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고맙습니다 윤경신, 장미란, 황희태

등록 2012-08-14 19:32 수정 2020-05-03 04:26

노장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경기. 남자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은 투혼을 보여줬다. 세계랭킹 4위 덴마크를 맞아 세계 19위 한국은 전반을 14-13으로 앞섰다. 후반에도 줄곧 1~2골 차 리드를 지켰지만 마지막 10분을 버티지 못했다. 24-26 역전패. 세는 나이로 마흔인 윤경신(39)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이번이 생애 5번째 올림픽 출전으로 이은철(사격), 허승욱(스키), 오성옥(핸드볼), 이규혁(스피드스케이팅)과 함께 한국 선수 최다를 기록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편파 판정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 나갔더라면 6회 연속 출전도 가능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핸드볼 예선 경기에서 윤경신 선수가 헝가리 선수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2 런던올림픽 남자핸드볼 예선 경기에서 윤경신 선수가 헝가리 선수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인사, “아쉬워도 후회는 없다”

마지막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다짐했지만 대진운조차 따라주지 않았다. 유럽 랭킹 1~4위가 속한 ‘죽음의 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태극마크는 내 몸의 일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그는 20년 넘게 단 태극마크를 떼는 심경을 “시원섭섭하다”고 표현했다. 다소 굳은 표정의 그는 “이제 선수로서 대표팀 경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그렇다”고 허전해했다.

윤경신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다. 1995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3시즌 동안 7차례나 득점왕(6회 연속 득점왕 포함)에 올랐고, 통산 최다 득점(2908골), 한 시즌 최다 득점(327골)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가 2006년 굼머스바흐에서 함부르크로 팀을 옮기기 직전 고별 경기에는 무려 2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어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세월은 거스를 수 없었다. 올림픽 무대에서 마지막 경기를 반드시 이기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런던올림픽 조별리그 5경기에서 4골을 넣는 데 그친 그는 “체력도 많이 떨어졌고 이젠 움직임이 상대팀에게 읽혔다”며 “후배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한국 남자유도 대표팀의 ‘맏형’ 황희태(34·수원시청)의 이마에서 연신 피가 흘러내렸다. 아르템 블로셴코(우크라이나)와의 런던올림픽 유도 100kg급 16강전 경기 도중 이마가 찢어졌다. 하지만 그는 블로셴코를 업어치기로 메다꽂고 8강에 올랐다. 이마에 붕대를 감고 나선 8강전에서도 엘마 가시모프(아제르바이잔)를 유효로 물리쳤다.

이제 4강이다. 두 고비만 넘기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이다. 그러나 준결승 상대는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몽골). 황희태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경기 중반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유효 1개와 지도 1개를 내주고 물러났다. 패자전을 거쳐 올라온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황희태는 헨크 그롤(네덜란드)에게 절반패를 당해 결국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노장의 ‘핏빛 투혼’은 관중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표팀 최고참인 황희태는 이번이 올림픽 마지막 무대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메달을 허락하지 않네요” 하며 빙그레 웃었다.

황희태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90kg급,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100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내 한국 선수 최초로 아시안게임 두 체급을 석권했다. 그러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6살에 첫 출전한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도 이번처럼 준결승에서 져 공동 5위에 그쳤다. 황희태는 “그동안 운동한다고 집에도 잘 못 갔는데, 이제는 한국 가서 아내에게 잘해주겠다”며 웃음지었다.

마지막 용상 3차 시기를 실패한 장미란(29·고양시청)은 바벨에 손을 갖다대며 간접 키스를 했다. 올림픽 무대와 작별하려는 그만의 의식이었다. 바벨을 어루만지다 두 손을 모으고 플랫폼에 꿇어앉아 기도했다. 그리고 관중에게 손을 흔들었다. 관중은 큰 박수로 그들의 스타를 떠나보냈다.

장미란은 경기가 끝난 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한참을 뒤돌아서 울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왔다. 저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여자 역도 선수로는 환갑이나 다름없는, 우리 나이로 30살이다. 한창 전성기인 중국의 저우루루(24)와 러시아의 타티아나 카시리나(21)를 상대하기엔 벅찼다. 장미란은 자신의 최고 기록인 326kg보다 훨씬 낮은 합계 289kg으로 4위에 그쳤다. 장미란은 “어쨌든 다 끝나서 좋다. 다치지 않고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금메달, 그들의 도전 정신

사이클의 조호성(39), 탁구 오상은(35)과 김경아(35), 여자핸드볼 우선희(34) 등도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다. 조호성은 가족과 1년 넘게 떨어져 지구를 두 바퀴는 돌 만큼 훈련을 했다. 오상은은 “나이가 드니 한번 다쳐도 잘 낫지 않았다”고 했다. 우선희는 “아테네올림픽 ‘우생순’의 추억이 되살아난 올림픽이었다”고 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향한 노장들의 도전 정신은 아름다웠고, 그 자체로도 금메달감이었다.

런던(영국)=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