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중순, 고교 야구계가 술렁였다. 황금사자기 대회(14~29일) 예선 때 등장한 ‘로봇심판’ 때문이었다. 3월 열린 신세계 이마트배 대회 16강전에 처음 도입된 로봇심판이 황금사자기 때는 예선전부터 투입됐다.
로봇심판이라고 하지만 진짜 로봇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구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로 투수가 던진 공의 위치·속도·각도 등을 측정한 뒤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하고 구심에게 전달한다.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인간 심판의 눈이 아닌 객관적 기계의 눈으로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비를 줄여보려는 시도다.
이마트배 대회 때는 호평받았던 로봇심판이 황금사자기 때 성토의 대상이 된 이유는 스트라이크존에 걸친 듯한 공을 모두 볼로 판정하면서 볼넷이 남발됐기 때문이다. 한 예로 5월15일 열린 예선전의 경우 기계가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한 목동구장 세 경기에서 78개의 사사구(볼넷과 몸에 맞는 볼을 합쳐 부르는 말)가 나왔다. 부산공업고-아로고BC 경기 사사구는 모두 39개였다. 현장에서는 “가운데로만 공을 던져야 한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참고로 인간 심판이 판정을 한 신월구장 세 경기에서는 36개의 사사구가 나왔다.
다음날까지도 사사구가 속출하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로봇심판 스트라이크존을 재설정했다. 그러나 5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대회 16강전 성남고와 경기항공고 경기에서도 두 팀 합해 20개 사사구가 나온 것을 고려하면 아마추어 투수들이 여전히 로봇심판 스트라이크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겠다. 한 학부모는 “볼넷이 되는 줄 알았는데 삼진이 됐고, 삼진이 되는 줄 알았는데 볼넷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야구의 세계에서 스트라이크존은 꽤 민감한 문제다. 공 하나 판정에 따라 타격 폼, 혹은 투구 메커니즘이 흐트러질 수 있고, 더 나아가 경기 흐름까지 바뀔 수 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당일의 스트라이크존이 팬들 입길에 오르는 이유다. 특정 심판이 배정되면 경기 전부터 한숨을 쉬는 팬도 있다. 심판도, 팀도, 선수도, 팬도 스트라이크존은 스트레스 그 자체. 인간은 실수의 동물이고, 불완전한 인간이 판단·판정하는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신뢰도는 100%가 될 수 없다.
심판 판정 오류는 통계로 잘 나타난다. 2019년 4월 미국 보스턴대학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시즌 메이저리그 심판은 모두 89명으로 평균연령 46살, 평균경력 13년이었다. 각 심판은 평균 112경기에 나섰고 그중 28경기에서 주심으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했다. 시즌 전체로 보면 대략 4200차례 투구 판정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2018시즌 동안 심판은 3만4294개의 잘못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했다. 경기당 평균 14개에 이른다.
잘못 판정된 공 한 개가 경기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경기 흐름을 바꾼 일부 판정도 있었을 것이다. 보스턴대학 연구진은 “메이저리그 심판은 투 스트라이크에서 명백한 볼을 스트라이크로 잘못 판정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2018년 심판의 볼 판정 실수로 총 55경기가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통계는 또 있다. 텍사스대학 경제학 연구팀이 2004~2008년 메이저리그 투구 350만 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심판들은 자신과 같은 인종의 투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투수들은 다른 인종의 심판을 만났을 때 스트라이크존 바깥쪽보다는 한가운데로 공을 던지려고도 했다. 심판 중 89%가 백인이고 70%의 투수가 백인인 메이저리그 상황에서 유색인종 투수가 당한 차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 올스타전에 여러 차례 뽑힌, 이른바 검증된 투수는 스트라이크 판정에 후했던 통계도 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판정을 분석했을 때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온 투구의 13.2%가 볼로 판정됐다는 데이터도 있다. 86.8%만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셈이다.
인간이 3시간 안팎 동안 같은 자세를 내내 유지하면서 0.4초 이내로 날아오는 공에 일정한 판정을 내리기는 사실 힘든 일이다. 똑같은 볼 판정을 내려도 심판 출신 등에 따라 괜히 팬들에게 오해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감성적 판단이 절대 개입될 수 없는 로봇심판에 대한 갈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기술 발전 또한 로봇심판 등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메이저리그는 2001년 투구 추적 시스템인 퀘스텍(QuesTec)을 처음 도입했고, 2008년부터는 퀘스텍보다 더 정교해진 피치에프엑스(PITCHf/x)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3의 눈이 등장하면서 볼/스트라이크 판정 데이터가 축적됐고, 숫자로 보이는 오심 수치는 충격과 함께 인공지능(AI) 기반의 자동 판정 시스템 도입을 부채질했다.
미국프로야구는 2019년 독립리그 애틀랜틱리그에서 로봇심판을 처음 시범운영했고 이후 마이너리그 하위 싱글A와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도 도입했다. 2022년 일부 트리플A 구장에서도 운영했는데, 2023년부터는 트리플A 30개 모든 구장에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기계가 설치됐다.
케이비오(KBO)리그는 2020년 퓨처스(2군)리그에서 로봇심판을 도입해 시험가동해왔다. 한국야구위원회 관계자는 “2023년에도 도입할 예정인데, 시간 단축 효과를 보고 있다. 전용 수신기로 바꾸니까 인간 심판의 판정만큼이나 빨라졌다”며 “이제는 자동 판정의 안정성을 구축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타자가 절대 칠 수 없는 존에 걸치는 공에 대한 스트라이크 판정 등은 숙제로 남아 있다. 애초 2024년 로봇심판 도입을 고민하던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아직 망설이고 있다.
공평한 경기를 위한 스포츠 판정 기술은 나날이 정교해졌다. 프로축구만 봐도 그렇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때는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이 도입돼 불필요한 논쟁을 없앴고, 공인구 안에 관성측정장치까지 심어 미세한 공의 움직임까지 잡아냈다. 프로테니스는 정확한 인/아웃 판정을 위해 일찌감치 호크아이 기술을 사용한다. 야구와 비슷한 크리켓 또한 심판이 무선 기술을 이용해 판정의 질을 높이고 있다.
여느 스포츠보다 긴 시즌 동안 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프로야구. 공 하나하나에 소비되는 감정의 낭비를 줄이면 경기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기계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한다고 야구 본연의 재미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 패배에 대한 분풀이 대상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인생 뭐, 야구’는 3주에서 4주 간격 연재로 바뀝니다. <한겨레> 스포츠팀 박강수 기자의 칼럼이 추가돼 4주마다 연재됩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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