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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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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도 토론하며 보는 프랑스인들

다문화적 열기와 신랄한 비평이 특징인 ‘아트사커’의 나라…
축구의 도시 마르세유는 팬과의 유대감 ‘최고’
등록 2009-12-09 16:17 수정 2020-05-03 04:25

얼마 전엔 아트사커를 대표하는 지단의 고향이자 프랑스 축구의 도시 마르세유를 찾았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의 남부 항구도시인데, 유독 알제리나 튀니지 등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가 많다. 무역항이던 마르세유는 영국에서 축구가 가장 먼저 전파돼온 곳이기도 하다. 이날은 최대 라이벌전이라 불리는 마르세유와 파리 생제르맹의 경기가 있는 날인지라 도시 곳곳에서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은 축구팬이 많이 보였다. ‘르 클레시코’라고 불리는 이 경기는 스페인의 ‘엘 클레시코’ 더비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와 비교될 정도로 열광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여기에는 제1의 도시인 파리와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 간의 지역감정도 한몫하지만, 프랑스 문화를 중시하는 파리지앵들에 비해 유색인종이 많이 섞인 마르세유 특유의 역사적 복합성도 그 이유가 된다.

티에리 앙리

티에리 앙리

앙리 ‘핸드볼’에 80%가 “월드컵 갈 자격 없다”

특히 이날 경기는 논란이 많았다. 원래 3주 전에 치러야 했지만 파리 생제르망 쪽이 신종 플루 감염 선수들 때문에 경기를 취소했다. 이에 마르세유 팬들은 플루에 걸린 선수를 제외하고 경기를 치르라고 주장하며 도시 전체에서 큰 난동을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이날은 경기장 주변은 물론 도시 곳곳에 경찰이 배치돼 훌리건 난동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열기 덕분에 평일 밤임에도 경기장에서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르세유에 상주하는 한 기자는 “모든 경기에서 축구에 대한 마르세유의 열정을 찾을 수 있다”며 축구를 대표하는 도시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하지만 프랑스 팬들이 항상 열광적인 응원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다른 유럽 팀보다 저조한 응원전을 보였다는 점, 얼마 전 월드컵 플레이오프전에서 가까스로 월드컵에 진출했을 때조차 그다지 응원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의 일반적 응원 문화와 달리, 마르세유의 응원 열기는 이탈리아나 잉글랜드 리그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어서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첼시의 디디에 드로그바의 마르세유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그는 비록 마르세유에서 한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은퇴를 계획할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이 많다.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마르셀 드자이도 첼시와 AC밀란 등에서 뛰었지만 마르세유에서 뛰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마르세유는 워낙 팬들과의 유대감이 강해서 선수들이 쉽게 팀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기 이틀 전, 파리에서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월드컵 플레이오프전을 관전했다. 프랑스 전역에 걸쳐서 워낙 모로코, 튀니지 등의 이민자가 많기에 경기장 안팎에서 햄버거 대신 케밥 종류가 넘쳐났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경기 몇 시간 전에 알제리와 이집트의 경기가 있었는데, 알제리 출신 이민자가 많은 지역의 버스 노선이 바뀔 정도로 그 열기가 대단했다. 특히, 지난해 튀니지와 프랑스의 경기는 프랑스에서 치러졌음에도 프랑스에 대한 일방적 야유와 튀니지에 대한 응원 때문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 특유의 축구 문화는 응원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나라의 활성화된 토론 문화가 축구로 연장된 것이다. 그래서 앙리의 핸드볼 논란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하는 것이 프랑스 국민이다. 프랑스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스포츠신문인 가 경기 다음날 앙리의 핸드볼 장면을 1면에 실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월드컵 본선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라는 이유로 까발리기보다는 두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해, 프랑스 국민 80% 이상이 “앙리가 잘못했고 프랑스는 월드컵에 갈 자격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엄격함은 마르세유나 파리 생제르맹 팬들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플레이를 게을리하거나 실수를 저지르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일지라도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박주영 호평이 더 기분 좋은 이유

그렇다고 프랑스의 축구 문화가 꼭 비평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잘하는 선수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박주영 선수가 그 예이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마르세유의 감독 디디에 데샹은 박주영 선수에게 감명받은 듯이 보였다. 데샹 감독은 박주영이 지난 10월 마르세유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던 것을 상기하며 “아시아에서 왔음에도 유럽 축구에 빠른 적응을 보인 것이 놀랍다. 기술이 좋고 영리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그는 “모나코가 박주영을 영입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평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정도였다. 그가 지단과 함께 프랑스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찬사는 더욱 의미가 있다. 마르세유의 단장인 조세 아니고도 박주영과 같은 좋은 한국 선수가 있다면 영입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축구 여행 중에 한국 선수의 소식을 들으면 그 자체로도 반가운데, 그 선수가 호평을 받고 있다면 기분 좋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프랑스인들의 까다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과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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