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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만큼 큰 ‘노래방’을 본 적 있는가

2017년 이후 하향세였던 프로야구 인기, 엔데믹 시류와 비수도권 구단들 선전, 여성 팬 증가로 다시 상승
등록 2024-08-09 21:53 수정 2024-08-12 16:13
2024년 7월31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기아(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김도영이 1회말에 타격하는 모습을 관중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7월31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기아(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김도영이 1회말에 타격하는 모습을 관중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내가 ○○ 팬이 됐는데….”

최근 들어 지인들의 야구 이야기가 늘었다. 분명 2023년까지만 해도 야구와는 거리가 멀던 그들이었다. 스멀스멀 ‘야구’라는 글자를 꺼내더니 이제는 ‘덕질’까지 한다. 유니폼을 사고 굿즈를 ‘지른다’. 확실히 프로야구 인기가 늘었음을 실감한다. 이는 수치로도 잘 드러난다.

이미 487경기 700만 관중… 역대 최다 전망

프로야구는 2024년 7월27일 7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시즌 487경기 만이다. 역대 최소 경기 기록으로, 종전 기록은 2012년 작성한 521경기 만(당시 8개 구단 체제)이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17시즌 기록한 리그 역대 최다 관중(840만688명) 돌파는 무난해 보인다. 평균 관중(1만4644명)만 놓고 보면 1천만 관중도 결코 허황된 목표치가 아니다.

온라인에서도 뜨겁다. 프로야구 중계권을 가진 티빙이 2차 저작물에 대한 제한을 풀면서 명장면이나 웃긴 장면 등이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타고 퍼진다. 각 구단이 자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늘었는데, 한화 이글스가 운영하는 ‘이글스티브이(TV)’ 구독자는 8월4일 현재 32만8천 명을 기록 중이다. 메이저리그 엘에이(LA) 다저스(구독자 30만9천 명가량)보다 더 많다. 2023년 말까지 이글스TV 구독자는 2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프로야구 인기는 사실 2023년부터 ‘꿈틀’대기는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관중 입장 제한이 완전히 풀린 2023년 프로야구는 5년 만에 800만 관중을 넘었다. 프로야구뿐만이 아니다. 프로축구도, 프로배구도, 프로농구도 관중이 증가했다. 고약한 바이러스에 의해 갇혀 있던 데 따른 보복 심리가 가열차게 발동한 것이다.

코로나19는 사람과의 거리두기를 강요했고 모여서 뭔가를 함께하는 것을 금지했다. 자유는 억압됐고 바깥에 대한 동경은 이어졌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약화했다. 이제 오픈된 장소에서 다 같이 모여 다 같이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욕구가 집약돼 분출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야구장이다. 야구장만큼 큰 노래방을 본 적이 있는가.

물론 모이지 말아야 하고, 말하지 말아야 했던 코로나19 시대의 보복 심리만으로 프로야구 인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올해 프로야구는 어느 해보다 치열한 순위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의 흥행 강자인 기아(KIA) 타이거즈, 엘지(LG) 트윈스가 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고 사령탑(김태형)을 바꾼 롯데 자이언츠 또한 중위권 도약을 노리고 있다. 한 야구 구단 마케팅 관계자는 “시즌 초반 비수도권 구단들의 선전이 지금 인기의 밑바탕이 된 것 같다. 비수도권 구단이 수도권으로 올라와 경기할 때 몰려드는 방문 팬들 숫자 자체가 올해는 다르다”고 했다. 광주, 부산, 대구, 대전이 고향인 팬들이 개막 초기 연고지 구단의 선전에 고무돼 서울(고척 포함), 인천, 수원 야구장으로 몰렸다는 얘기다.

