다. 학업 스트레스가 입시 경쟁이 심한 한국 못지않게 높다.

미셸레는 불만을 토로했다. “싱가포르 교육은 성적에 매여 있다. 학생들 개개인의 가치를 성적으로 매긴다. 성적 안 좋으면 ‘너는 그 정도의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적이 자신의 정체성은 아니지 않은가. 사회적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공교육 안에서는 경쟁과 줄세우기 교육에 지친 학생들을 품을 넉넉한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스쿨오브소트에선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학생들이 내적 성장을 할 수 있다. 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싱카이는 과학과 비즈니스에 집중된 교육에 불만이 많았다. “주입식 교육은 각자의 장점과 가능성을 못 본다. 하지만 스쿨오브소트 선생님들은 내 관심사에 공감하며 이해해준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글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

더소트컬렉티브는 15년의 시간 동안 교육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경쟁보다 상생을, 성적보다 꿈을 향한 교육으로 방향 전환을 이끄는 것이다. 더소트컬렉티브의 공동설립자 샤오윈의 말이다. “싱크탱크에서 잡지를 출간할 때 처음에는 누가 볼까 했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16살 학생이 찾아와 가슴 아픈 가족사를 털어놨다.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됐다고. 그래서 ‘왜 모르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물었다. 학생은 ‘몇 년 동안 잡지를 봤고 그것을 쓴 당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나에게 그 일은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샤오윈은 “한 명이, 한 학원이 무슨 변화를 일으키냐고 생각할 수 있다. 비록 한 세대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볼 순 없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나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교육에서 귀 기울이지 못한 학생들의 이야기와 꿈을 듣는 선생님이 있다. 그들은 학생이 행복하고 건강한 교육을 목표로 삼는다. 그 토대에서 새 시대의 희망을 만들고 이끌어갈 시민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소트컬렉티브라는 생각의 나무가 싱가포르에서 시나브로 자라고 있었다.

부기스(싱가포르)=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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