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불펜 투수와 포수가 마운드에 나서기 전 연습을 하고 있다.
2011년 프로야구가 지난 4월2일 개막했다. 개막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올해 프로야구의 트렌드는 정해졌다. 또다시 ‘불펜’이다.
‘디펜딩 챔피언’(전년도 우승팀) SK를 보자. 지난 4월5일 서울 잠실 LG전 선발투수는 부동의 에이스 김광현이었다. 3:1로 앞선 7회말 2아웃 1·3루에서 김광현이 LG 조인성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자 김성근 감독은 구원투수를 호출했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개막 전까지 넘버 투 선발투수로 꼽힌 송은범이었다. 송은범 다음으론 이승호, 정대현, 정우람이 차례로 등판했다. 다음날 선발투수는 왼손 전병두. 전병두가 1회부터 흔들리자 왼손 투수 고효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팀 LG의 박종훈 감독도 만만찮았다. 5일에 투입한 구원투수는 무려 7명. 다음날에도 투수 4명이 차례로 구원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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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교체는 빠를수록 좋다?
김경문 두산 감독도 올해 선발투수 교체가 빨라졌다. 개막 뒤 첫 4경기에서 선발 투수 3명이 5이닝 이하로 던졌다. 통상 선발투수는 경기당 100구 정도를 던진다. 두산 선발투수들은 모두 85개 이하에서 강판됐다. 기아의 왼손 에이스는 지난해 16승을 따낸 양현종이다. 양현종의 올 시즌 데뷔전은 4월3일 광주 삼성전. 이 경기에서 양현종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한대화 한화 감독은 만년 유망주 유원상에게 올해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 임무를 맡겼다. 롯데는 지난해까지 웬만하면 선발투수에게 6이닝을 책임지게 했다. 그러나 신임 양승호 감독의 모토는 ‘강력한 불펜’이다.
불펜 선호가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두산과 삼성은 ‘구원투수 일찍 올리기 경쟁’을 하는 듯했다. 지난해 8개 구단 전체에서 구원투수가 던진 이닝 비율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42.2%였다. 가장 높았던 시즌은 바로 전해인 2009년(42.3%)이다. 메이저리그는 지난해 선발투수가 67.1%, 구원투수가 32.9%를 나눠 던졌다(표 참조).
불펜 선호는 거슬러 올라가면 1996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1995년 8개 구단 선발진은 전체 이닝의 67.4%를 소화했다. 1982~95년 불펜 비중 평균은 35.4%였다. 그러나 이 수치는 1996년 38%로 뛰어올랐고, 이듬해엔 역대 두 번째로 40%를 돌파했다. 그 뒤론 세 시즌을 제외하고 매년 40%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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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은 왜 불펜을 선호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구원투수들이 더 잘 던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선발투수 평균 자책점은 4.76. 반면에 구원투수는 4.36이었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15시즌 동안 선발투수 평균 자책점이 구원진보다 나았던 때는 2006년 딱 한 해뿐이다. 그리고 2006년은 이 15년 동안 선발투수가 60% 이상 이닝을 책임진 유일한 시즌이기도 하다. 반면 1982~95년엔 선발투수가 더 잘 던진 시즌이 7회였다.
외국인 선수가 뛰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오랫동안 타고투저(打高投低) 경향이 이어졌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99~2004년은 매 시즌 1천 홈런 이상이 터져나온 ‘타자들의 시즌’이었다. 홈런을 펑펑 터뜨리는 타자가 많을수록 선발투수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타고투저 현상은 2005~2008년 완화됐지만 2009년부터 다시 타자가 투수에 우위를 보이고 있다. 감독들은 더 일찍 구원투수를 마운드에 올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2005~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이름도 중요하다. 6년 동안 삼성이 2번, SK가 3번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두 팀의 공통점은 ‘불펜 야구’다. 선동렬 전 감독은 2004년 수석 코치로 프로야구 지도자 데뷔를 했다. 해태 시절부터 은사이던 김응용 감독은 투수 교체에 관한 한 전권을 선 코치에게 맡겼다. 코치의 결정에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고도 통하는 사이. 선 전 감독은 “그때 김 감독님께 하나를 배웠다. ‘투수 교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였다”고 회상한다. 김성근 SK 감독은 선발투수가 좋지 않다 싶으면 투구 수에 관계없이 구원투수를 투입한다. 상황에 맞게 구원투수를 투입하는 능력은 최고로 인정받는다. 3자책점 이하 투수를 6회가 시작되기 전에 교체하는 결정을 ‘퀵 훅’(Quick Hook)이라고 한다. 2010년 퀵 훅 1위는 김 감독의 SK(60회), 그다음이 선 감독의 삼성(58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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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투좌타 선수가 늘어난 현상도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대개 아마추어에서 좌타자로 전향한 오른손잡이다. 야구는 왼손잡이 타자에게 유리한 경기다. 지난해 좌타자들은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타율 0.284를 기록했다. 우투수-우타자, 우투수-좌타자, 좌투수-우타자, 좌투수-좌타자 네 가지 대결 유형 가운데 우투수-좌타자의 성적이 가장 좋다. 하지만 선발투수는 우투수가 다수다.
불펜 선호, 투수 혹사로 이어질 수도
불펜 선호 현상은 부작용도 낳는다. 양상문 전 롯데 투수 코치는 불펜 투수들의 혹사 가능성을 우려한다. 일반적으로 투수 보호는 적정 투구 수 안에서 등판시키는 방법을 쓴다. 5일에 한 번 등판하는 선발투수와는 달리 구원투수는 한 경기에도 두세 차례 몸을 풀어야 한다. 이때 하는 불펜 피칭도 어깨와 팔에 무리가 된다. 한 야구단 단장은 “구원투수는 한 해 잘 던지면 다음해 구위가 떨어진다. 3년 동안 잘 던지는 투수가 드물다”고 말한다. 2006~2008년 최고 마무리로 군림한 삼성 오승환의 ‘돌직구’도 2009년 이후 구위가 크게 떨어졌다. 그래도 1990년대 후반 임창용처럼 지금은 마무리가 100이닝 넘게 던지지는 않는다.
귀중한 불펜. 그만큼 관리가 중요하다. ‘불펜 야구’의 대명사인 SK에서는 이런 구원투수 관리법을 쓰고 있다. “SK 구단 기록원의 기본 임무는 (중략) 투수 교체와 관계 있는 타임의 횟수, 그리고 투구 수 확인이다. 투구 수는 감독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표시된다. 벽에 붙어 있는 양 팀 라인업 카드에 투수들의 최근 3경기 투구 수가 색깔별로 다르게 적힌다. 2경기 전 투구 수는 빨간색, 직전 경기 투구 수는 파란색이다. 경기 전 감독 자리에는 또 하나의 표가 자리잡는다. 투수들이 불펜에서 공을 던진 횟수와 투구 수가 포함된 숫자가 경기별로 적힌다. 김성근 감독은 이 숫자들을 바탕으로 마운드를 운용한다.”(이용균, 에서 인용)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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