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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과 다른 준우승 후유증

등록 2013-01-04 21:54 수정 2020-05-03 04:27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전적을 살펴봤다. 투표와 경기는 다른 점이 많지만 승자 독식의 룰이 지배한다는 점에선 유사하다. 건곤일척 싸움의 패자에겐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궁금했다. 1982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시리즈는 모두 29번 열렸다. 1985년은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으로 포스트시즌 없이 우승팀이 됐다. 29번의 시리즈에서 준우승팀의 평균 정규시즌 승률은 0.575였다. 시리즈에서 패한 이듬해 승률은 0.536으로 3푼9리나 떨어졌다. 29개 팀 가운데 이듬해 승률이 오른 팀은 8개에 불과했다. 한국시리즈 패전이 이듬해 승률 하락으로 이어진 확률이 65.5%에 달한 것이다. 이 중 13개 팀의 승률은 이듬해 5푼 이상 하락했다. 9개 팀은 승률 5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큰 패배는 심기일전이 아닌 또 다른 좌절로 더 자주 이어졌다.
 
2000년대 우승팀 이듬해 승률 오히려 하락
원년 한국시리즈는 OB 박철순의 투혼과 삼성 이선희의 눈물로 기억된다. 이듬해인 1983년 삼성의 승률은 전년(0.675) 대비 0.196이나 떨어진 0.479였다.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나쁜 기록이다. 1992년 빙그레 이글스(0.651→0.500), 1994년 태평양 돌핀스(0.552→0.401), 1996년 현대 유니콘스(0.552→0.421)도 대표적인 준우승 후유증을 겪은 팀이다.
그러나 시기를 나눠보면 차이가 있다. 1982~2000년의 준우승팀 18개 가운데 14개 팀이 이듬해 승률 하락을 겪었다. 비율로는 77.8%였다. 반면 2001~2011년엔 거꾸로 11개 팀 가운데 6개 팀의 이듬해 승률이 상승했다. 확률로 치면 55% 팀의 승률이 올라 역전이 일어난 셈이다. 준우승팀이 이듬해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횟수도 세 번이다. 2000년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프로야구 역사는 1980년대를 태동기, 1990년대를 변화기, 2000년대 이후를 안정기로 볼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굵직굵직한 변화가 많았다. 1990년 2군 리그가 창설됐으며 1991년엔 쌍방울 레이더스의 1군 데뷔로 현재의 8개 구단 시스템이 정착됐다. 1997년엔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됐고, 1998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됐다. 재활과 전력 분석이 도입돼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수십억원대이던 구단 예산도 뒷자리에 ‘0’이 하나 더 붙게 됐다. 경기 내적으로도 투수 분업화가 시작됐다.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돌연변이가 줄어든다. 강한 팀이 전력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이전까진 우승을 위해 제한된 자원을 무리하게 가동하다 탈이 나곤 했다. 이제는 시스템을 갖추고 잘 관리하는 팀이 이긴다. 최근 5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이 SK(5회), 롯데(5회), 삼성(4회), 두산(4회), KIA(2회)밖에 없는 건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다. 패전은 가혹하지만 준비하는 자는 미래를 바꿨다.
그렇다면 우승팀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준우승팀보다 더 가혹했다. 역대 우승팀 29개 가운데 이듬해 승률이 오른 팀은 5개밖에 없었다. 승률 하락 팀의 비율은 82.8%로 준우승팀보다 높았다. 평균 승률은 우승 시즌 0.606에서 0.527로 7할9푼이나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팀이 우승팀이 된다. 한 팀의 전력은 매년 일정하지 않다. 우승 시즌은 팀의 전력이 피크에 이르렀을 때다.
1989년 정규시즌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가 계단식으로 배치되는 현재의 포스트시즌 스케줄이 도입됐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정규시즌 우승팀이 거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다. 반면 정규시즌 3위나 4위 팀은 우승은 어려워도 한국시리즈 진출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우승팀과 준우승팀의 이듬해 승률 차이는 준우승팀에 ‘성장의 여지’가 조금 더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변화하는 승자, 김응용의 리더십
이 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은 김응용 현 한화 감독이다. 김 감독은 해태에서 9회, 삼성에서 1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연속 우승을 기록한 시즌만 네 번이다. 네 번 모두 2000년 이전에 세운 기록이다. 그가 이끈 해태는 선동열·이강철·조계현·임창용·이상윤·김성한·김봉연·한대화·이순철·이종범 등 쟁쟁한 스타들이 포진한 팀이었다. “해태 같은 선수단이라면 나도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게 당시 다른 감독들의 부러움 섞인 말이었다. 프로야구 시스템이 채 갖춰지기 전 해태의 돌연변이 같은 강함은 더 돋보였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 도전하는 강팀의 지위를 10년 넘게 유지한 이유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김응용은 무자비할 정도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감독이었다. 자신과 팀에 우승을 안겨다준 노장들을 서슴없이 젊은 유망주로 교체했다. 이 과정에서도 리더십을 잃지 않았던 게 ‘김응용 카리스마’의 본질이다. 준비하는 패자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자는 미래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 프로야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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