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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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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월드컵 전격 유치작전

2022년 대회 유치 위해 부도덕한 로비스트까지 영입…
한국은 경쟁국 오스트레일리아·일본·미국에 비하면 느린 스타트
등록 2010-04-09 21:01 수정 2020-05-03 04:26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22 월드컵 유치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존재는 지극히 미미했다. 최근에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지휘 아래 실제적인 월드컵 유치 활동에 들어선 듯하지만, 경쟁국으로 꼽히는 오스트레일리아·일본·미국 등에 비하면 느려도 한참 느린 스타트였다. 유럽의 축구 관계자들을 만나면 “2018 월드컵이 잉글랜드로 갈 것”이라는 지배적인 관측이 나왔고,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인들에게서는 “우리가 2022 월드컵 유치에서 가장 앞서고 있지요”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케빈 러드(중앙 오른쪽)와 축구협회장 프랭크 로위(중앙 왼쪽)가 지난해 6월14일 열린 월드컵 유치 공식 선언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TIM WIMBORNE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케빈 러드(중앙 오른쪽)와 축구협회장 프랭크 로위(중앙 왼쪽)가 지난해 6월14일 열린 월드컵 유치 공식 선언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TIM WIMBORNE

오스트레일리아 2008년부터 유치팀 꾸려

2022 월드컵을 가져갈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신감이 허풍은 아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미 2008년 초부터 연방정부 차원에서 유치팀을 꾸려왔다. 지난해 6월 수도 캔버라에서 열린 월드컵 유치 공식선언장에는 케빈 러드 총리, 프랭크 로위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장을 비롯해 대표팀의 주축 선수인 마크 슈워처, 루커스 닐이 등장해 “2022 월드컵을 유치하겠다”고 전세계를 향해 공표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남아공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배우이자 세계적 스타인 니콜 키드먼이 유치 활동 전면에 나서 지구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세계인들에게 전혀 알려진 바 없는 국회의원들을 파견해 아무런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한 한국의 전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식 풋볼, 럭비, 크리켓 등의 인기가 압도적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축구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자국 리그의 공중파 중계도 이뤄지지 않는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까닭에 오스트레일리아 축구가 숨 쉴 틈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들은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독일 월드컵에서 세계 국가 대항전이 빚어내는 마력을 생생히 경험했고, 이제는 그보다 더 큰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월드컵을 향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야망은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가 손잡은 피터 하지테이라는 인물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테이는 공식적으로는 명망 높은 PR 전문가이자 로비스트다. 스위스계 헝가리인으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말하고 스웨덴어와 루마니아어는 읽고 쓰기가 가능한 그의 옛 직함은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특별고문이었다.

하지테이는 돈과 권력의 냄새만 나면 스포츠뿐만 아니라 불법과 비윤리적인 일에도 기꺼이 참여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유니언카바이드사의 독가스 누출 사건이 터졌을 때, 피해를 일으킨 사람들이 사건 축소 작업을 맡긴 이가 바로 하지테이였다. 1995년에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마약 밀수 혐의로 체포되었고, 2년 뒤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역시 마약 운반에 관련한 일로 인터폴의 수갑을 받았다. 그러나 탁월한 로비력 때문인지 모두 무혐의 처리가 됐다. 이에 세계 언론은 그에게 ‘미스터리맨’ ‘해결사’ 등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테이는 2008년 1월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와 함께 일해왔다. 2007년 10월 블라터의 특별고문을 그만두고 잉글랜드 월드컵 유치 캠프에 합류했으나, 곧바로 오스트레일리아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는 하지테이의 영입 이유를 “월드컵 유치를 위한 고도화된 전략과 네트워킹을 제공받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며 “하지테이와 함께함으로써 우리의 월드컵 유치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고 기뻐했다. 하지테이의 추정 연봉은 약 40억원에 추가 보너스까지 있다는 후문이다.

‘해결사’라 불리는 피터 하지테이(오른쪽)가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 회장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해결사’라 불리는 피터 하지테이(오른쪽)가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 회장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기반시설은 도토리 키 재기라면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가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킨 인물과 굳이 손잡은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은밀한 스포츠 조직인 FIFA는 어떤 기구보다 정치적이다. 월드컵 유치는 인맥·정치력·자금력이 복잡하게 뒤섞인 진흙탕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왜 한국인가’라는 화두로 FIFA 집행위원들의 설득에 나설 것이라 밝혔던 한승수 월드컵유치위원장의 계획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한 위원장은 “인프라와 문화, 통신시설과 교통 등 개최에 필요한 제반 여건에서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보다 낫다”며 한국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기반시설이 정말 언급된 국가들을 능가할까? 잘 봐줘야 도토리 키 재기다. 조건이 엇비슷하다면 결국 정치와 로비력의 싸움인데, 현 상황에서 인맥도를 펼쳐보면 한국은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하지테이는 블라터 회장의 오른팔인 잭 워너 북중미축구연맹 회장과 ‘사업’을 함께 진행한 추억을 갖고 있고, 정몽준 대표와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 회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최근 정 의원과 함맘 회장이 화해를 하기는 했으나 세계 축구계에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함맘은 FIFA 차기 대권의 강력한 후보이고,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 프랭크 로위 회장의 가까운 동지다).

하지테이와 같은 부도덕한 인물과 손잡은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협회의 태도에 대해선 비난이 따를 수 있다. 다만 월드컵 유치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실제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건호 스포츠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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