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 상벌위원회는 지난 9월13일 롯데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와 두산 투수 이용찬에게 잔여 경기 출전 금지와 함께 각각 300만원·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 징계는 즉각 여론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거친 행동을 해 두 차례 퇴장당한 게 가르시아의 징계 사유다. 이용찬은 9월6일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많은 야구팬들은 “어떻게 판정에 대한 항의와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징계가 같을 수 있느냐”며 KBO를 비판했다.
두 사안을 별개로 살펴보면 가르시아에 대한 징계는 지나치다고 보기 어렵다. 가르시아는 5월20일 군산 기아전에서 임채섭 구심의 볼 판정에 항의하던 중 배트를 집어던졌다. 가르시아의 행동은 퇴장이 선언될 만했으며, 로이스터 감독 역시 가르시아를 제지했을 뿐 퇴장 선언에는 반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르시아는 9월8일 다시 볼 판정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민호 주심에게 배트를 겨누는 동작을 했다. 이 역시 퇴장 사유다. KBO는 동일 사안으로 두 번 퇴장당했을 경우 가중 처벌을 적용하고 있다. 가르시아에 관한 한 KBO는 전례와 자체 규정에 비춰 지나치지 않은 징계를 결정했다.
“KBO 상벌위원회는 선수징계전문위원회”하지만 여기에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상벌위가 징계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해당 선수에게도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커미셔너가 산하 구단이나 소속 선수에게 징계를 내리지만 징계를 받는 쪽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KBO 규약에는 재심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명확해 보이는 잘못을 한 이에게도 소명 기회를 주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이다.
이는 ‘프로야구의 헌법’ 격이랄 수 있는 야구 규약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야구 규약은 “회원 및 프로야구에 참가하는 자는 본 규약을 성실히 준수할 의무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회원’은 구단들을 가리킨다. 구단들은 1981년 프로야구가 창설됐을 때 구단주 회의를 통해 규약을 통과시켰다. 프로야구에서 특정 구단의 이익이 우선될 경우 경쟁의 왜곡과 흥행 침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구단들이 협력적인 경쟁을 하기 위해 정한 룰이 야구 규약이다. 그러나 ‘프로야구에 참가하는 자’에 속하는 선수들은 1981년 시점에서 규약에 동의한 적이 없다.
2001년 4월5일 이후 KBO 상벌위는 모두 42차례 열렸다. 이 가운데 사단법인 KBO의 정관상 회원인 구단 및 구단 직원에 대한 징계가 내려진 적은 세 번뿐이다. 나머지 대다수 징계는 선수에게 내려졌다. 권시형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상벌위원회는 ‘선수징계전문위원회’로 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작 ‘협력적인 경쟁을 통한 리그 전체의 발전’이라는 규약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에 대해 KBO는 눈을 감고 있다. 가령 올해 넥센과 롯데 구단은 3루수 황재균과 내야수 김민성·투수 김수화를 맞바꾸는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대다수 언론은 넥센 구단의 전력에 비춰 “현금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두 구단은 KBO에 현금에 대한 내용이 빠진 선수 거래 계약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유영구 KBO 총재는 트레이드 승인을 며칠 미루는 것으로 불쾌감을 나타냈을 뿐이다. 세법상 선수는 구단이라는 기업의 ‘자산’으로 분류된다. 현금 트레이드로 선수를 판 구단은 10%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유 총재가 두 구단의 동의를 얻어 관할 세무서에 요청해 특정 기간의 부가가치세 납부 내역을 확인하면 됐다.
KBO가 선수에게 규약 준수를 강요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 야구선수계약서 17조는 “선수는 KBO 규약과 이에 따르는 제 규정 및 구단의 제 규칙을 준수”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규약 26조는 “선수계약서 양식은 이사회에서 정한다”고 돼 있다. 이사회란 8개 구단 사장단 회의를 가리킨다. 계약은 당사자 간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야구 규약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9년을 뛰어야 자유계약(FA) 자격을 얻는다. 그 이전에는 구단의 보류권에 묶여 오직 소속 구단과만 계약을 할 수 있다. 현행 세법상 선수는 자유소득자로 분류된다. 대기업끼리 담합해 하청업체의 거래처를 한 곳으로 제한하는 꼴이다. 그 이전에 현행 보류권 제도는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KBO가 2001~2009년 프로야구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심판 8건에서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 판정을 받은 건 현행 규약 체계가 갖고 있는 법적 불안정성을 말해준다.
선수협과의 단체협약이 해결법KBO 규약의 규정 가운데 상당수는 프로야구라는 특수한 산업이 가진 속성을 반영한다. 보류권 제도가 사라지면 모든 선수는 시즌 뒤 FA가 된다. 이러면 재정이 풍부한 구단이 압도적인 승률로 리그 1위를 차지할 수 있고, 프로야구 전체의 흥행은 타격을 받는다. 프로야구라는 산업은 법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선수는 규약의 적용을 받지만, 이에 합의한 적이 없다는 게 현행 규약 체계의 문제다. 그렇다면 규약에 대해 선수들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 메이저리그 노사는 선수의 신분과 권익에 관한 내용에 대해 단체협약을 맺고 있다. 2007년부터 발효된 현 협약은 2011년까지 효력을 가진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새 협약을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선수협회는 8월31일 KBO와 8개 구단에 규약과 선수계약서 개정안을 전달했다. 아직 회답은 없다. 과거 구단과 선수협회의 관계를 볼 때 협상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러나 프로야구라는 산업이 커질수록 현행 규약 체계의 모순은 어차피 불거지게 된다. KBO와 구단은 한 경기의 승리, 한 시즌의 순위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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