비수도권 구단들의 홈구장도 물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대전 연고의 한화 이글스는 두 시즌 연속 감독 교체(카를로스 수베로→최원호→김경문)의 초강수를 두고 포스트시즌 진출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흥행 핫 플레이스가 됐다. 8월5일까지 치른 54차례 홈경기(대전, 청주)에서 38차례 매진이 됐다. 케이비오(KBO)리그 단일 시즌 최다 매진 기록(1995년 삼성 라이온즈·36회)도 갈아치웠다. 리그 전체로 보면 8월4일까지 열린 517경기 중 145경기(28.05%)가 관중으로 꽉 찼다. 10개 구단 체제 이후 가장 매진이 많았던 해는 2015년으로 69경기였다. 삼성 라이온즈는 2016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개장 이후 최초로 100만 관중도 바라보고 있다. 올해 매진만 17차례(홈 53경기) 했다.

2030 여성 팬 예매 비율 높아

관중이 늘면 당연히 구단 상품 판매도 늘어난다. 각 구단은 현재 다양한 유니폼과 굿즈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는데 금방 품절된다. 비수도권 한 구단의 올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그만큼 프로야구단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있다.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하지 않은 2030 관중이 늘어난 영향이 없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팬층의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던 KBO리그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KBO 사무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7월 초 열린 올스타전에는 2030 여성 팬의 예매 비율이 제일 높았다. 20대 여성 비중이 39.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30대 여성 또한 19.1%로, 20~30대 여성 비율이 전체의 58.7%를 차지했다. 2023년 올스타전(부산 개최) 때는 20대 여성이 35.4%, 30대 여성 13%로 둘을 합해 50%를 밑돌았다. 전체 남녀 성비를 따져봐도 여성이 68.8%, 남성이 31.2%로, 2023년(여성 65.7%, 남성 34.3%)보다 여성 팬 비율이 소폭 올랐다.

여성 팬들의 증가가 리그 인기몰이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프로야구는 일견 1994년과도 닮았다. ‘한국야구사’(KBO 편찬)에는 “프로야구판에 불어닥친 ‘엑스(X)세대’ 돌풍은 특기할 만한 것이었는데, 이들의 활약은 스탠드에 ‘오빠 동아리’를 불러모았다”고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다. 야구장에 선수를 응원하는 손팻말이 등장한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구장마다 교복 입은 여고생이 넘쳐났다. 일부 극성 여고생 팬들은 선수단 숙소까지 잠입했다. 김재현 현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단장에 따르면, 당시 1주일 동안 그에게 날아온 팬레터만 마대 자루 한가득이었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시대에 ‘우상’은 스포츠 선수들이었다. 이를 발판 삼아 프로야구는 1995년 최초로 관중 500만 시대를 열었다. 지금 상황도 많이 다르지 않다. 다만 호칭이 ‘○○○ 오빠’에서 ‘우리 △△△’으로 바뀌었고, ‘우리 △△△’을 찍기 위한 대포 카메라가 야구장에 등장한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타격 밸런스에도 사이클이 있듯이 야구 관중몰이에도 사이클이 있다. 여성 팬이 대폭 늘어나면서 1995년 인기 정점을 찍은 프로야구는 IMF 등과 맞물려 점점 관중이 감소했다. 야구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팬의 모습이 포착될 정도였다. 하지만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 4강에 이은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다시 관중은 늘어났고 2011년 600만 관중(8구단 532경기)을 넘어 2016년 관중 800만 명(10구단 720경기)을 넘어섰다. 2017년 최정점을 찍은 뒤 국제대회 성적 실망 등으로 하향세를 겪던 프로야구 인기는 엔데믹 뒤 시류와 맞물려 다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프로 수준 못 맞춘 경기력도 돌아봐야

‘프로야구’라는 콘텐츠는 도파민을 좇는 시대에 아주 활활 타오르고 있다. 다만, 리그 경기력이 리그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프로 수준에 맞지 않는 공격, 수비 모습이 가끔 나오고 있어서다. 욕하면서 보다가 욕만 남을 수도 있다. 막장 드라마처럼.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 whizzer4@hani.co.kr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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