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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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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달인임을 증명하다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6년 연속 통합 우승 앞둔 승부사 임달식 감독…
농구계의 이단아에서 명장이 되기까지
등록 2012-03-03 14:57 수정 2020-05-03 04:26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의 별명은 ‘미스터 9할’이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9할대 승률로 정규리그를 제패해 붙은 별명이다. 임 감독은 2008~2009 시즌 37승3패로 승률 0.925를 기록하며 새 역사를 썼다. 그리고 2007년부터 5년 연속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엔 사정이 달랐다. 임 감독은 지난해 10월, 2011~2012 시즌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여전히 우승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5년 동안 철옹성처럼 지키던 챔피언 타이틀을 더는 수성하기 어려워 보였다. 베테랑 전주원(40·신한은행 코치)과 ‘수비의 달인’ 진미정(34)이 은퇴했고, ‘바스켓 퀸’ 정선민(38)은 국민은행으로 떠났다. 다른 팀들은 “이번만큼은 신한은행에 우승을 내줄 수 없다”며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올 시즌도 정규리그 우승은 신한은행 차지였다. 그것도 2위 KDB생명을 무려 8경기 차로 앞서며 정규리그 폐막(3월11일)을 20여 일이나 남겨놓고 우승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3월14일부터 펼쳐지는 플레이오프에서 챔피언을 거머쥔다면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6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다.

‘악바리’ 전주원도 혀 내두른 감독

사실 임달식 감독은 농구계의 이단아다. 그는 휘문고와 고려대, 실업팀 현대를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호쾌한 슛과 찰거머리 수비로 국가대표 생활도 오래 했고, 귀공자 같은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창 잘나갈 땐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 용산고·중앙대·기아를 거친 허재 현 KCC 감독과 언제나 대척점에 있었다. 둘은 언제나 매치업 상대였다. 특히 농구대잔치 시절엔 죽기 살기로 서로를 막았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1989년 3월3일 부산 사직체육관. 현대와 기아의 농구대잔치 결승전을 보려고 농구팬들은 새벽부터 체육관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뜨거운 열기 속에 경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경기 시작 불과 4분56초 만에 허재는 자신을 막던 임달식의 팔꿈치에 맞아 코트에 나동그라졌다. 분을 참지 못한 허재는 일어나자마자 임달식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곧이어 임달식의 주먹이 허재의 얼굴을 강타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됐고, 당시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임달식은 결국 이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변변한 은퇴식도 치르지 못한 채 코트를 떠났다.

그 뒤 임 감독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음식점 사업에 나섰다가 실패했고, 팔자에도 없는 골프에 손대 프로 입문까지 눈앞에 두기도 했다. 슈터의 손감각은 고스란히 클럽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법. 농구 팬들에게 까마득히 잊혔던 그는 운명처럼 2001년 7월, 조선대 감독으로 10년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그는 조선대 농구부를 1부 대학으로 승격시키고, 프로 선수를 셋이나 배출하는 등 ‘조선대 신화’를 썼다. 그리고 2007년 초여름, 신한은행 사령탑에 앉았다.

임 감독은 상황에 맞게 선수들을 이끈다. 신한은행 감독을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단은 경기도 수원 광교산으로 단합대회를 갔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모두들 옷이 흠뻑 젖었다. 이때 임 감독은 선수들에게 말했다. “이런 폭우처럼 시련은 언제 갑자기 닥칠지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강팀이라도 정상에 오르려면 뜻하지 않는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그해 여름 광주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은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악바리’ 전주원(현 신한은행 코치)조차 “3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며 많은 감독을 접해봤지만 이렇게 독한 감독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임 감독은 칭찬에 인색하다. 신한은행 주장 강영숙(31)은 “경기 끝난 뒤 이따금 ‘수고했어’라고 말하는데, 그게 최고의 칭찬”이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선수들과 소통을 단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꼭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는 장난 섞인 비유를 하기도 하며 선수들과 소통한다. 지난 2월23일 2위 KDB생명과의 경기를 앞두고도 그랬다. 신한은행은 이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지만 KDB생명한테는 유독 3승3패로 팽팽했다. 포워드 이연화(29)와 김단비(22)의 수비가 문제였다. 두 선수는 공격력은 좋지만 상대 한채진(28)과 조은주(29)에게 많은 골을 허용하곤 했다. 임 감독은 KDB생명과의 7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두 선수의 어깨에 ‘피로곰’ 세 마리를 얹는 시늉을 했다. 간장약 광고에 나오는 장면을 흉내 내자 선수들은 웃음보가 터졌다. 임 감독은 “너희 둘이 수비를 잘해줘야 이길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농달’ 감독의 탄생

효과는 컸다. 이날 이연화는 한채진을 10점, 김단비는 조은주를 8점에 묶었다. 그나마 승부가 갈린 후반에 내준 점수가 대부분이었다. 전반엔 한채진이 무득점, 조은주가 2득점에 그쳤다. 반면 공격에선 이연화가 24점, 김단비가 20점을 터뜨리며 팀의 89-68 대승을 이끌었다.

임 감독이 예상을 뒤엎고 올 시즌에도 여유 있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또 다른 별명이 생겼다. 농구의 ‘농’자와 그의 이름 ‘달’자를 합친 ‘농달’이다. 즉, 농구의 달인이라는 뜻이다. 남자프로농구에서는 신선우(56) 전 SK 감독이 ‘신산’, 유재학(49) 모비스 감독이 ‘만수’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신산은 수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고, 만수는 수가 1만 가지에 이른다는 뜻이다. 두 감독 모두 명장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리고 또 한 명 ‘농달’ 임달식 감독이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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