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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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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아리랑을

2011 도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오마주 투 코리아’로 귀환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의 <아리랑>을 보아라
등록 2011-03-18 14:19 수정 2020-05-03 04:26

드디어 김연아, 그녀가 온다.
오는 3월25~26일 밤,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일본 도쿄의 요요기 국립 경기장에서 ‘피겨 여왕’은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우리 국민과 선열, 그리고 전세계를 향해 던진다. 요요기 국립 경기장은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가 단게 겐조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지은 곳이다. 일본 스포츠의 심장부에서 우리 가락 을 중심으로 한 ‘오마주 투 코리아’와 서양 발레의 진수 이 김연아의 연기와 함께 전세계로 뿜어져나간다.











피겨스케이트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김연아.REUTERS

피겨스케이트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김연아.REUTERS

김연아가 재해석한 은?

절묘한 앙상블이다. 1910년 8월29일의 경술국치가 있은 지 꼭 100년 7개월 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문화 아이콘’ 김연아는 동서양 문화의 진수를 그 피의 악연(惡緣)이 있던 곳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국시로 삼으라고 주장한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126년 전 한 기고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웃의 두 나라(한국과 중국)는 개혁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유교적 가르침은 모두 위선적이고 뻔뻔할 뿐이다. 나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일본은 이웃의 나쁜 아시아 나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일본의 유럽 문화 지향은 피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008·2009 시즌 일본의 안도 미키와 나카노 유카리는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아돌프 아당의 을- 이번에 김연아 선수가 쇼트프로그램에서 펼칠 그 음악을- 들고 나왔다. 클래식과 발레를 아는 척하려면 반드시 전곡을 다 듣고 보아야 한다는 그 유명한 곡. 그러나 안도 미키는 시즌 중 음악을 바꿔야 했고, 유명한 러시아 출신 카티아 고르디예바가 1996년 프로 경기에 들고 나왔던 프로그램과 의상을 베낀 듯한 나카노 유카리의 은 그저 ‘유럽을 미숙하게 모방한 것’으로 묻혀버렸다.

김연아는 다르다. 의 원산지인 영국에서조차 감탄하고, 미국의 국민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작품을 ‘움직이는 예술’로 변모시킨 김연아가 아닌가. 그녀의 은 한국인의 ‘창작 지젤’일 것이다. 우리를 나쁜 친구라서 사귀지 말라고 하던 그들의 땅에서 진정한 탈아입구란 이런 것이라고 그들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세계 피겨 팬들과 우리 국민은 그녀의 프리스케이팅 곡 ‘오마주 투 코리아’ 의 가락에 더 높은 기대를 갖고 있다. 그 4분10초는 대한민국 문화 완판(完販) 광고다. 밀양에도 있고 정선에도 있으며 우리나라 어느 구석에서도 전 국민이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이 그 땅에 끌려와 노역 속에 스러져간 선조의 넋과 그 후손이 겪은 차별과 멸시의 아픔을 위로하며 그들의 TV를 타고 전세계에 울려퍼진다. 이 얼마나 완벽한 반격인가. 100년 전 그들의 폭거는 이 아름다운 4분10초로 폭로될 것이다.

그날 전세계의 TV는 왜 한국인이 이 음악을 들으며 오열하는지, 왜 이 만 20살의 숙녀에게 경의를 표하는지 앞다퉈 설명할 것이다. 김연아가 그날 완벽한 경기를 하든 약간의 기술적 실수가 있든, 경기장 안에서 태극기를 흔들든, TV 앞에서 홀로 기립 박수를 보내든 우리는 울고 있을 것이다. 앞에 남녀노소의 다름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외국 유학생과 동포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의 의미를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감동할 것이다. 속사정을 모르던 나라의 아픈 역사와 속 깊은 한 숙녀의 예술혼과 애국혼에 대하여.

역사를 위한 진혼무에 박수를

피겨스케이팅은 100년 전부터 이러한 문화 스포츠였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과 러시아의 대표적 ‘문화 전쟁터’이던 이 종목에서 1995년부터 피겨 선진국들은 그랑프리 시리즈를 만든다. 이후 여자 싱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중 그랑프리 시리즈를 주최한 7개국 이외 나라의 선수가 과연 있었을까? 꼭 한 사람, 대한민국의 김연아뿐이다. 그래서 더 놀랍다.

그만큼 피겨스케이팅의 문화적 가치는 크고, 이 종목에 대한 문화 선진국의 자존심 역시 강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피겨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은 아직 적다. 올림픽 뒤 나오던 피겨 전용 빙상장 건립 이야기는 선거와 정치적 셈법 사이에서 실종되거나 연기됐다. 어린 선수 수는 그간 두 배로 늘었지만 어른들은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김연아는 다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정치도 외교도 아직 해내지 못한 대한민국 문화와 역사의 완판 광고를 우리 가락과 서양 문화의 진수를 통해 일본 땅에서부터 세계로 울려퍼뜨린다.

당신의 뜨거운 피에 호소한다.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순위가 어떻든 기립 박수를 보내라. 이미 피겨 여왕 김연아는 채점의 대상도 가십의 소재도 아니다. 김연아 개인에게 환호를 보내고 싶지 않다면, 우리 문화와 역사에, 그리고 선열을 위한 그 진혼무(鎭魂舞)에 박수를 보내라.

그날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 경기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피겨 여왕 김연아의 휴식 끝 귀환을 축하하라.

송두헌 용인송담대 교수·파워블로거 ‘해맑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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