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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감독도 임기제로!

등록 2013-01-22 17:03 수정 2020-05-03 04:27

다시, 홍명보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벌써 세 차례다. 그는 핌 베어벡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할 때부터 ‘차세대 감독 유력 후보’로 꼽혔다. 그래도 그때는 ‘차세대’라는 단서가 붙었다. 그런데 2010 남아공월드컵 직후 달라졌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급부상했고, 조광래 감독의 경질 파문에 따라 1순위로 언급됐으며, 최강희 감독이 그 자신의 축구 스타일대로 확언한 2013년 6월 임기 만료가 다가오자 이제는 거의 ‘0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알다시피, ‘닥공’(닥치고 공격) 최강희 감독은 전북 완주군 봉동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는 명예 ‘봉동이장’이다. 정확하게는 읍장이어야 하는데 ‘이장’이라는 호칭이 친근하고 자연스럽다. 새해 초에 전북 전주에 일이 있어 내려가던 길에 봉동읍을 스쳐 지나갔는데, 순간 최강희 감독이 떠올랐다.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극심한 혼돈 속에서 대표팀을 맡게 된 그가 2013년 6월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오직 본선 진출에 몰두한 뒤 표표히 물러나 전북 현대로 돌아가겠노라고 선언했다.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되는 홍명보. 그가 지난해 8월 영국 카디프에서 열린 일본과의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되는 홍명보. 그가 지난해 8월 영국 카디프에서 열린 일본과의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독일팀 6년6개월 지휘 중인 뢰브

본선 직행의 승전보라면 퍼스트클래스석에 앉아 브라질로 갈 수도 있을 텐데, 놀라운 결정이다. 그는 1년 전쯤 이영미 축구 전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표팀 감독이 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덜컥 맡게 되면서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말했다. 대표팀 감독이 꿈이 아니라는 지도자는 내 기억에 최강희 감독이 유일하다. 2002년의 쓰라린 상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는 수원 삼성에서 무려 7년이나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2년 1월에 벼락 같은 해임 통보를 받았다. 다른 팀을 알아볼 여지도 없었다. 그는 자살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고 훌훌 스페인으로 날아가서 스스로 힐링했다. 아마도 이때의 경험 때문에 경질보다는 스스로 임기를 정해놓고, 그 산이 높든 낮든, 스스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

현재 브라질행 축구 대표팀은 한 경기를 덜 치른 가운데 조 2위(승점 7·2승1무1패) 상태다. 남은 경기 일정이 순조롭다. 4경기 중 3경기를 홈에서 치른다. 원정 레바논전을 선방한다고 하면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이란을 홈에서 ‘닥공’시킬 수 있다.

6월18일(이란전), 브라질행이 확정되면 ‘놀랍게도’ 대표팀 감독이 바뀐다. 그 0순위로 홍명보라는 굵직한 이름이 오르내린다. 러시아 안지로 떠난 홍명보 전 감독의 지도자 연수도 그 무렵에 끝난다.

문제는 ‘홍명보냐 아니냐, K리그 명장이냐 외국인 감독이냐’ 하는 점이 아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차기 감독 역시 딱 1년만 하고 물러나는 수순이다. 이런 식으로는 장기적인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물론 한 명의 감독이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2004년 감독 자리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의 레몽 도메네크는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비교적 선전(빈곤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준우승)했지만 유로 2008 때는 자국 팬들에게 비극을 상연했고 2010 남아공 때는 참극을 보여줬다. 그런 뒤에야 프랑스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을 로랑 블랑으로 바꿔 유로 2012를 치렀고 그 뒤에는 디디에 데샹이 맡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독일을 생각해야 한다. 요아힘 뢰브가 6년6개월째 맡고 있다. 2004년 8월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코치 생활을 한 것까지 더하면 지금 독일 대표팀은 뢰브 감독에 의해 9년 가까이 조련되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현 최강희 감독은 스스로 임기를 정해둔 경우이니 제외해놓고 보면 허정무 감독이 2년6개월로 최장수다. 계약 만료나 경질 여부를 떠나서 히딩크, 조광래, 차범근 등이 1년6개월 정도 맡았고 베어벡, 본프레레, 코엘류 등이 1년 남짓이며 아드보카트와 박종환은 1년도 넘기지 못했다. 김평석, 박항서, 김호곤, 박성화 등 단기 감독 대행은 생략한다.

이렇게 해서는 국가대표팀을 정점으로 한 지속적인 전략 연구와 체질 변화와 중·장기 계획 등이 무망하다. 국내 감독들은 대체로 경질됨으로써 파행과 분열의 씨앗이 되었고, 외국 감독들은 언제든지 유럽 클럽이나 중동 오일달러의 러브콜을 기다리곤 했다.

누구냐보다 중요한 얼마나

홍명보? 그렇다. 0순위다. 박지성도 없고 이영표도 없고 이동국이나 박주영도 예전만 못한 현황에서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로 대대적인 개편을 한다면 그들을 가장 잘 아는 홍명보가 맡을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맡든, 새 감독의 임기를 최소 3년으로 보장해야만 한다. 브라질행 결과를 보고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는 식의 조건부 계약은 해악이다. 우리 대표팀의 특수성이 있다. 유력한 주전 선수들 절반이 해외에 나가 있다. 일상적으로 점검하기 어렵다. 그 나머지 절반을 서너 달 살피다 보면 본선 조 추첨이 끝난다. 조 추첨 뒤에는 국내 각 클럽의 겨울 전지훈련이 시작된다. 그런 와중에 23명을 추려서 브라질에 가는 것이다. 시스템이 구축되거나 노하우가 전수될 리 만무한 일정이다.

승리의 영수증이나 실패의 정산서만 급조될 뿐, 하나의 팀이 형성되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그 성과가 프로에서 유소년까지 수혈되고 학습되는 일정이 전혀 아니다. 그러니 대표팀 감독의 최소 3년 임기 보장은 누가 그 자리를 맡느냐 이상으로 훨씬 중요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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