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속도를 살리고 싶었다. 중앙 수비수와 우측면 수비수는 지나치게 폭을 넓히고 있었다. 우측면 깊숙이 서너 차례 침투하는 동작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로 패스가 들어왔고, 그 속도를 살리면서, 공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 공의 속도와 더불어 터닝을 하여 문전으로 쇄도하고자 했다. 그때, ‘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던진 야구공에 왼쪽 종아리를 맞았다고 느끼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꼼짝없이 외로웠던 10여 분
이렇게 쓰고 나니까 그 무슨 ‘추억의 월드컵’ 같지만 며칠 전 ‘동네 축구’를 하다가 겪은, 바로 나 자신의 부상 순간이다. ‘땅!’ 하는 소리는, 놀랍게도, 내 종아리 안쪽의 근육이 파열되면서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바로 곁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오직 인체 내부 구조를 따라 들려오는, 결코 환청이나 작위가 아니라, 실제로 정확히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늦가을의 하늘은 어두웠고, 잠깐이지만 추웠다. 몇 사람이 달려와 내 다리를 긴급히 어루만진 뒤 그라운드 바깥으로 들고 나갔다. 그중에 몇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겪었던 부상 순간을 떠올리면서, 근육에 강력하고 순간적인 부상이 올 경우 ‘땅!’ 하는 소리, 팽팽한 심줄이 끊기는 듯한 소리가 실제로 들린다며 증언했다.
나는 그라운드 바깥에 누워 다시 늦가을의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경기가 끝날 때까지 10여 분을 드러누워 있었다. 스포츠의학 전문가가 지금 이 대목을 읽는다면 형편없는 조치라고 충고할 게 틀림없다. 응급조치 뒤 병원 후송이 최선임을 잘 알면서도 막상 그 상황이 되자 능란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소설에서 자주 쓴 ‘사형수’ 이야기처럼, 막상 그 상황이 되자 샤워는 어떻게 하며 가방은 어떻게 챙기며 차는 누가 운전하며 나를 후송한 사람들은 어떻게 귀가하나, 뭐 그런 생각이 더 컸고, 무엇보다 어둑한 늦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는, 그 순간이 놀랍게도 평안했다. 더 어둡기 전에 한 골이라도 넣으려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은 외로웠다.
지도자로 거듭난 마티아스 자머
마티아스 자머는 ‘통일 독일’의 스타였다. 그는 리베로라는 개념이 강력했을 때, 그리고 그 개념의 축구 스타일이 사양길에 접어들던 1990년대 중반에 최후의 아름다운 리베로였다. 베켄바워의 재래였고, 마테우스의 재현이었다. 저 신성로마제국 시대의 300여 개 가까운 연방국가의 난립 상황에서, 독일의 꿈은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상의 측면에서 괴테와 실러의 열망이었고, 예술의 측면에서 바흐와 베토벤의 지향이었으며, 정치권력으로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과 비스마르크 재상의 프로젝트였다. 한때나마 그것을 실현해낸 인물은, 불운하게도 히틀러였다.
그 오랜 근대적 열망에 의해 독일은 ‘전체는 부분의 총합’이라는 인식 체계를 내면화했고, 그것은 고도의 연방 정치와 합리적인 지역 산업 특성화(대학도시·자동차도시·무역도시 등)로 나타났으며, 특히 축구에서도 요구되는 부분이었다. 클로제를 기억하는가? 독일 대표팀의 베테랑 공격수로 현재 이탈리아의 라치오 클럽에서 뛰고 있는 클로제가 만약 네덜란드나 스페인의 대표선수라면 일찌감치 대표팀 명단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오로지 공격이다. 독일이기 때문에 그는 공격에 몰두할 수 있다. 클로제 이전에 클린스만이 있었고 역시 그도 공격만 했다. 그의 곁에서 그야말로 1mm의 오차도 없는 패스를, 회슬러가 찔러준다. 자신이 슛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회슬러는 패스하고 클린스만은 슛을 날린다. 각 부분을 톱니바퀴처럼 조직해 최고 수준의 총체성을 실현하는 축구, 곧 독일이다.
그런데 그런 축구를 하려면 누군가 밑에서 든든히 받쳐줘야 한다. 그 역할을 ‘리베로’라고 부른다. 한국의 홍명보나 스페인의 이에로가 이 분야의 대표선수인데, 실은 독일의 베켄바워와 마테우스가 상징적 인물이다. 이들의 전통을 승계한 인물이 옛 동독 드레스덴 출신의 마티아스 자머다. 옛 동독 대표 출신으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통독 대표팀의 리베로가 된 자머는 1996년 유럽선수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유럽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1997·98 시즌에 무릎을 다쳐 서른이 되기 전에 은퇴하고 지도자로 변신했다. 자머의 은퇴로 1990년대 후반 독일 축구는 급전직하했다. 적어도 미하엘 발락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중요한 것은 자머의 경우다. 그는 큰 부상을 입은 뒤 철저한 재활훈련에 돌입했다. 다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재활 과정을 거쳤다. 그와 동시에 그는 지도자의 길을 모색해 도르트문트와 슈투트가르트를 이끌었다. 그는 자신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로 거듭나게 된 계기를 정교한 재활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 프로그램에는 심리적 좌절이나 박탈감을 치유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다시 ‘뽈’을 차려면 알아야 할 것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다. 곧 영하의 겨울이다. 이 간절기에 부상을 많이 입는다. 잘못 알고 있는 운동 상식을 제대로 익힐 필요가 있다. 적당히 아파야 운동이 된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부상의 전조일 뿐이다. 통증은 근육조직이 늘어나 신경조직에 자극을 준다는 신호다. 운동을 하고 나서 군데군데 몸이 쑤시는, 이른바 지연성 근육통을 운동으로 푸는 사람도 있는데 위험하다. 지연성 근육통은 근육 손상이다. 마사지나 찜질로 염증을 줄여야 한다. 근육이 지나치게 딴딴한 것도 자랑할 일이 아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해야 한다. 수축성과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딴딴하다는 것은 ‘강한 남성’이 아니라 그저 근육이 뭉친 현상일 뿐이다. 이 경우 의도하지 않은 강한 힘이 작용하면 쉽게 찢어진다. ‘땅!’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만약 불운하게도 그 소리를 들을 경우,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을 게 아니라,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다시 ‘뽈’을 찰 수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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