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축포 혹은 살인무기, 야구공의 두 얼굴

파울볼 잡으려다 맞은 황당한 죽음… 잘못 날아든 시속 200km의 타구, 관중과 선수의 안전 위협해
등록 2011-07-22 18:36 수정 2020-05-03 04:26
기아의 유격수 김선빈이 7월5일 군산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기아-넥센전에서 2회초 넥센 코리 알드리지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쓰러져 있다. 연합

기아의 유격수 김선빈이 7월5일 군산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기아-넥센전에서 2회초 넥센 코리 알드리지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쓰러져 있다. 연합

“헉! 어떻게 저런 일이…. 무섭습니다.”
“말이 안 나오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아이는 저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데….”

총알처럼 솟구친 공이 향한 곳은

지난 7월8일(한국시각)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 도중 관중석으로 날아온 공을 잡으려다 추락사한 야구팬의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안방 구장인 레인저스 볼파크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였다. 애슬레틱스의 타자 코너 잭슨이 친 파울 타구가 외야와 인접한 3루 쪽 관중석 하단을 강하게 맞고 텍사스의 좌익수 조시 해밀턴 앞에 떨어졌다. 해밀턴은 공을 집어 여느 때처럼 외야 관중석으로 무심코 던졌다. 그런데 이 공을 잡으려던 39살의 소방수 섀넌 스톤이 난간 너머 6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숨진 것이다. 그의 옆에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6살 난 아들 코너 스톤이 있었다. 눈앞에서 아버지의 황당한 죽음을 목격한 아들은 물론 파울볼을 주워 외야석으로 던진 해밀턴도 큰 충격과 죄책감에 빠졌다.

경기에 열중하던 선수들은 사고가 일어난 줄 모르다가 관중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멈칫한 뒤 뒤늦게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뒤늦게 각 구장에 안전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더욱이 불과 두 달 전에도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필드에서 한 남자가 외야 난간 6m 아래로 떨어져 숨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스톤의 죽음에 앞서 아찔한 장면이 또 있었다. 애초에 잭슨이 힘껏 당겨친 파울 타구가 총알처럼 날아간 곳에는 여성팬 2명이 있었다. 타구가 조금만 위로 솟구쳐 이 여성들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더라면 이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관중의 시야 확보를 위해 홈플레이트에서 외야 쪽으로 갈수록 그물망을 점점 내린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언제부턴가 메이저리그를 따라 그물망이 많이 낮아졌다. 이 때문에 각 구단은 관중석 곳곳에 호루라기 아르바이트생을 배치하고 있다. 파울 타구가 날아들면 호루라기를 불어 관중의 주의를 촉구하는 것이다. 또 강한 타구가 관중석으로 날아들 때마다 전광판에는 ‘파울 타구를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새겨진다. 하지만 플라이볼이라면 몰라도 시속 200km에 이르는 빠르고 강한 직선 타구를 호루라기 소리로 예방한다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파울 타구 날아들면 등을 보여라

야구를 즐기러 왔다가 봉변을 당한 사례는 종종 있다. 지난해 8월14일 광주구장의 20대 여성 피해자는 아직도 골수 야구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기아와 롯데의 경기에서 4회말 기아 4번타자 최희섭이 때린 공이 3루 쪽 관중석을 향해 쭉 뻗어갔다. 그런데 이 공은 박아무개(25)씨의 얼굴을 강타했다. 안경을 쓰고 있던 박씨는 각막과 망막이 찢어지고 얼굴뼈까지 함몰됐다. 박씨 가족은 기아 구단과 보상 문제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집안이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2009년 7월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경기에선 LG 이대형이 친 타구에 두산 치어리더가 맞는 일도 있었다. 양준혁 SBS 해설위원은 해설 도중 강한 파울 타구가 관중석을 향할 때마다 “파울 타구가 날아오면 재빨리 등을 돌려야 한다. 등은 아무리 세게 맞아도 멍이 들고 말지만 얼굴을 맞으면 큰일 난다”고 조언한다.

사고는 관중만 당하는 게 아니다. 야구가 직업인 그라운드의 선수들조차 피하지 못할 때가 있다. 기아 유격수 김선빈은 지난 7월5일 전북 군산 넥센전에서 코리 알드리지의 직선 타구에 얼굴을 맞아 코뼈와 잇몸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사고가 일어나자 팬들 사이에선 ‘왜 그 타구를 잡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일었다. 타구가 너무 빨라서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조명탑에 공이 잠시 숨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 등으로 야구팬들은 설왕설래했다. 정답은 알드리지의 타구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투수만 변화구를 던지는 게 아니라 타자가 친 타구도 이따금 변화를 일으킨다. 이날 알드리지의 타구는 마치 너클볼처럼 회전이 거의 없었고, 김선빈이 잡으려는 순간 포크볼처럼 떨어져 김선빈의 얼굴을 강타한 것이다. 김선빈의 사고 이후 “내야수도 포수처럼 얼굴 보호대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언젠가부터 1루와 3루 코처스 박스에 있는 코치들은 헬멧을 쓰고 경기에 임한다. 이는 두산에서 뛰었던 마이크 쿨바의 사망 사고가 계기가 됐다. 마이너리그 더블A팀 털사 드릴러스의 타격코치였던 쿨바는 2007년 7월23일 경기 중 1루 코처스 박스에 서 있다가 상대 타자가 친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이 사고 이후 한·미·일 모두 주루코치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다.

초상집이 된 축제의 장

마운드와 타석 18.44m의 거리에서 타자가 친 공이 투수의 얼굴을 향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투수가 던지는 투구 속도는 150km 안팎이지만 이 공을 받아친 타구는 시속 200km의 ‘살인무기’로 변한다. 최상덕 넥센 코치는 태평양에서 뛰던 1995년 6월25일 인천 한화전에서 장종훈(한화 코치)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앞니 4개가 부러지고 잇몸이 찢어져 피범벅이 된 채 12바늘을 꿰맸다. 1994년 13승을 올렸던 최상덕은 부상 후유증으로 더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1999년 7월10일 쌍방울 투수 김원형도 타구에 얼굴을 맞아 코뼈와 광대뼈가 함몰된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가해자’는 또 장종훈이었다.

야구는 녹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축제의 향연이다. 축제에 참여했다가 초상을 치르는 비극은 더는 없어야겠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