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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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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에 번지는 박정희 동상 세우기 바람

사회적 합의 없는 독재자 기념 사업으로 우상화 논란
등록 2024-09-07 09:25 수정 2024-09-11 11:17
2024년 8월14일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세웠다. 대구시 제공

2024년 8월14일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세웠다. 대구시 제공


2024년 한가위 귀성길 동대구역에 내리면 지난 명절에 없던 낯선 무언가를 볼 수 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나와 도시철도 1호선을 타러 가는 방향으로 보면 높이 5m, 너비 0.8m 크기의 표지판이 보입니다. 8월14일 광복절을 앞두고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광장’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표지판에는 박 전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고, 글자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서체를 그대로 본떴습니다. 대구시는 이날부터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동대구역 광장은 이제 `박정희 광장’

표지판 제막식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이 지금의 대구와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조명하기 위한 것인 만큼 기념해야 할 부분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고 말했습니다. ‘박정희 우상화’라는 시민사회 비판이 끊이지 않자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강조한 것이죠.

대구시는 이곳에 2024년 연말까지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세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곧 문을 열 대구시 남구 대구도서관 앞 공원은 ‘박정희 공원’으로 하고, 역시 동상을 세울 예정입니다. 대구시는 이를 위해 예산 14억5천만원을 편성했습니다. 홍 시장이 페이스북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힌 3월부터 사업을 위한 조례 제정과 예산 통과는 단 2개월 만에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에 표지판을 설치하자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동대구역 광장은 국가철도공단 소유로 국유지인데요. 대구시가 공단과 논의도 없이 시설물을 설치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대구시는 2017년부터 광장을 대구시가 관리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대구시의 권한은 유지·관리에만 있다고 지적했죠. 민주당 대구시당은 홍 시장을 국유재산법 제7조 국유재산의 보호 및 제18조 영구시설물의 축조 금지 위반 등으로 대구지검에 고발했고, 대구시는 허소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 등 8명을 무고죄로 맞고발하는 사태까지 왔습니다.

이 문제는 국회로까지 번졌는데요. 8월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동대구역 광장은 아직 준공 처리가 안 된 상태로 공사 중에 있는 시설물에 대한 관리권자는 대구시장”이라면서도 “(대구시로부터) 공식적으로 역명 변경, 표지판 설치에 관한 제안은 없었다. 대구시의 이번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따져보겠다”고 답했습니다.

박정희 동상 세우기 움직임은 경북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북도는 박정희대통령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건립하려고 준비 중인 동상을 박 전 대통령 생일인 11월14일에 맞춰 경북도청 앞 천년나무숲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추진위는 높이 10m 규모 동상을 만들고, ‘민족중흥의 위대한 총설계사 박정희(1917-1979)’라는 문구와 박 전 대통령의 발언 등을 새기겠다고 했습니다. 동상 건립을 위해 10억원을 목표로 국민 성금 모금 운동도 벌입니다.

경북에는 이미 구미시 박정희 생가 앞, 청도군 새마을운동 발상지 광장, 경주 보문관광단지 등 3곳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이 있는데 올 연말이 지나면 대구·경북에만 동상이 6곳으로 늘어나는 셈입니다.

2024년 말이면 대구·경북에 박정희 동상 6개

이처럼 ‘묻지마식’ 박정희 동상 세우기가 대구·경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지역 출신 대통령을 기념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반면, 때아닌 독재자 우상화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구=김규현 한겨레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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