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깨어나라, 교육혁신 아이디어

타이·대만에서 교육 실험 벌이는 ‘체인지메이커’ 3인 인터뷰
등록 2017-06-08 20:55 수정 2020-05-03 04:28
타이와 대만에서 만난 교육혁신가들. 왼쪽부터 타이 ‘런에듀’ 타닌 팀통 대표, 대만 <어웨이크닝> 애들러 양 대표, 타이 ‘어치브’ 품싯 시랏수파로엑차이 대표, 대만 ‘오지그룹’ 리타 리 브랜드매니저. 진명선 기자, 어웨이크닝 제공, 진명선 기자, 진명선 기자

타이와 대만에서 만난 교육혁신가들. 왼쪽부터 타이 ‘런에듀’ 타닌 팀통 대표, 대만 <어웨이크닝> 애들러 양 대표, 타이 ‘어치브’ 품싯 시랏수파로엑차이 대표, 대만 ‘오지그룹’ 리타 리 브랜드매니저. 진명선 기자, 어웨이크닝 제공, 진명선 기자, 진명선 기자

“치앙마이 인근 산악지역 고산족 학교 아이들이 해마다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와요. 우리 교육 플랫폼이 없었으면 피자가 뭔지, 유튜브가 뭔지 접할 수 없었을 거라고요. 그들이 국가로부터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5월24일 타이 방콕 런에듀케이션(런에듀) 사무실에서 만난 타닌 팀통(41) 대표(www.facebook.com/tuey.tanin)에게서는 비장한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 ‘성공한 흙수저’다. 고산족 아이들의 이야기는 곧 팀통 대표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성공 대신 사회적기업 설립

“방콕 근교 논타부리에서 태어났는데 땅이 없어 부모님 두 분이 남의 농사일을 도와주며 살았어요. 밥을 겨우 먹을 정도였고, 옷은 남한테서 얻어 입었지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많이 노력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벌면서 공부한 끝에 이공계열 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일본계 회사에서 일하며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한국의 흔한 사례처럼 자기 출신 배경을 사회·경제적 성공에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정체 상태인 타이 공교육을 혁신하고 있다.

런에듀는 2010년 팀통 대표가 치앙마이에 있는 절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설립됐다. “동자승이 무척 많았어요. 주지스님께 여쭈었더니, 대체로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감옥에 가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라고 했죠.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어 주지스님이 마치 학교처럼 이들을 교육하고 있었어요.” 주지스님이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데서 통찰을 얻은 팀통 대표는 학교가 없거나, 학교가 있어도 교사가 없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를 개발했다. 사하빗스쿨과 치앙마이 산악지역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을 토대로 2016년 자신의 ‘사회적 소명’을 일깨워준 이 절에 런에듀 플랫폼을 기증했다. 그는 “벽지에 방치된 아이들이 타이 전역에 상당히 많을 텐데, 그들도 타이에 속해 있고 다 같은 타이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교육 플랫폼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타이와 대만에서 만난 교육혁신 현장에는 언제나 혁신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출신 배경도, 나이도, 전공도 모두 다르지만 교육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혁신 아이디어를 똑같이 품고 있었다.

대만의 애들러 양(22) 대표(www.facebook.com/adler.yang)는 고등학교 시절 대만의 교육 개혁 관련 기사를 쓰는 온라인 매체 (Awakening)을 창간했다. 양 대표는 으로 싱가포르 대통령이 수여하는 ‘청소년 사회혁신가상’을 받기도 했다.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은 이 매체는 취재와 기사 작성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다.

기사 쓰고 다큐 찍는 것도 청소년 교육

양 대표는 기사 작성에 참여한 한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소녀는 할머니 병간호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어요. 또래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인 2013년에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했는데, 이때 우리 잡지 보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오픈 인터뷰’ 코너에 참여해 기업의 인사 담당자와 대학 학위가 없는 성공한 기업가 등을 인터뷰했고, 결국 유아 교육에 대한 직업적 경험을 토대로 입학시험을 보지 않고 대만의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어요.”

양 대표는 청소년들이 을 통해 취재 및 기사 작성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이들이 사회를 간접 체험하는 ‘교육과정’으로 활용했다. 그는 이를 ‘우회적 교육 실험’(Education bypass surgery)이라고 명명했다. “청소년들이 대학에 가기 전에 사회를 경험하면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 능력을 증명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프로젝트를 개발할 겁니다.”

양 대표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9년부터 6년 동안 찍은 다큐멘터리 (If There is a Reason to Study)를 2014년 각종 영화제에 출품해 대만 교육계에 작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다큐는 양씨가 자신이 다니던 실험학교(대안학교)의 중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 10여 명을 6년 동안 추적한 내용을 담았다. 당시 실험학교엔 고등학교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일반고에 진학해야 했다. 공교육의 ‘이방인’이던 아이들이 다시 공교육에 동화되는 과정을 찍은 다큐는 입시가 교육을 압도한 대만 교육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 영화는 중국, 인도네시아, 홍콩 등 아시아 국가의 영화제 6곳에서 초청 상영됐다.

대만의 교육혁신 박람회 ‘자셰어’(雜學敎·Za-share)를 기획한 것은 젊은 디자이너 오지 수(38) 대표(www.facebook.com/ozzie.su)다. 예술대학을 나와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은 수 대표가 자기 전공도 아닌 교육 분야에서 대규모 혁신 박람회를 연 것은 ‘사회적 갈증’ 때문이었다. 그는 과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사회가 왜 예술을 필요로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래도 늘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작업을 하기 원했고, 예술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죠.” 그가 여섯 번의 창업 실패 끝에 2012년 설립한 오지아트컨설턴트그룹(Ozzie Art Consultants Group)을 상업적 활동보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중 캠페인을 기획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한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다.

“소셜임팩트(Social Impact·사회공헌활동)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니 결국 모든 문제가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제가 아빠가 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죠. 교육은 매일 당면하는 ‘빅 이슈’가 됐어요. 직관이 나에게 ‘교육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요.”

‘말 안 듣는’ 학교의 교장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던 수 대표는 이제 대만 전역에서 가장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집결하는 학교 자셰어의 ‘교장’이다. 1회 자셰어의 슬로건은 실제 ‘말 잘 안 듣는 세대’(Naughty Generation)였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기술인 마케팅과 브랜딩 전문가인 수 대표는 자셰어를 모두의 흥미를 잡아끄는 축제로 만들었고, 2회 만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3회 행사는 10월 타이베이에서 열린다.

“더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여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커지면 교육에도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믿습니다!”

치앙마이(타이)=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