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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들뜨게 했던 영광의 순간들

세계 스포츠계 놀라게 한 김연아·이승훈 활약 계기로 뽑아본 역대 올림픽 ‘10대 쾌거’
등록 2010-03-19 11:16 수정 2020-05-03 04:26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열흘 남짓 지났다. 이번 올림픽에선 한국 스포츠 역사상 의미 있는 쾌거가 참 많았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 사상 첫 금메달, 이승훈 선수의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아시아 선수 첫 제패가 그것이다. 두 사건은 한국 스포츠를 한 단계 도약시킨 ‘올림픽 10대 쾌거’에 꼽힐 만하다. 두 사건 이외에 역대 올림픽에서 거둔 8대 쾌거를 짚어봤다.

그해 여름을 달군 첫 올림픽 금메달 소식

양정모. 한겨레 자료

양정모. 한겨레 자료

1. 건국 이후 올림픽 첫 금메달 1976년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한 달 가까이 찜통더위가 계속되던 그해 8월1일 일요일 아침, 멀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레슬링 페더급에서 한국의 양정모 선수가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1948년 런던올림픽 첫 참가 이후 이때까지 한국은 은메달 5개, 동메달 7개를 땄다. 양정모는 이날 마지막 경기에서 몽골의 레슬링 영웅 제베그 오이도프에 6점차 이상 또는 폴패를 당하지 않으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양정모는 무벌점으로 결승리그에 오른 반면 미국의 데이비스와 몽골의 오이도프는 각각 3점과 1점의 벌점을 안고 결승리그에 오른데다, 결승리그에서 양정모는 데이비스를 폴로 이겼지만 오이도프는 데이비스에게 판정으로 졌기 때문이다. 결국 양정모는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거부한 채 공격적으로 맞서 8-10으로 졌지만 금메달 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양정모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진 뒤 전국에는 다음날까지 이틀 동안 시원한 장대비가 내렸다.

2. 구기 종목 최초의 메달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메달이 있었다. 한국 여자배구가 3·4위전에서 동유럽의 강호 헝가리를 3-1로 꺾고 구기 종목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따낸 순간 코트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동독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극적이었다. 두 세트를 먼저 내준 뒤 세트스코어 2-2 동점을 만들었지만 마지막 5세트에서 매치포인트에 몰렸다가 기어이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의 ‘장한 딸들’은 164㎝의 작은 키로 펄펄 날았던 ‘나는 작은 새’ 조혜정을 비롯해 유경화, 변경자, 유정혜, 정순옥, 백명선, 고 윤영내 등이었다.

김수녕. 한겨레 자료

김수녕. 한겨레 자료

3. 아시아 여자 최다 금메달리스트 1988년 9월의 마지막 날과 10월의 첫날, 17살 소녀 김수녕이 서울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첫 2관왕에 올랐다.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날아간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사대를 떠났다. 하지만 ‘신궁’은 그로부터 8년 뒤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단체전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따면서 금메달 4개로 아시아 여자 선수 최다 금메달리스트의 영예를 안았다.

4. 겨울올림픽 최초의 금메달 1992년 2월21일 새벽 프랑스 알베르빌 아이스홀. 한 손에 태극기를 든 ‘왕눈이’ 김기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쇼트트랙 남자 1천m에서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겨울올림픽 참가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이어 이준호·모지수·송재근과 함께 출전한 5천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겨울올림픽 2관왕이 됐다. 이후 쇼트트랙은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안현수와 진선유가 나란히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관왕에 올랐다. 쇼트트랙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9개를 따내며 16개인 양궁을 제치고 최고 ‘효자 종목’으로 자리잡았다.

황영조. 한겨레 자료

황영조. 한겨레 자료

5. 56년 만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 1992년 8월9일.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시 몬주익 메인스타디움에 가장 먼저 황영조가 들어섰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국민은 벅찬 감동과 뜨거운 눈물로 밤잠을 설쳤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메달을 딴 지 꼭 56년 되는 날이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은 한국의 황영조 선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도 한국 선수(사격 여갑순)였다는 것이다.

6. 여자핸드볼 올림픽 2연패 여자핸드볼은 88서울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때까지 한국은 올림픽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 국가들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했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동구권 국가들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성적(종합 10위)도 평가절하됐다. 88서울올림픽(종합 4위)은 개최국 프리미엄이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은 서울올림픽 때와 같은 금메달 12개를 따내며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 그 선봉에는 88올림픽에 이어 올림픽 2연패의 쾌거를 달성한 여자핸드볼이 있었다. 여자핸드볼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2차 연장과 승부던지기 끝에 따낸 눈물과 투혼의 은메달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영광’과 함께 한 단계씩 도약한 한국 스포츠
야구대표팀(2008년 베이징)·박태환.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야구대표팀(2008년 베이징)·박태환.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7.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 ‘마린보이’ 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 선수로는 이 종목 최초이며 자유형에서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자유형 1500m의 데라다 노보루(일본)에 이어 72년 만이다. 수영은 선천적으로 팔다리가 길고 근력이 뛰어난 백인에게 유리하다. 특히 평영이나 접영은 정교한 기술로 신체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지만 자유형은 온전히 가장 빠른 스피드를 요구한다. 박태환의 자유형 금메달에 전세계가 놀란 이유다.

8. 한국 야구 9전 전승 신화 3-2로 앞선 한국. 그러나 ‘아마 최강’ 쿠바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국은 9회말 1사 만루 절체절명의 위기를 병살타로 막아내며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2008년 8월23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은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토요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모인 국민은 짜릿한 승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쿠바(1992·1996)뿐이다. 한국은 그 쿠바도 이 대회에서 두 번이나 꺾었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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