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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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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핸드볼 열기, 대단한걸

네덜란드서 열린 국제클럽대회 참관해보니…
인구 수만 명 도시마다 전용 경기장 갖추고 관중석은 늘 만원 사례
등록 2010-01-07 11:49 수정 2020-05-03 04:25

조명이 꺼지고 주위가 캄캄해졌다. 객석의 환호와 휘파람 소리가 곧 시작될 ‘쇼’에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잠시 뒤 사이키 조명 사이로 두 팀 선수들이 등장했다. 관중석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핸드볼 경기장은 마치 쇼 공연장 같았다.

국제클럽핸드볼대회가 열린 네덜란드 림뷔르흐 길린시의 핸드볼 경기장 관중석 모습. 가득 찬 관중 뒤로 서포터스들이 북을 치며 응원을 하고 있다.

국제클럽핸드볼대회가 열린 네덜란드 림뷔르흐 길린시의 핸드볼 경기장 관중석 모습. 가득 찬 관중 뒤로 서포터스들이 북을 치며 응원을 하고 있다.

한·일 연합팀이 유일한 ‘비유럽팀’으로 참여

2009년 12월28일(한국시각)부터 사흘간 네덜란드 림뷔르흐에서 열린 국제클럽핸드볼대회 풍경이다. 20년 역사의 이 대회에는 올해 개최국 네덜란드를 비롯해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서 모두 8개 핸드볼 클럽팀이 참가했다. 유럽 일색에 한국 선수 6명과 일본 선수 5명으로 이뤄진 아시아팀이 끼었다. 88 서울올림픽 남자 핸드볼의 주역으로 스위스 리그에서 14년 동안 활동한 강재원(45)씨가 구성한 ‘K스포츠’라는 한·일 연합팀이다. 강씨가 감독을, 시미즈 히로유키 일본 다이도스틸 감독이 코치를 맡았고, 여건이 허락하는 선수들을 모아 만든, 이 대회를 위해 급조한 팀이다. 기자는 ‘운 좋게’ 이 대회를 현장에서 참관하게 됐고, 유럽의 핸드볼 문화를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림뷔르흐는 독일과 인접한 네덜란드 동남쪽에 자리한, 우리나라로 치면 도 단위의 지방이다. 대회는 림뷔르흐에 속한 길린·세타크·파닝엔 등 세 도시에서 열렸다. 세타크와 길린의 인구는 각각 5만 명 남짓이고 파닝엔은 1만5천 명에 불과하다. 경기장도 꽉 차야 1천 석 남짓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다. 하지만 대회가 막을 올리자 체육관은 관중으로 꽉꽉 들어찼다. 한국에는 하나도 없는, 그래서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에 취임한 이들이 언제나 가장 큰 공약으로 내거는 핸드볼 전용 경기장이 서울 중구의 10분의 1 규모도 안 되는 작은 도시마다 모두 갖춰져 있었다.

경기장엔 소녀 팬들이 적지 않았다.

경기장엔 소녀 팬들이 적지 않았다.

경기장은 작지만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텔레비전 중계방송이 가능할 정도로 시설도 훌륭했다. 또 식당이 딸려 있고 간단한 먹을거리와 맥주를 팔았다. 무엇보다 관중 친화적인 설계가 돋보였다. 경기장과 관중석의 거리는 1m에 불과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흥건히 젖은 땀을 현미경으로 보듯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로커룸에서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선수들에게 손을 내미는 소녀 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관중은 자국 경기뿐 아니라 제3국끼리의 경기 때도 언제나 빈틈없이 관중석을 메웠다. 점수 차이가 많건 적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탄성과 환호, 박수가 터져나왔다.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소규모 클럽대항 대회지만 자원봉사자가 100여 명에 이르렀고, 팬들이 쏟는 관심도 대단했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한다는 에릭 얀센(39)은 연말연시 휴가를 맞아 모든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스위스 리그 최고 스타였던 강재원 감독의 팬”이라며 “그래서 한국과 일본 연합 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지역 언론의 관심도 컸다. 스포츠 채널에서는 주요 경기를 생중계했고, 일간신문도 스포츠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2009년 12월29일치 일간 는 스포츠 3개 면을 한·일 연합팀 선수들의 경기 장면과 함께 이 대회 소식으로 채웠다. 그중에는 88 서울올림픽 결승전을 벌였던 강 감독과 옛 소련의 알렉산더 리마노프가 각각 한·일 연합팀과 홈팀인 네덜란드의 보스 인베스트먼트 클럽 및 라이온스 클럽 연합팀 감독으로 맞대결을 펼친 내용을 두 감독이 포옹하는 커다란 사진과 함께 소개한 기사도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런 대회가 정규 시즌을 피해 1년에 40회나 열린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서는 해마다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핸드볼 리그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인 인구 700만 명의 스위스만 해도 1~3부 리그에 팀이 48개나 있다. 스위스에서만 한국 선수 3명이 활약 중이다. 핸드볼 없이는 죽고 못 사는 유럽인은 정규 시즌 경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6~8월 여름철 비시즌과 12월 말~2월 초 정규 시즌 휴식기에 이처럼 이벤트성의 크고 작은 대회를 열어 핸드볼 갈증을 충족하고 있다.

림뷔르흐 국제클럽핸드볼대회에서 한·일 연합팀 안내를 담당한 자원봉사자 마우리스 맥턴스(36)는 “림뷔르흐 핸드볼대회에 직접 참여하고 좋아하는 핸드볼도 관전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꽃집을 운영하는데, 대회에 필요한 꽃을 무상으로 대주고 있었다.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한·일 연합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한·일 연합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일 연합팀은 대회 마지막 날 포르체 클럽(크로아티아)과의 3·4위전에서 ‘깜짝쇼’를 펼쳤다. 한국 나이로 마흔여섯인 강 감독이 직접 선수로 뛰었고, 이준희(33·파디빈터투어), 도미타 교스케(26·다이도스틸), 고경수(25·상무) 등이 강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스카이슛 등 멋진 묘기를 선보였다. 관중은 유일한 비유럽 참가팀인 한·일 연합팀의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핸드볼에 연방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인구 700만 명의 스위스에 48개 핸드볼팀

경기가 끝난 뒤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손에 종이와 펜을 들고 선수들에게 사인 공세를 펼쳤다. 그 가운데 파니 반 뮐켄(12)이라는 소녀는 “아시아에서 온 선수들이 신기해서 사인을 받는다”고 했다.

어린이들은 선수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텅 빈 경기장에서 그럴듯한 폼으로 핸드볼을 즐겼다. 첫날 한·일 연합팀이 경기를 치른 세타크 경기장에선 모든 경기가 끝나자 경기장에 놀이시설처럼 갖가지 핸드볼 지도용 기구가 놓였다. 그리고 20여 명의 어린이가 교사의 지도에 따라 ‘놀이’하듯 핸드볼을 배우고 있었다. 유럽의 핸드볼을 이끌어갈 미래의 선수와 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림뷔르흐(네덜란드)=글·사진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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