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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수는 지금 외롭다

초등학교 운동부 시절부터 시작되는 승부조작의 역사… ‘도박 공화국’의 허약한 시스템 속에서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선수들만 탓하는 세상
등록 2012-02-25 14:12 수정 2020-05-03 04:26
스페인 농구 대표팀 선수들이 신문광고에서 두 둔을 벌리는 포즈를 취한 모습. <가디언> 캡처.

스페인 농구 대표팀 선수들이 신문광고에서 두 둔을 벌리는 포즈를 취한 모습. <가디언> 캡처.

자, 여기 한 선수가 있다. 아차, 대한항공 배구단에 ‘한선수’라는 매우 뛰어난, 4년 연속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차지한 ‘한선수 선수’가 있으니, 달리 불러야겠다. 그냥 ‘그 선수’라고 하자. 그 선수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활발한 성격으로 일찌감치 초등학교 운동부에 들어갔다. 일단, ‘그 운동’이라고 부르겠다.

그 선수는 그 운동을 참 잘했다. 그러자 부모의 시름은 깊어갔다. 이 나라에서 운동선수로 성장해 대학에 진학하고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기에 암담했다. 비극은, 그 선수가 그것을 잘해갈수록 더 깊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고된 훈련이나 합숙소 생활이 길어졌다. 승부조작 유혹도 없지 않았다(대한축구협회는 2011년 10월 초등학교 축구에서 발생한 승부조작과 관련된 지도자들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고, 해당 학교의 소년체전 출전 자격을 박탈했다).

선수 주변을 맴도는 뒷돈·브로커

그 선수가 뛴 그 운동에서는 다행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승부조작의 유혹은 더 지독해졌다. 합숙소는 병영 체험장 같았고, 지도자와 선배는 종종 ‘군기’를 잡았다. 그 선수는 일반 학생들과 더불어 소풍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승부조작 얘기가 수런거렸다(전남도체육회는 2011년 6월 전남야구협회 관계자를 상대로 전국소년체육대회 예선 승부조작 경기를 조사했다. 아무개 심판이사가 특정 중학교에 유리한 판정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 이 중학교가 지역 우승을 했다). 다행히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으로 그 선수는 승부조작 같은 일에 연루되지 않고 고교로 진학했는데,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2010년 9월, 고교축구에서 승부조작이 벌어져 지도자들이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같은 재단의 광양제철고와 포철공고 경기에서 광양제철고는 포철공고에 후반 막판 9분 동안 순식간에 5골을 허용하며 대패했고, 이로써 포철공고는 라이벌 고교들을 골 득실로 제치고 왕중왕전에 진출했다).

다행히 그 선수는 그 운동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고교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고, 일찌감치 대학 운동부의 스카우트 대상이 되었다. 그 선발이나 스카우트에도 금품 수수 같은 비리가 있다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으나(2011년 11월, 서울중앙지법은 대학 진학을 노리고 지도자들과 공모해 쇼트트랙 승부조작을 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이아무개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감사원은 2012년 2월 선수 끼워넣기, 불법 자금 조성, 스포츠 발전기금 불법 전용 등 비리에 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선수는 오직 운동에만 몰입했다. 다행히 동료 몇 명과 함께 원하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게 ‘끼워넣기’라는 얘기를 대학에 들어와서야 들었다. 자신은 실력으로, 친구들은 뒷돈을 주고 대학에 왔고 그중 몇몇은 곧 운동을 그만뒀다.

‘준프로’에 가까운 대학에 오면서 물리적 폭력은 줄었지만, 프로 진출이나 대표팀 선발이라는 막중한 짐이 가중됐다. 그 선수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겨본 일이 없었다. ‘형식적’으로 하는 수강 신청이나 리포트 제출은 쉽지 않았고, 해외 경기를 나갈 때면 여권 발급이나 출국신고서 작성 같은 것도 팀의 주무가 처리했다. 그 선수는 이 사회의 평균적인 생활을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평상복’을 입고 번화가에 나가면 낯선 세계에 온 듯해 주눅이 들어서, 차라리 ‘추리닝’ 차림으로 숙소에 머무는 게 편했다. 오직 ‘선발’이 최고 목표였다. 그럴 때마다 일부 선수의 부모와 지도자가 따로 만나는 듯했다(2007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은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대표 선발 과정에서 승부조작과 금품수수를 저지른 대한태권도협회 임원을 기소했다).

마침내 그 선수는 프로에 진출했다. 10여 년의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비리가 자신의 곁을 지나갔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실력이 있었다. 그런 자부심 하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 선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만나 감회를 나누던 선배는 지나가는 말처럼 특정 경기의 특정 장면을 ‘암시’했다(2011년 6월, 창원지검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축구선수들이 같은 종목의 선배인 브로커에게 넘어간 것으로 밝혔다).

승부조작 뉴스를 2년 넘게 접하면서 그 선수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자신마저 오해받을까 두려웠고, 구단과 팬들에게 미안했으며, 무엇보다 평생 뒷바라지해준 부모님을 뵙기가 죄송스러웠다. 수많은 선수들이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어엿한 프로가 되었지만 악성 조직과 브로커, 그리고 몇몇 선수들로 인해 모두가 지탄받게 된 상황이었다.

두려움과 외로움 호소할 곳 없이

더 답답한 것은, 오직 선수들만 후들겨 패는 언론이었고 엄벌·징계·퇴출·영구제명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구단과 연맹이었다. 물론 승부조작은 범죄이고, 선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불법 도박조직이 암약하는 ‘도박 공화국’에서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은 쉬운 먹잇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 선수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시스템은 엉망이었고, 상명하복이 전부였다. 선수 노조는 고사하고 도움을 청할 만한 단체도 없었고, 급할 때 싼 이자로 쓰고 천천히 갚는 선수복지기금 따위는 없었다. 고액 연봉은 몇몇 선수들 얘기고, 대부분의 선수는 생활을 겨우 맞춰가는 정도로 돈을 받았고 이마저도 은퇴하면 끝이었다. 2군이나 연습생은 보기 딱할 정도였다.

연맹은 선수들의 피땀으로 운영되는 곳이면서도 오히려 선수를 퇴출시키기에 바빴다. 책임지고 물러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고 이 사회의 평균적 삶과 동떨어져 지내온 이력 때문에 그 선수의 휴대전화에는 하소연할 만한 친구 하나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은퇴하고 나면 중·고교 지도자라도 해야 하고 거기서 100만 원 남짓 받으며 성적 내고 아이들을 진학시켜야 하는데, 이 허약한 시스템 안에서 자신 또한 폭력이나 금품수수, 승부조작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선수는 지금 심각한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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