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12월은 내년 페넌트레이스 일정을 둘러싼 시비로 시작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1월30일 2013 정규시즌 일정을 발표했다. 다음날인 12월1일 롯데 구단의 강한 반발에 대한 기사가 각 매체를 장식했다. NC 다이노스의 가입으로 내년 시즌은 사상 최초로 9개 구단 체제로 운영된다. 어느 하루는 반드시 경기를 쉬게 되는 팀이 생긴다. 현행 프로야구는 한 팀이 상대와 3번을 연달아 경기하는 3연전 시스템이다. 한 번의 3연전을 쉰 팀은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그런데 롯데는 ‘3연전을 쉬고 난 상대’와 치르는 시리즈가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12번이다. 그다음이 한화(8회), NCㆍ두산(각 7회)이며 삼성은 단 1회다.
10구단 문제 부각시키기 위한 꼼수?
‘홀수 구단 일정’은 제7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하고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1군에 데뷔하기 전인 1986~90년에도 있었다.
롯데는 12월3일 이례적으로 KBO에 공식 서한을 작성해 일정의 불리함에 대해 따졌다. 이에 대해 KBO는 역시 이례적으로 “재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일정을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12월6일 9개 구단 단장회의는 KBO의 답변을 추인하는 선에서 일정 논란을 마무리지었다. 많은 이들은 일정 논란에서 KBO와 롯데 구단의 불편한 관계를 상기했다. 롯데는 유영구 전임 총재 시절 추진된 9개 구단 창단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구단이었다. 구본능 현 총재 취임 때도 이견을 밝혔으며, 구 총재가 추진 중인 10구단 창단에 반대하는 5개 구단 가운데 하나다.
이 과정에서 KBO가 얻은 소득이 있다. 10구단 창단은 다수 구단의 반대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일정 논란에서 KBO는 ‘홀수 구단 체제의 문제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리그 사무국의 고유 권한인 공식 스케줄 작성을 특정 구단의 반발을 이유로 ‘재조정’했다는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전 KBO 관계자는 KBO의 일정 재조정에 대해 “해외 토픽감”이라고 했다. 공식 스케줄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작성돼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비판은 ‘홀수 구단 체제’라는 상황으로 피해갈 수 있어도, 상황을 이유로 합리적인 스케줄을 만들 수 없는 무능한 조직임을 자인한 꼴이 됐다.
공식 스케줄의 의미, 그리고 공식 스케줄 변경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조직이 바로 KBO다. 11월30일 발표한 안이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면 구단 하나의 반발은 무시해야 했다. 하지만 KBO는 롯데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일정 변경을 약속했다. 여기에서 KBO가 처음부터 특정한 의도를 가졌던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전력이 약한 신생 구단을 배려하기 위해서(휴식기 뒤 롯데와 가장 자주 만나는 구단은 창원 연고의 NC다)였을 수도 있고, 10구단 창단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불편한 롯데 구단을 타깃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본질은 KBO 총재와 구단의 관계다.
프로야구 총재는 이중적인 지위를 지닌다. 구단들의 피고용인으로서 구단 간 이익을 조정하고 구단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프로야구 수장으로서 ‘야구 전체의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지위는 때로 충돌하기도 한다. 10구단 창단 문제는 현재 9개 구단 가운데 5개 구단이 반대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구본능 총재는 9개 구단의 구단주와 이사보다는 ‘야구인’의 의견을 더 존중하는 듯 보인다.
초대 서종철 총재 시절 KBO 총재의 위상은 막강했다. 하지만 서 총재 이후 힘의 균형추는 점점 구단 쪽으로 기울어졌다. 구단의 힘은 2008년 “박종웅 전 의원이 새 총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유영구 총재 선출을 강행한 데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유 총재가 사학 비리 사건으로 낙마한 뒤 구 총재가 선출됐다. 당시 구단들은 ‘오너 총재’를 뽑자고 의견을 모았고, 구단주 가운데 적임자가 없자 대안으로 LG그룹 일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총재로 모셨다. ‘구단주 총재’를 원한 이유는 결국 구단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구단에 자율성 가지는 함정
하지만 ‘구단주 총재’는 구단들에 대해 더 큰 자율성을 가진다는 게 함정이다. 프로야구 구단은 매출액 수백억원대의 작은 사업체다. 그러나 ‘오너 총재’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사업을 경영해봤다. 그리고 프로야구 총재를 맡을 정도라면 야구를 ‘매우’ 사랑하는 이들이다. 개개 구단도 자체 규모는 작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명목상이든 실질적이든 ‘구단 오너’들의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오너 총재’와 ‘대기업 산하 구단’의 힘은 단기적으로 2013년 공식 스케줄 문제, 중기적으로 10구단 창단 논의에서 부딪치고 있다. 흥미로운 파워게임이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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