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 GS칼텍스는 최근 외국 선수 리스벨 엘리사 이브(19)를 내보내고 외국 선수로는 역대 최장신인 1m95cm의 데스티니 후커(23)를 영입했다. 후커는 지난해 미국 대학 높이뛰기 챔피언에 올랐던 인물. 대학 시절 1~6월에는 높이뛰기 선수로, 7~12월에는 배구 선수로 활동했단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높이뛰기를 먼저 시작했고, 배구는 높이뛰기에 도움된다고 해서 같이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후커의 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2m1cm로, 한국 신기록(1m93cm)보다 8cm나 높다. 무려 1m6cm의 서전트 점프(제자리뛰기)로 배구 실력도 빼어나다. 그가 영입된 뒤 GS칼텍스는 8연패 사슬을 끊었고, 지금은 6연승 중이다. 캐나다 출신인 프로배구 삼성화재 가빈 슈미트(24·2m7cm)는 원래 농구 선수였다. 배구는 2004년 고3 때 뒤늦게 시작했지만 올 시즌 국내 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 중이다.
두 종목 이상에서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여자배구 GS칼텍스의 데스티니 후커(왼쪽 사진 오른편)는 미국 대학 높이뛰기 챔피언이었고, ‘맨발의 황제’ 비킬라 아베베는 올림픽 마라톤 2연패 뒤 하반신 마비 사고를 당하고도 장애인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합· 알파포토스 제공
스포츠 종목 간에는 이처럼 함수관계가 있다. 높이뛰기나 농구, 배구는 한결같이 점프가 중요한 종목이기에 후커나 슈미트처럼 ‘양다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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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아시아인 첫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1980년대 빙상 스타 배기태(45)씨는 한때 카레이서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빙상과 카레이싱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배씨는 “카레이싱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코너워크인데, 시야가 좁아져 속도를 줄이지 않을 수 없다. 빙상에서 코너를 돌 때도 시속 80~100km로 달리는데, 빙상에서 익힌 감각으로 코너링 때 브레이크를 늦게 밟을 수 있는 담력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져 기록 단축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나중에 여성 참의원으로 더욱 유명해진 하시모토 세이코(46)가 여자 사이클과 스케이트로 동·하계를 넘나들며 무려 7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사이클 역시 스케이트나 카레이싱처럼 코너링 기술이 관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투포환 2연패를 달성했던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59)씨. 그는 은퇴 뒤 볼링에 심취해 국가대표를 위협할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22년간이나 한국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투포환 여왕’은 투포환을 움켜쥐고 투척 지점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매와 집중력을 볼링 핀으로 옮겼다. 그의 딸인 농구 선수 김계령(31·우리은행)은 농구공을 움켜쥐고 림을 바라보는 눈매와 집중력이 어머니를 닮았는지 2년 연속 여자프로농구 득점 여왕에 도전 중이다.
한라급 몸무게로 백두급 선수들을 메다꽂으며 10년 가까이 모래판을 호령했던 왕년의 씨름 스타 이만기(47)씨. 그 역시 은퇴 뒤 배드민턴에 심취했다. 비록 생활체육 선수였지만 일본 원정경기를 다녀올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 그는 샅바를 잡으면서 다진 팔 근육과 팔목의 유연성을 배드민턴 라켓을 움켜쥐는 데 적용해 배드민턴 코트에서도 천하무적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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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도 두 종목을 섭렵한 선수가 있다. 몇 년 전 은퇴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 교타자 디온 샌더스는 야구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미식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미국프로풋볼리그(NFL)에 출전했다. 어떤 날은 애틀랜타 팔콘스의 풋볼 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홈구장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프로스포츠계의 ‘아수라 백작’이었다. 샌더스는 빠른 발과 천부적인 감각으로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구 선수로, 겨울철에는 풋볼 선수로 활약한 역대 68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스포츠 종목 중에 상관관계가 가장 큰 종목은 야구와 골프다. ‘공포의 드라이버’로 유명한 미국의 골프 선수 존 댈리는 고등학교 때 홈런을 펑펑 터뜨린 야구 선수 출신이다. 그는 “야구와 골프는 별개의 스포츠지만 골프채를 휘두를 때 체중 이동이나 어깨 회전이 야구 배트의 스윙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물론 골프는 뒤에서 아래로 치고 야구는 위에서 수평으로 치기 때문에 팔의 각도는 다르지만 몸 전체의 움직임은 비슷하다는 것. 그는 “그래서 어깨나 몸 회전은 한때 야구를 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야구 선수도 골프를 잘 치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 스타 가운데 그레그 매덕스를 비롯해 싱글 수준의 골프 실력을 갖춘 선수가 20여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백만·백인천·허구연·김재박·김성한·선동열 등 소문난 골프 실력파가 많다. 특히 강타자 출신인 허구연씨의 비거리는 최경주 프로와 맞먹는 270m이고, 유백만씨는 레슨프로 자격시험에서 차석을 차지한 고수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중에선 김성관·최홍기·인현배씨 등이 프로골퍼로 직업을 바꾸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타자 출신보다 교타자나 투수 출신들이 오히려 골프를 잘 친다는 점이다. 골프에서 타수를 줄이는 데는 멀리 날리는 드라이브샷보다 퍼팅이나 칩샷이 유리한데, 투수 출신들은 투구할 때의 제구력이 퍼팅의 집중력과 통하고, 정교한 교타자 출신들이 칩샷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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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황제’ 비킬라 아베베는 두 종목을 제패한 가장 감동적인 선수다. 그는 1960년 맨발로 로마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고,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선 맹장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출전해 2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1969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입었지만 1970년 장애인올림픽에서 마침내 또 하나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것은 마라톤이 아닌 양궁이었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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