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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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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야구를 위한 승부수



검증된 명장 대신에 화합형 감독을 택한 롯데 자이언츠…

‘화’(和) 내걸고 우승한 지바 롯데 마린스 이을까
등록 2010-11-17 16:04 수정 2020-05-03 04:26

지바 롯데 마린스가 2010년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를 꺾고 2005년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퍼시픽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세이부 라이온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차례로 눌렀다.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보다 포스트시즌에서 하위팀이 상위팀을 꺾기가 어렵다. 리그 우승팀을 가리는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2·3위 팀이 맞붙는 퍼스트스테이지와 여기서 이긴 팀이 1위와 상대하는 파이널스테이지로 나뉜다. 상위팀에 1승을 먼저 주고 시리즈가 시작되는 게 특징이다. 그만큼 하위팀이 상위팀을 꺾는 이변이 일어나기 어렵다. 지바 롯데의 우승이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바 롯데의 우승에 가장 자극받았을 팀이 있다. 바로 한국의 자매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다. 두 팀은 모두 최근 리더십에 큰 변화를 겪었다. 지바 롯데는 2009년 시즌을 끝으로 보비 밸런타인 전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후임으로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니시무라 요시후미가 임명됐다. 니시무라 감독은 임기 첫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끈 9번째 일본 프로야구 감독이 됐다.

새내기 감독의 기적적인 우승

롯데 자이언츠 장병수 사장이 지난 10월22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새로 선임된 양승호 감독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연합 배재만

롯데 자이언츠 장병수 사장이 지난 10월22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새로 선임된 양승호 감독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연합 배재만

한국 롯데도 외국인 감독을 내국인으로 교체했다. 전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밸런타인의 친구이기도 한 인물. 로이스터 감독 체제 아래 롯데는 구단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고배도 마셨다. 구단은 2010 시즌을 ‘실패’로 규정하며 양승호 감독을 전격 발탁했다.

일약 ‘명장’ 반열에 오른 니시무라 감독이지만 시즌 전 지바 롯데의 우승을 점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지바 롯데의 순위는 퍼시픽리그 6개 구단 가운데 5위였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전임자인 밸런타인은 일본 프로야구 사상 가장 개성이 강한 감독이었다. 반면 니시무라는 조용한 성격이다. 그의 장점은 화합형 지도자라는 것이다. 1월12일 열린 올해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니시무라 감독은 팀 슬로건을 발표했다. 외자로 ‘화’(和)였다. “팀 전원이 마음을 합쳐 싸우자는 의미다. 함께 승리를 기뻐하고, 함께 패배에 분해하자는 의미”라는 게 니시무라 감독의 설명이었다. 한마디로 조화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조화’는 롯데가 반시즌 감독 대행이 프로야구 감독 경력의 전부인 양승호 감독에게 대권을 맡긴 이유기도 하다. 당초 롯데 감독 후보로 하마평에 오른 인물은 김재박 전 LG 감독,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고문, 이만수 SK 코치, 김경문 두산 감독 등이었다. 당사자들의 뜻과 관계없이 쟁쟁한 명장들의 이름이 오르내린 건 차기 롯데 감독은 중량감 있는 인사가 되리라고 본 야구계 분위기를 알려준다. 롯데가 로이스터 전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한 명분이 “로이스터식 야구로는 우승이 어렵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무명에 가까운 양 감독이었다.

왜 롯데는 검증된 명장이 아닌 루키 감독을 선택했을까? 양 감독 영입을 결정한 장병수 구단 사장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이름값 있는 인물보다는 팀을 화합시킬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니시무라 감독이 1월에 발표한 슬로건 ‘화’가 연상된다. 하지만 일본 자매 구단의 감독 영입을 참고한 건 아니다. 장 사장은 “지바 롯데를 벤치마킹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럴 겨를도 없었다”며 “다만 지바 롯데 프런트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 내년 우승 도전을 공언하고 있는 팀이다. 어느 정도 준비를갖췄다고 판단하고 있다. 타격 7관왕 이대호를 필두로 한 젊은 야수진은 리그 최강으로 꼽힌다. 여기에 2007년 경남 김해 상동구장을 개장하며 유망주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부산 사직구장은 관중 동원력 1위로 꼽히는 구장이다. 많은 관중은 많은 수입, 즉 선수단 지원에 쓸 수 있는 재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팀을 망칠 수 있다. 감독 교체가 성공이 아닌 실패로 끝난 사례는 많다. 감독이 바뀌면 자연히 선수단 구성도 바뀐다.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진도 크게 달라진다. 어떤 감독이든 자기가 원하는 야구를 하는 선수를 원한다. 출전 기회에 목마른 선수는 새 감독과 코치에 맞게 자기 스타일을 바꾼다. 이 와중에 팀에 혼란이 생기고, 원래 장점까지 잃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감독 교체가 실패로 끝나는 과정은 대개 이렇다.

만들어진 팀에 맞는 화합형 감독

롯데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팀이다. 타자는 3구 이내에 공격적인 스윙을 하고, 투수는 안타를 자주 맞지만 볼넷은 가장 적게 내준다. 전임 로이스터 감독의 철학이 반영된 팀이다. 장병수 사장은 “롯데는 리빌딩이 필요한 팀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A부터 Z까지 새로 시작해야 할 팀이라면 경험이 풍부한 명장에게 전권을 주는 게 맞다. 그러나 기존 장점을 살리는 게 필요하다면 자신의 색깔을 강요하지 않는 화합형 인물이 낫다. 이렇게 보면 롯데의 양 감독 선임은 의외긴 하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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