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해설가 양준혁은 5월23일 트위터에 이 팀에 대해 “제가 4강 후보라고 말은 했습니다만, 우승 후보인걸요”라고 썼다. 내분 사태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한 당원은 이날 당 홈페이지에 “우리도 이 팀처럼 1등을 할 수 있을까”라고 한탄했다. 이 팀은 넥센 히어로즈다. 넥센은 이날 서울 목동 홈구장에서 LG 트윈스를 10-7로 누르고 2008년 창단 이후 첫 단독 선두에 올랐다.
“제2의 넥센이 나와선 안 된다”
넥센은 천덕꾸러기 팀이었다. 창단 이후 세 시즌 순위는 7위, 6위, 7위. 그리고 망한 부자도 버틴다는 3년이 지난 2011년엔 마침내 최하위로 떨어졌다. 넥센 경기 중계를 배당받은 케이블TV사는 한숨을 쉬었고, 스포츠신문 1면에는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선수 팔아먹기’는 이 구단의 대명사였다. 2009년 12월30일 이택근·장원삼·이현승을 시작으로 주전급 선수 8명이 팀을 떠났다. 그 대가가 ‘현금’이었다는 건 프로야구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도하는 제10구단 창단에 반대하는 팀들의 명분이 “제2의 넥센이 나와선 안 된다”이다.
창단 5년째인 올해도 비전은 없어 보였다. 개막 뒤 첫 7경기 성적은 1승1무5패였다. 하지만 5월15일 이후 8연승을 달리며 23일 마침내 순위표 가장 높의 곳의 공기 냄새를 맡았다. 경기 뒤 김시진 넥센 감독은 “오늘 하루만은 즐기고 싶다”고 감격해했다.
‘넥센의 이변’은 사실 지난해 오프시즌에 이미 시작됐다. 11월20일 넥센은 LG에서 프리에이전트(FA)로 풀린 이택근과 4년 50억원에 계약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이택근은 넥센을 제외하고 6개 구단이 영입을 추진했던 귀한 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4년 50억원은 종전 시장 가격을 크게 넘어섰다. 무엇보다도 늘 선수를 팔기만 했던 넥센이 선수를 사들였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 1월18일에는 메이저리그 출신 김병현을 1년 16억원에 영입했다. 성사되진 않았지만 이택근과 김병현 계약 사이에는 기아의 슬러거 최희섭 트레이드도 시도했다. 최희섭은 2011년 연봉이 4억원이었던 비싼 선수다.
이택근과 김병현의 영입은 아직 투자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택근은 전 경기에 출전하며 타선의 중심이 되고 있지만 타율이나 홈런, 타점 등에서 눈을 확 붙잡는 성적은 아니다. 김병현은 5월25일까지 두 경기만 던졌다. 영입을 검토했던 최희섭도 아직은 2할5푼대 타율이다. 그러나 과감한 선수 영입이 넥센 구단의 이미지를 바꿔놨다는 점이 중요하다.
거액 영입·연봉 인상, 거꾸로 경영
지난해 넥센의 경기당 관중은 6688명으로 8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그럼에도 입장권은 가장 비쌌다. 냉정하게 보자면 ‘어차피 홈 관중은 없으니 가끔 찾을 원정팀 관중에게 비싸게 받자’라는 식이었다. ‘냉정한 수완가’ 이미지의 이장석 넥센 대표도 홈팬들의 외면과 야유에는 가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올해 넥센은 경기당 1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유치하고 있다. 이 부문 순위는 5위. 앞선 네 팀이 2만5천 명 이상 수용 가능한 대형 구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성과다.
흥미로운 점은 넥센의 ‘투자’가 재정 상태가 악화된 시점에 이뤄졌다는 데 있다. 2010년과 2011년 넥센 구단의 매출액은 190억원대로 비슷했다. 하지만 당기순순실은 2010년 5억2300만원에서 지난해 41억4790만원으로 늘어났다. 부채도 147억원에서 191억원으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넥센 구단은 올해 연봉 총액을 대폭 인상했다. 구단 관계자는 “창단 뒤 3년은 긴축, 4년째부터 투자, 5년째부터 성적을 낸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2009년 우리담배의 메인스폰서 계약 파기로 투자 시기가 늦춰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모기업이 없는 넥센은 수익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이상 만성 재정 위기에 부딪히는 구조다. 그래서 선수를 팔아가며 버텼고, 투자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물론 투자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1998년 창단 뒤 팀의 뼈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성기가 지난 스타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해 실패했다. 척 라마 당시 단장은 “돌이켜보면 63승을 하든, 65승을 하든, 67승을 하든 누가 신경이나 썼을까”라며 반성한다.
넥센 구단은 ‘선수를 판다’는 비난 속에서도 냉정하게 선수 평가를 했고, 실익을 거뒀다. 지난해 송신영·김성현을 LG로 보내고 박병호·심수창을 받은 트레이드는 현금이 개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넥센의 완승이었다. 프로야구 전체의 호황에 2014년 서울 고척동 돔구장 입주라는 면에서 올해는 투자를 시작해도 좋을 해다.
아직 ‘특별한 무엇’은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 40경기도 치르지 않은 시점에서 넥센의 성공을 예단하는 건 이르다. 넥센이 여러 스포츠경제학자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까지는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그들은 그동안 ‘낭비’를 하진 않았지만 아직 ‘독립 구단’으로서의 특별한 무엇을 만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 경기 성적에 급급한 대기업 산하 구단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 명문 구단 사장은 지난해 홈경기 거의 전부를 구장에서 지켜봤다. 이유는 “구단주에게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넥센 구단의 사장과 단장은 그 시간에 사업 파트너를 만난다.
최민규 기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경호처,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 합창 경찰에 30만원씩 격려금
[단독] 서부지법, 윤석열 구속심사 전 경찰에 ‘보호요청’ 했었다
[속보] 경찰, ‘윤석열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재신청
인천공항 ‘비상’, 폭설 때보다 혼잡…공항공사 “출국까지 3시간”
구속 연장 재차 불허에…윤 변호인단 “즉시 석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